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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수필&감상: 청산에 살어리랏다.]

[자작수필&감상: 청산에 살어리랏다.]대구수목원을 지나 문씨 세거지를 따라 마비정 벽화마을을 걷다 보면 청산별곡이 입가를 맴돈다.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인흥서원이 생각보다 조촐하다. 인흥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조선후기 추계추 씨 4현을 제향 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어딘지 모르게 허접한 느낌이 들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듯한 서원이지만 장판각에는 1869년(고종 6)에 추세문이 편한 것으로, 유형문화재 제37호인 명심보감판본(明心寶鑑板本) 31매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소년은 이로하고(少年易老), 학난성(學難成)이라. 일촌광음(一寸光陰)이라도 불가경(不可輕) 하라. 미각지당(未覺池塘), 춘..

[시&감상: 안윤하 시집 《니, 누고?》 리뷰, 마음이 아프면 시도 아프다.]

[시&감상: 안윤하 시집 《니, 누고?》 리뷰, 마음이 아프면 시도 아프다.]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놓고 유리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오후 네 시의 동대구역 대합실, 형형색색의 군상들이 오고 간다.안윤하 시집 《니, 누고?》를 들고 나왔다. "니, 누고?" 그래, 틈 날 때마다 물어보지만 내가 나를 모른다.  내 안의 나를 내가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를 지경이면, 세상은 끝났다. "이게 누구지?"  알 듯 말 듯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나르시스.  유리창에 비친 내가 웃고 거울 속 할머니가 웃는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시집이 던진 화두, '니, 누고?'무표정한 모습, 혼자 때론 둘셋, 여전히 대합실은 분주하다. 오후 네 시 사십 분 ktx가 코앞에 다가왔다...

[산문&감상: 해빙, 그것은 구도자적 삶의 결정체였다.]

[산문&감상: 해빙, 그것은 구도자적 삶의 결정체였다.] '1 일 1 수필 산책'을 생활화하고 있다. 수필사랑의 일상이 문학사랑이 되고 문학사랑이 내 마음의 산책이 되면 좋겠다. 수필은 나를 짓고 나는 수필을 짓는다. 짓는다는 말은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말이다. 얼마 전 늘 '복을 지어라'란 의미의 '조복(造福)' 두 자를 부적처럼 써다가 돌아가신 이근필 옹이 있었다. '그는 퇴계 이황의 16대 종손이었다. 종택의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을 지키면서 한 세월 온몸으로 이황의 정신세계를 무릎 꿇고 실천하시다가 갔다. 내방객을 무릎 꿇고 경(敬)으로 대한 도학자의 실천적 자세는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친필 '조복(造福)'이란 부적 같은 종이 한 장이 책갈피에 아직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

[자작수필&감상: 문경새재, 사람이 곧 문학이다]

[자작수필&감상: 문경새재, 사람이 곧 문학이다] 조심스러운 빗길 운행을 바라보며 내 마음은 오로지 회원들의 안전이었다. "하루를 무사히", 이 말이 그렇게 절박하게 느껴졌음은 난생처음이다. 우리는 빗길 문경새재를 향하고 있었다. 문경새재, 내 기억으로는 두 번째 여행길이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제1관문뿐이다. 이십여 년 전 제1관문 앞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던 조랑말 몇 마리가 떠오른다. 희미한 기억,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문경새재란 단어가 주는 특이한 마력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러면서도 저 너머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 듯한 문경새재란 지역명 자체가 나는 좋다. 시집 '사평역에서'로 알려진 시인 곽재구는 '예술기행' 책머리에서 '인간이 역마를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12화 《우리 어찌 살거나》]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12화: 우리 어찌 살거나- 역사를 기반으로 한 대하소설, 현실이 소설이고 소설이 현실이다. 제12화의 제목이 《우리 어찌 살거나》이다. 구한말, 시국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흑과 백을 가늠하기 힘든 세상에서는 늘 소문대로 일은 진행된다. 을사보호조약으로 나라는 망하고 소문대로 각 부서 대신들은 자결했고 장지연은 목놓아 울었다. "금산사 미력불과 은진미륵이 통곡을 했다는 소문만이 아니었다. 사명당의 비석이 땀을 서 말이나 흘렸다고 했고, 지리산 음양샘에서 선지피가 흘러내린다고 하는가 하면, 무주 구천동 골골이 밤마다 귀신들의 울음으로 가득 찬다고도 했다. 그런 흉흉한 소문들이 떠도는 가운데 일진회에서 한일 보호조약 체결을 찬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감상: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시,<넓어지는 원> ]

[시&감상: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시,]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이 시는 라이너마리아 릴케, 의 일부다. 이 시를 읽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지금 나 여기, 이 나이에 나는 어떤 원을 그리며 살고 있는가. 아니 지금까지 어느 정도의 원을 그리며 살아온 것인가. 자의든 타의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동심원은 축소되어 왔다. 특히 은퇴를 하고 난 이후는 스스로 좁혀 가기에 급급했다. 쉽게 타인을 멀리하고 타인 또한 쉽게 나를 거부한 듯 마음의 문은 점점 좁아졌고, 넓고도 높은 하늘은 나지막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기울어 가고 있다. 이제는 보는 것이 두렵고, 듣는 것이 괴롭울 때..

[시&감상: 마샤 메데이로스의 시, 서서히 죽어가는 ]

[시&감상: 마샤 메데이로스의 시, 서서히 죽어가는 ] 수성못을 돌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계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이 있다. 대충 봐도 반반이다. 누가 시키시 않아도 오른쪽 보행을 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고 보니 자연스레 수성못이 돌아간다.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잘 돌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끔찍할까. 수성못을 거니는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쉴틈이 없고 입은 잠시도 다물지 못한다. 끊임없이 말하고 뛰고 걷는 이들을 보노라면 "서서히 죽어 가던" 내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시인 "마샤..

[산문 &감상: 이은성의 소설(중) 동의보감 리뷰, 제12화]

-영달의 길, 치부의 길이 아닌 의(醫)의 길, 텅 빈 병사(病舍), 불안한 공존- 프랑스의 세느강변과 이탈리아의 폼페이우스 광장이 허준과 유의태에게 손짓을 한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의료대란,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유의태의 마음이 착잡하다. 울부짖는 병자를 외면하고 영달의 길로 떠나간 아들 도지와 수제자 임오근. 그리고 아들을 따라가 버린 아내. 아들 도지는 내의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집안은 오히려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되어 버렸다. 유의태가 "헬조선"을 외치자 허준이 맞받아친다. "헬조선, 젠장 빌어 먹을 것들." "치병용약(治病用藥)의 술(術)이나 의료제민(醫療濟民)의 이상에 앞서 의원이 의원이고자 하는 그 심지와 품성..

[시&감상: 루미의 시,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시&감상: 루미의 시,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기가 찬다. 똑같이 보는 사물도 시인이 보면 죽은 나무의 잎이 살아나고, 가슴속의 작은 심장은 넓은 하늘이 된다. 그 속에 슬픔과 사랑과 행복이 아무리 들어가도 심장은 터지지 않는다. 시인의 눈을 보면 심장보다 작은 눈이 오히려 심장보다 더 크게 보인다. 시인의 작은 눈이 이러할진대 시인의 심장은 도대체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심장에도 방이 몇 개 있다. 잘은 모르지만 2 심방 2 심실로 방이 네 개라고 배웠다. 심장에 네 개의 방이 있는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도리도리 까꿍'이란 별명을 가진 유튜브로 유명한 대구평화방송 이상재 신부는 우리의 가슴에 '네 개의 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불안감, 죄책감, 우울감, 고독감이다. 기똥차게도 이 '네 개의..

[자작시&감상: 물새여 날아라]

[자작시&감상: 물새여 날아라] 계절이 바뀌는 시기, 이상하게도 환절기가 되면 수필보다는 시에 자꾸 눈이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경계선에서 한 계절을 통째로 말아먹고 싶은 생각 때문이랄까. 한 계절이 지나가는 문턱에서 나는 계절이 남긴 이삭을 한 줄 시로 노래하고 싶을 때가 많다. 신천을 거닐다 한 마리 물새를 보았다. 멍하니 혼자 물을 보듯 하늘을 보는 외로움이 겹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마리 물새도 그놈의 사랑 때문에 멍 때리고 있는지...... 조용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계곡물도, 미풍에 흩날리는 미세먼지도 그냥 흘러가고 흩날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깊이만큼 아픔을 동반한다. 물새여 날아라. ♤물새여 날아라/백송 바람을 따라가면 바람이 되고 물을 따라가면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