[명상수필: 먹물 한 점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지만 붓글씨만큼 나에게 어려운 것도 없다. 쓰면 쓸수록 틀이 잡혀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괴발개발이다. 그래도 어쩌랴. 타고난 난필을.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그냥 쓰자. 그리고 즐기자. 문방사우, 비록 글씨엔 손방이지만 나만의 난필(亂筆)을 가까이하는 네 벗은 이름하여 지(紙), 필(筆), 묵(墨), 연(硯)이니 종이는 '나만의 대지'요, '붓'은 '내 마음'이요, 먹은 '마르지 않는 열정'이며, 벼루는 '내 마음의 텃밭'이라. 돌이켜 보면 선친(先親)은 명필이셨다. 나는 그것이 늘 부러웠다. 지금도 서랍에는 고인의 말씀이 담긴 필체(筆體) 좋은 메모지가 들어 있다. 어쩌다 졸필에 속이 상할 땐 이를 꺼내보곤 한다. 정갈하고도 멋있는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