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시철도 지상 모노레일 3호선 공단역(工團驛)이다. 공단이란 말이 살짝 공허하게 다가온다. 공허하다기보다 뜬금없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미리 공장용 부지를 조성한 후, 많은 공장을 유치하여 구성한 단지를 공단이라고 한다. 3호선 공단역은 공장 없는 공단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역 근처에 대구염색공단과 대구 제3산업단지의 입구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역명이 공단역이란다.
공단역, 공단이라고 해서 포항제철이나 광양 제철 아니면 여수산단을 연상하다면 이는 착각이다. 도로 주변에는 타이어나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눈에 뜨일 정도다. 사람 그림자 드문 공단역이 긴 한숨을 짓듯 맥이 빠져 있다. 공단(工團)이 공단(空團)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여 포항제철이나 여수 산단처럼 구름 같은 하얀 연기가 여기저기 피어오르면 좋겠다. 포항제철은 사촌동생이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곳이라 몇 차례 견학 겸 다녀왔고 여수산단은 딸애가 여수에 살 때 이곳을 지나치며 즐비한 공장들을 숨죽여 지나온 곳이라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그런지 3호선 공단역에 내리면 왠지 허접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3호선 지상철이 주는 묘미랄까. 흰구름, 하얀 굴뚝 연기가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 대 초 고향 들녘에는 버섯 공장이 들어서는가 하면 메탄가스를 이용한 보일러 공장들이 들어서기도 했고 여기저기 이름 모를 공장들이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공단역 주변의 슬래브 지붕 공장들이 어린시절 고향 들녘 공장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상전벽해, 1968년 착공 1970년 7월 7일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내 고향 건천과 경주를 가로질러 큰댁과 작은집, 그리고 외갓집을 외딴섬으로 만들었다. 길이 갈라지고 언덕배기 위로 아스팔트길이 들어설 때쯤, 나는 '퐁당퐁당 누나 몰래 돌을 던졌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숨바꼭질하며 코를 입에 물고 자랐다. 세월 참 많이 흘렀다. 고향 앞 철길 좌우 또는 아래위로 고속도로가 달리며 고향산천은 내 나이 따라 마구 변해 갔다.
이제 지금, 나 여기, 3호선 공단역을 바라보고 있는 눈에 어린 시절 고향마을이 겹친다. 예나 지금이나 철길 역사(驛舍)는 고향의 관문이다. 추억 속 한 무리의 형제자매와 사촌 누이들이 철길 따라 나비춤을 추고 있다. 어쩌면 철길 따라 피고 진 꿈길이 우리들 인생길이었는지도 모른다. 3호선 공단역을 전후로 만평역과 팔달역, 매천시장역을 오고 가는 풍경들이 그 옛날 고향 마을 철길 풍광들과 흡사하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공단역은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경부고속도로 옆 아화역이요, 건천역이며 경주역이다.
턱 밑을 차고 오르는 한 움큼 추억의 옛길, 경부 고속도로를 가로지른 철길이 공단역과 오버랩되며 고향 그리운 마음을 들쑤신다. 오늘은 공단역에 내려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마셔야겠다.(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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