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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수필: 지음(知音), 음악이 우정이 된 밤]

언젠가부터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 한 곡쯤 들어야 비로소 겨울을 맞이할 힘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가을이라는 계절이 건네는 묘한 정서 때문일 것이다. 특히 늦가을이 되면 결실과 소멸, 만남과 이별 같은 상반된 단어들이 마음의 행간을 오간다. 무언가를 거둬들이는 동시에 하나둘 내려놓아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일까.공교롭게도 이날은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될 자리가 하나 잡혀 있었다. 빠진다고 크게 흠이 될 것도 없지만, 막상 빠지고 나면 어딘가 뒤끝이 캥길 것 같은 모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를 접어두고, 오랜 친구의 제안을 따라 오케스트라 연주회장으로 발길을 돌렸다.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경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1회 정기연주회. ‘음악이 예술이 되다’라는 이름을 내건 공연이었다. ..

[일상&책읽기: 돌탑, 상실과 회복의 문학적 여정]

모난 돌이 모여서 돌담이 되었고둥근 돌이 쌓여서 돌탑을 이루었네마음속, 작은 탑 하나무너지니 담이 되네— 김석, 〈돌탑〉김석 시인과 점심을 함께하며 그가 건넨 자작시를 읽었다. 이른바 ‘시 한 편’을 오리발 삼아 얻어먹은 밥상이었다. 불판 위에서 한판 불고기가 자글자글 익어갈 즈음, 맥주 대신 마신 한 모금의 맹물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돌담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지고 모난 돌들이 켜켜이 맞물리고 견디며 이루어낸 세월의 벽이다. 돌아보면 나조차 스스로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모난 마음을 품은 이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너와 나, 서로가 각진 돌이 되어 마침내 단단한 담을 쌓아버리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부질없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모난 가시를 세우며 스스로 돌..

[일상&책 읽기:회복으로의 긴 여정_장은경]

[일상&책 읽기:회복으로의 긴 여정_장은경]-절망의 끝에서 피워낸 희망, 삶의 진정성과 삶의 구원-문학성이란 반드시 형식적인 문학작품이라는 틀 안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외적 요소라 할지라도 그것이 독자의 영혼에 깊은 감동과 파문을 일으킨다면, 이 또한 문학 본연의 가치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장은경 작가의 《회복으로의 긴 여정,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꽃이 핀다》는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나름의 문학적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져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구조는 '도박중독'이라는 절망적 상황을 치유해 나가는 자전적 기록이자 치유 프로그램의 형태를 띤다. 자칫 단순한 생활 수기나 지침서로 읽힐 수도 있으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작가의 치유적 삶과 숭고한 인생철학이 깊게 스며 있음을 알 수 있..

[수필&감상_사추기, 사랑에 빠지다]

[수필_사추기, 사랑에 빠지다]나는 사랑에 빠졌다. 걷잡을 수 없는 막연한 그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추기의 나이에 참 많은 것에 빠져 살고 있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고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난다. 젊은 날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 나이가 든다는 것과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먼저 떠난 친구가 가기 전 나를 흔들어 깨워 주고 갔다.“넌 아프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와. 나중에 만나자.”친구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함께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너무 많은데…… 어떡하지. 지나간 시간은 짧은 듯 흘러가고, 앞으로의 날들은 더욱 짧게만 느껴진다. 하..

[수필&감상_추사, 그가 다시 살아온다면]

[수필&감상_추사, 그가 다시 살아온다면]추사 김정희가 다시 살아온다면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가을이다. 창밖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밤 분위기를 서서히 잡고 있다. 지금 네팔에서는 빙하가 녹아내리며 갑자기 덮친 물폭탄으로 전지구를 경악케 하고 있다. 수 천명의 사망과 엄청난 사람들의 부상과 실종 속에 우리 국민도 연락 두절이다. 걱정이다.하늘과 땅과 바다,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지구가 멍들고 있으니 사람인들 제정신이겠는가. 훼손된 자연이 문제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두렵고 답답하다. 혹시 노아의 방주가 다시 시작된 것은 아닐까.추사는 1786년 정조 10년, 충청도 예산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시&감상: 비우다_김석]

김석:경북 포항 출생시집 《거꾸로 사는 삶》《 침묵이라는 말을 갖고 싶다 》《괜찮다는 말 참, 슬프다》외.대구예술상, 대구문학 올해의 작품상 수상대구문인협회사무국장, 감사, 대구예술가총연 합회감사 역임.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죽순문학회, 진각문학회 회원.비우다/ 김석강이 물을 비우니 바닥이 보이고내가 나를 비우니 허물만 보이네비워라비우지 못한 잿빛 하늘---김석 시인의 시다.출전:시집 《바위 속을 헤엄치네, 고래》비우고 산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째 보이지 않는 길고양이를 두고 걱정이 앞선다. '이 놈이 어디를 갔지?' 간혹 며칠씩 바람을 피우다 다시 집을 찾아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일주일 째 보이지 않으니 살짝..

[책 읽기&감상: 소설 《동의보감》, 'N포세대'를 생각하다]

세재개편에 따른 보통 사람들의 가슴이 먹먹하다. 1 가구 1 주택, 수 십 년을 살 수밖에 없던 집을 처분하고 조그만 새장 같은 집 하나 마련하여 살겠다고 헐렁한 주택을 헐값에 던져 놓았지만 주택시장은 얼어붙었고 내 조그만 바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토지거래허가제, 대출규제 등 등 무엇이 서민을 위한 정책이고 생활안정대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런 시국에 동의보감을 읽고 허준을 이야기하고 N포 세대들을 들먹거리면 무엇하랴만 답답한 속 마음 어이 할 길 없어 그냥 또 한 자 적어본다.삼민(三民)의 땅에서 약초를 캐는 한 남자가 있다. 약재의 출납과 간수를 맡아 앞뒤 일을 미리 꿰뚫어 보면서도, 그는 그저 묵묵히 산을 오르내린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속 허준이다. 약초에 ..

[책 읽기&감상] 화룡점정,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과 김난도의 '트렌드'를 생각하다

책상 위에 놓인 《트렌드 코리아 2024》,《트렌드코리아 2025》,《트렌드코리아 2026》을 바라보는 마음이 복잡하다. 아니, 가슴 한구석이 벅차오르면서도 아득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튀어나오는 매력적인 신조어들은 이해가 될 듯 말 듯 난해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한다. 마음이 이토록 착잡한 것은 1990년 초판 발행된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 푹 빠져 있는 와중에, 몇 해전부터 김난도가 던지는 새해 최신 트렌드가 머릿속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은 탓이다. 경제나 사회, 문화 쪽으로 특히 AI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ChatGPT에 편승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책도 사람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가 죽는 것일까. 누렇게 빛바랜 《동의보감》의 표지가 유독 고개를 깊..

[책읽기&감상: 소설 《동의보감》_명의 유의태 (名醫 柳義泰) 제2화 >]

책 리뷰_ 소설 《동의보감》_명의 유의태 (名醫 柳義泰) 제2화 >-천을귀인을 만난 허준, 나도 샐리를 꿈꿔보다-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사람 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사람, 아무런 대가 없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그리고 그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짐이 되지 않는 사람. 살면서 그런 천을귀인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인생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다.최근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을 다시 읽으며, 나는 산음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허준의 발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다. 신분 사회의 철저한 억압 속에서 고향을 탈출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던 허준. 그런 그가 산음에서 만난 이방과 구일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사들이었다.빈..

[책읽기&감상: 소설 《동의보감》_명의 유의태 (名醫 柳義泰) 제1화

책 리뷰_ 소설 《동의보감》_명의 유의태 (名醫 柳義泰) 제1화 >-드디어 경남 산음 땅 도착-사랑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사랑도 다 저마다의 때가 있는 법이다. 오래전 어느 가전제품 광고 카피처럼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하더니, 막상 살아보니 삶에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택이란 신중할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성공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리 삶의 일정 부분에는 분명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 운명 앞에 무릎 꿇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삶의 역점을 두고 싶다.소설 속 다희와 허준, 두 사람의 인연을 보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삶의 지혜가 보인다. 비록 소설이라는 허구의 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