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있다. 방콕발 제주항공이 전북 무안공항에 동체착륙을 시도하면서 대형참사가 나고 말았다. 탑승자 181명 중 2명 생존, 남 여 승무원 1명씩만 살아남았다. 버드스파이크로 최고의 조난 신호인 '메이데이, 살려 주세요'를 외치며 탑승자 179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전 국민 일주일 간의 애도 기간, 기도가 기도를 부른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자꾸만 불타버린 제주항공 동체가 눈앞을 가린다. 영원한 사랑, 아니 영원한 삶을 기원하면서 김남조의 《겨울 바다》란 시와 고대 가요인 《공무도하가》를 읊어본다.
고대 가요라 하면 고대 부족 국가 시대부터 삼국 시대 초기까지 불린 노래를 말한다. 요즘 티브이 조선에서 인기리에 기획 방영되고 있는 트롯 열풍을 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흥이 있는 민족인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함께 노래하며 춤추며 흥을 즐기는 민족, 고전시가를 노래하다 보면 우리 민족의 성정이 여기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이 많은 그러면서도 내우외환의 환란 속에서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기에 구석구석 스며 있는 한을 주체할 수 없는 민족. 그래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보편정서를 정(情)과 한(恨)이라 말한다. 목하 트롯에 열광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 정과 한의 기본적인 성정에 기반하고 있다. 모여라. 노래하자. 즐기면서 일하자. 대동단결, 음주가무(飮酒歌舞)라기보다 군취가무(群聚歌舞)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무리를 지어 흥얼거리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울고 부대끼며 서로 얼싸안고 오늘의 부와 경제성장을 일궈온 우리들이 아닌가.
상고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로 구전되다 한역되어 전하는 대표적인 것에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 구지가(龜旨歌)와 황조가(黃鳥歌)가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읊어보는 노래들이다. 집단적 노동요요 의식요로 창작되었다가 차츰 개인 서정 가요로 넘어가던 시기의 노래들이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
이 작품은 중국문헌에 전하는 노래를 조선 시대 해동역사라는 책에 있는 것을 다시 한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악곡명을 공후인이라 일컫기도 한다.
배경 설화를 보자면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노인이 술병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아내가 말려도 그는 물에 빠져 죽는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를 공후란 악기로 부르고 난 뒤 그를 따라 물에 빠져 죽는다.
여필종부라기보다 남편을 향한 지고지순의 사랑이다. 그는 왜 술을 마시며 물속에서 죽었을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죽은 그를 또 따라 죽는 아내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는 이 미친 노인을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라 한다. 디오니소스는 술과 황홀경의 신인 바코스다. 즉 술의 신이다. 술은 곧 물이요 물은 생명수다.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미쳐버린 노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1구에서의 물은 사랑이요, 2구에서의 물은 임과의 이별이요, 3구에서의 물은 죽음을 상징한다. 사랑, 이별, 죽음을 통한 보편적 정한이 스며 있는 노래다.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따라 죽음으로써 영원한 사랑으로 거듭난다. 얼마나 멋진 사랑의 노래인가. 죽을 운명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이에 죽음으로써 서로가 영원한 사랑으로 거듭난다. 만남과 이별과 재생, 우리들 인생이란 모두들 이렇게 만나고 살다 죽음으로써 이별하고 다시 재생한다.
영원한 사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것은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패스트푸드적 사랑이 아닌 오랜 세월 속 익어간 슬로푸드적 사랑에서만이 가능하다. 김목경의 노래를 김광석이 리메이크하고 임영웅이 미스트트롯에서 열창을 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가 공무도하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영원한 사랑이란 있을까가 아니라 우리의 고전시가에는 영원한 사랑이 차고도 넘친다. 그렇고 보니 그 옛날 아버지도 어머니와 싸울 때는 꼭 술병을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영원한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술만은 절대로 마시지 않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는데..... 웬걸, 나도 틈만 나면 술병을 손에 들고 있다. 그것도 '어느 노부부의 60대 사랑이야기'를 흥얼거리는 나이에. 술이 물이 되고 물이 술이 된 꿈속 어느 날, 공무도하가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르겠다. 바코스, 한잔 술에 거듭나고 싶다. 하루 남은 한 해가 후다닥 지나갔으면 좋겠다.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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