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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수필 레시피: 2호선 여정, 문양역에 가면 문산월주가 보인다]

대구에는 대구도심철도 1,2,3호선이 있다. 2호선은 종점인 영남대역과 문양역을 오고 간다. 요즘 2호선을 타고 문양을 자주 들락거린다. 역사(驛舍) 아래 로컬푸드 농산물 판매장이 자꾸 문양역을 찾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더덕과 수삼 및 홍삼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더덕과 인삼이 사시사철 어느 지역, 어느 매장에 없겠는가마는 지하철을 이용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나에게는 문양역 로컬푸드 매장이 안성맞춤이다. 문양역(汶陽驛), 나무위키에 소개된 문양(汶陽)이란 역명의 유래는 하빈면과 다사읍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마치 용머리같이 생겼고, 문수의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문양(汶陽)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문양리의 중심 마을인 문양 1리는 동래 ..

[일상&산문: 김억, 주요한, 황석우를 생각하다]

봄이 오고 있다. 담벼락 아래서도 거실바닥에서도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한 줄 시가 당긴다. 이리저리 시집들을 훑다가 김억(金億)의 '봄'과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란 시를 오랜만에 본다. 두 사람은 1918년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를 통하여 프랑스의 상징시를 번역 소개하면서 활동한 시인들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시인인 황석우(黃錫禹)와 더불어 이들은 근대시 형성에 크게 이바지하며 우리 시단의 성격과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들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흐름으로 볼 때 자유시의 형성기는 1910년에서 1919년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894년 갑오개혁,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인한 국권 상실, 이어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약 10년간의 시기를 ..

[일상&수필 레시피: AI, 참살이 공생 참 어렵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 흩날리는 눈발이 어지럽다. 순백의 하늘이 내리기도 전에 하늘로 가버렸다. 사람이 돌아도 그렇지......말문이 막혀 버린 아버지의 가슴이 하늘을 찢는다. 초등학생 '김하늘' 양이 사람 아닌 사람에 의해 하늘로 갔다. 분명 사람은 사람인데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아닌 사람이 사람을 너무 고통스럽게 한다. AI시대면 뭐 하노. 인간의 썩은 뇌를 도려낼 AI칩 하나가 절박하다. AI칩을 빨리 박아라. 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 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일상&수필 레시피: 3호선 여정,매천역과 매천시장역]

대구도시철도 지상 3호선 매천역이다. 태전역으로 흘러가는 하천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입춘지절, 내가 내 눈으로 보고 찍은 그림이지만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매천역은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에 있어 매천역이라 했다. 팔달역이 있고 팔달시장역이 있는 것처럼 매천시장역도 있다. 매천이 매천역과 매천시장역으로 나누어질 만큼 두 역사(驛舍) 간의 길이가 지산역과 수성못역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역간 길이가 1.1km라 하니 다른 역사 간 길이도 대충 짐작이 간다.매천역이 조용한 시골 간이역과 같은 느낌을 준다면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는 매천시장역은 시간 따라 계절 따라 사람이 붐비는 시장역이다. 매천시장역을 지나칠 때면 봄날 미나리를 넣은 도다리국과 큼직한 대게가 군침을 돌게 한다. 포항에 죽도시장이 ..

[일상&산문: 화랑(花郞)을 생각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눈 내린 눈길이 미끄럽다. 비슬산을 올라가는 길이 어지럽다. 을사년(乙巳年) 설은 설이 아니다. 폐망한 왕조의 짙은 그늘이 비슬산을 눈길로 덮은 듯하다.'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 왕평(王平) 작사, 전수린(全壽麟) 작곡, 이애리수 노래, '황성옛터'가 가슴을 울리며 신라의 화랑을 떠올리게 한다.화랑(花郞)을 예찬한 노래에 찬기파랑가와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가 있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10구체 형식의 노래요,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는 8구체의 노래다. 둘 다 화랑의 고결한 인품과 덕..

[일상&산문: AI, 전설의 시대가 그립다]

소문을 퍼트려 왕이 된 사나이가 있다. 백제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과부인 그의 어머니는 못의 용과 교잡하여 아들 장을 얻었다. 장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남달랐다. 늘 마를 캐어 어머니와 함께 생업을 이어갔다. 그가 마를 파는 아이라 하여 서동(薯童)이라 불렀다.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선화 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갔다. 그는 서라벌에서 아이들과 친해진 뒤 함께 서동요라는 노래를 지어 불러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은 늘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남을 모함하고자 할 때 이것은 유용한 심리적 도구나 공격기제가 될 수 있다.선화 공주님은남몰래 정을 통해 두고맛둥(서동) 도련님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이것이 현대어로 풀이한 서동요다. 선화 공주를 꾀어내기 위..

[일상&산문: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 하는 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이 가사가 왜 이리 구슬프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前腔) 달하 노피곰 도다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달님이시여 높이 돋으시어아! 멀리멀리 비치게 하시라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백제 유일의 노래라 일컫는 정읍사의 일절이다. 노래의 짜임새를 여러 갈래로 해석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삼단 구성인 기(起), 서(敍), 결(結)로 보면 기(1행~4행)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정읍은 전북 전주의 속현이다. 행상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밤새 기도를 올리는 여염집 여인의 간절함이 눈에 선하다. 이 노래에서 달은 광명이요, 천지신명을 상징한다.을사년 새해, 정월 보름을 앞둔 달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달이..

[일상&산문: 염아지독(念我之獨)이여, 안녕]

翩翩黃鳥 (편편 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左雄相依 (자웅상의) 암수 서로 정답구나.念我之獨 (염아지독) 외로워라 이내 몸은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이 노래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4언 4구의 한시로 번역되어 전해진다. 사랑하던 짝을 잃은 고독감과 슬픔을 자연물인 꾀꼬리를 매개로 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주제는 사랑하는 임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이다. 이 노래가 사랑을 주제로 한 최초의 개인 서정시란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 3년 10월에 왕비 송 씨가 죽자 왕은 다시 두 여자를 후실로 맞아들였다. 한 사람은 화희(禾姬)라는 골천 사람의 딸이고, 또 한 사람은 치희(雉姬)라는 한(漢) 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사랑 다툼으로 서로 화목하지 못하므로 ..

[일상&산문: 구하구하(龜何龜何) 수기현아(首其現也)]

상고시대, 다시 말해 고조선 건국(BC2333년)인 원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676년)까지의 시기에, 대표적인 한역된 노래에는 구지가, 공무도하가, 황조가가 있다.구지가는 삼국유사 가락국 건국신화 속에 삽입되어 전하는 고대가요다. 삼국유사는 고구려, 신라, 백제에 관한 야사이여 집필자는 일연선사다. 삼국에 대한 정사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있다.신화는 신성성을 특징으로 한다. 단군신화, 주몽신화, 가락국의 건국신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가락국의 건국신화 속 구지가를 노래하다 보면 거북이가 신성한 영물로 떠오른다. 특히 비슬산 입구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자인 일연선사의 동상과 돌로 다듬은 거북이 형상을 마주하면 그냥 구지가가 절로 나온다.龜何龜何 구하구하首其現也 수기현야若不現也 약불현야燔灼而喫也 번작..

[일상&산문: 아으 동동(動動)다리]

2025, 을사년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과 같이 새해가 밝았지만 새해 같지 않은 새해다. 고려속요에 동동(動動)이란 노래가 있다. 고려속요란 고려민들의 노래다. 구전되어 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 , 에 기록되어 있는 노래다. 세종 때 노래집 에도 실려 있다. 동동(動動)은 전 13연, 연장체로 되어있다. 연장체를 달리 분연체, 분절체라고도 한다. 4절로 된 애국가의 형식으로 보면 된다. 풍전등화의 국란을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 없는 희망의 노래'가 동동(動動)이다. 결국 고려는 망했다. 길재도 이를 뒤돌아 보았다. 구미 금오산 자락에 길재 사당이 있다.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바람이 차다. 1월 5일이 소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