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따라 글 따라]: 일상 & 수필 레시피

[일상&산문: 구하구하(龜何龜何) 수기현아(首其現也)]

백두산백송 2025. 1. 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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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소재사

상고시대, 다시 말해 고조선 건국(BC2333년)인 원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676년)까지의 시기에, 대표적인 한역된 노래에는 구지가, 공무도하가, 황조가가 있다.

구지가는 삼국유사 가락국 건국신화 속에 삽입되어 전하는 고대가요다. 삼국유사는 고구려, 신라, 백제에 관한 야사이여 집필자는 일연선사다. 삼국에 대한 정사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있다.

신화는 신성성을 특징으로 한다. 단군신화, 주몽신화, 가락국의 건국신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가락국의 건국신화 속 구지가를 노래하다 보면 거북이가 신성한 영물로 떠오른다. 특히 비슬산 입구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자인 일연선사의 동상과 돌로 다듬은 거북이 형상을 마주하면 그냥 구지가가 절로 나온다.

龜何龜何 구하구하
首其現也 수기현야
若不現也  약불현야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 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처음 이 노래를 접했을 때는 거북이를 구워 먹으면 장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가 민강신앙이나 도교에서 말하는 십장생 중에 하나인 영물이 아닌가.

십장생은 해[日]·달[月]·산(山)·내[川]·대나무[竹]·소나무[松]·거북[龜]·학(鶴)·사슴[鹿]·불로초(不老草)라고 말하기도 하고, 해·돌[石]·물[水]·구름[雲]·소나무·대나무·불로초·거북·학·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구지가(龜旨歌), 또는 구하가(龜何歌), 영신군가(迎神君歌)의 배경설화가 신이하다.

서기 42년 3월 계욕(禊浴), 북쪽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무리 200∼300명이 거기에 모였는데, 갑자기  “여기에 누가 있느냐?”라고 묻는 소리가 들려온다.

구간(九干) 등이 “우리가 있소.”라고 대답하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하고 다시 묻자  구간들이  여기는 “구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였기에 여기에 내려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를 파서 흙을 모으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에 너희들은 매우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간들이 그 말과 같이 행하고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러자 얼마 후 자주색 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았다. 그 끝 붉은 보자기에는 금합자(金合子)가 싸여 있었다. 열어보니 그 속에는 황금빛 알 여섯이 있어 이를 본 모든 사람이 놀라고 기뻐했다.

이를 보자기에 싸서 아도간(我刀干)의 집으로 돌아와 평상 위에 두고는 모두 흩어졌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여 금합자를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동자로 변했는데, 용모가 매우 준수하였다고 한다.  

구지가의 배경설화를 읽다 보면 거북이가 땅에서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기어 다니고 심지어는 하늘에서 내린 금줄을 타고 금빛 찬란하게 내려오는 상상을 하게 한다. 한 나라의 건국신화(建國神話)나 조국신화(肇國神話)는 이 같이 신이한 느낌을 준다.

구지가와 비슷한 노래에 해가(海歌)가 있다. 구지가보다 후대인 신라 성덕왕(702~737) 때 불린 노래다.

구호구호출수로  龜乎龜乎出首路
약인부녀죄하극  掠人婦女罪何極
여약패역불출헌  汝若悖逆不出獻
입망포략번지끽  入網捕掠燔之喫


신라 때, 순정공이 강릉으로 부임해 가는 중 동행하던 아내 수로 부인이 해룡에게 납치되었는데, 한 노인의 말대로 근처 사람들이 땅을 치며 이 노래를 부르자 수로 부인이 구출되었다는 내용이다

거북이를 통한 주술적 집단무요나 노동요로 구지가와 비슷한 기능을 지닌 노래지만  내용은 다르다.  

일연선사

비슬산 등산로 초입에는 소재사가 있고  옆에는 지팡이를 든 일연선사가 있다. 맞은편에는  돌거북이 세월 속에 이끼를 머금고 있다.

온 나라가  천지개벽을 하듯 요동치고 있다. 나라를 구할 영신이 절박하다. 일연선사는 말이 없고 돌거북 머리 위에는 잡풀이 가득하다. 인문학이란 아는 것을 실행하게 하는 힘이라고 한다. 박제된 문. 사. 철이  부활해야 백성이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망하게 되어 있다. 어느 시기인들 국란이 없었으리요만 비슬산 자락 일연선사는 말이 없고 돌거북은 돌아앉아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일연선사의 지팡이라도 만져보고 싶다.(20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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