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따라 글 따라]: 일상 & 수필 레시피

[일상&산문: 화랑(花郞)을 생각하다]

백두산백송 2025. 1. 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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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다. 눈 내린 눈길이 미끄럽다. 비슬산을 올라가는 길이 어지럽다. 을사년(乙巳年) 설은 설이 아니다. 폐망한 왕조의 짙은 그늘이 비슬산을 눈길로 덮은 듯하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 왕평(王平) 작사, 전수린(全壽麟) 작곡, 이애리수 노래, '황성옛터'가 가슴을 울리며 신라의 화랑을 떠올리게 한다.

화랑(花郞)을 예찬한 노래에 찬기파랑가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가 있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10구체 형식의 노래요,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는 8구체의 노래다. 둘 다 화랑의 고결한 인품과 덕을 예찬 추모하고 있다.

죽지랑을 추모한 노래인 모죽지랑가, 신라 32대 효소왕 때 죽지랑의 낭도였던 득오라는 급간(級干)이 있었다. 급간은 신라의 아홉 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벼슬직이다. 득오가 당시 부산성(富山城)에 창직으로 부역할 때 죽지랑은 그를 구해 주었다. 죽을 고생을 하는 득오를 위해 죽지랑이 정성을 다해 구해 주자 득오가 죽지랑의 인품에 감동하여 예찬하고 추모한 노래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다.

김유신과 더불어 부수(副帥)가 되어 삼한(마한, 진한, 변한)을 통일하고 신라 진덕, 태종, 문무, 신문, 4대의 조정에 대신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이 죽지랑이다. 죽지랑은 화랑(花郞)이다. 화랑, 오랜만에 불러 본다. 나는 대학 시절 화랑반이란 서클에 가입하여 세속오계를 잠시 접해 본 적이 있다. 세속오계란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제정한 것으로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다섯 가지 계율을 말한다. 이는 유·불·선을 바탕으로 한 행동하는 양심이요 실천적 생활신조였다.

간봄 그리매/지나간 봄을 그리워하니
모든 것ᅀᅡ 우리 시름/모든 것이 울게 하는 시름

아ᄅᆞᆷ 나토샤온 즈ᅀᅵ 살쯈디니져/아름다움을 나타내신 모습이 주름살 지는구나
눈 돌칠 ᄉᆞ이예/눈 돌릴(깜짝할) 사이라도

맞보ᄋᆞᆸ디지ᅀᅩ리/만나보기 이루리.

郎이야 그릴 ᄆᆞᅀᆞᄆᆡ녀올 길/낭이여 그리는 마음에 가는 길
다봊ᄆᆞᅀᆞᆯᄒᆡ 잘 밤 이시리/다북쑥 우거진 마을에서 잘 밤이 있으리.

모죽지랑의 원문과 현대어 풀이다.

기(起),승(承),전(轉),결(結)의 사단구성의 노래로 의미상 단락 구분이 가능하다. 기(起)에서 득오(得烏)는 죽지랑을 그리는 마음에 세상 모든 것이 그의 죽음을 울면서 슬퍼하고 있다. 승(承)에서는 죽지랑의 인품을 흠모하면서 늙음에 대한 한탄과 인생무상을 노래하고 있다. 전(轉)과 결(結)에서는 이 세상에서 죽지랑과 다시 만날 수 없음에 대한 한탄과 저세상에서의 재회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상하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노래다. 화랑이란 조직 속에서 부하를 생각하는 죽지랑의 인품이 득오로 하여금 그를 흠모케 하고 있다.

화랑도의 기원은 삼국시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와 백제와의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자강을 위해 젊은 전사들을 모아 조직한 것이 바로 신라 화랑도이다. 주로 젊은 귀족 출신으로 구성되었으며 용기와 의리 그리고 정의와 가치를 중시했다.

나라가 어지럽다. 공정과 상식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꽃다운 청춘을 상징하는 화랑의 후예답게 젊은 이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자강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들이 반가울 따름이다. 어지러운 세태, 침묵 속에 글을 쓴다는 것이 심히 부끄럽다. 절필하고 싶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몸들 곳이 없다. 행동하는 양심과 인문학의 지성적 성찰을 끊임없이 요구해 온 시대의 지성들은 더이상 없다. 찬바람이 불고 금방이라도 눈비가 내릴 지경이다. 마음이 어지럽고 답답하다. (202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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