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폭설, 대구에는 강풍이다. 확실히 겨울이 왔다.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오리 몇 마리가 천사 같다. 나는 도로변에 쌓인 낙엽으로 답했다.
시속 300킬로, 한 시간 반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아들 내외는 눈비를 뚫고, 나는 강풍과 맞서며 몸을 낮추고 있다. 같은 하늘 좁은 땅에도 서로 다른 천국이 있으니 흘러가는 하늘을 알 길이 없다.
한밤 내 또 정호승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설쳤다.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시집에 《천사의 메모》, 《천사의 말》이란 시가 있다. 정호승도 천국을 꿈꾸고 있었다.
천국을 꿈꾸다/정호승
천국에도
감옥이 필요하다고
누가 천국에다
감옥을 짓고 있다
내 죽을 때에
감옥이 완공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오늘
당신보다 내가 먼저
천국의 감옥에 갇혀
영원히 갇혀
울고 싶어도
울지는 않으리
천국에도 감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서야 알았다. 애초에 내가 천국을 꿈꾸었다는 자체가 죄였다. 천국에 감옥이 있는 줄을 알았다면 아예 천국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쓰레기통에 바퀴벌레가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얄미운 놈들, 이놈들은 꼭 두 마리씩 쌍으로 다니곤 한다. 깜짝 놀라 한 마리를 밟아 죽이고 나니 또 한 마리가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향해 발바닥을 비비고 있다. 죄라고는 쓰레기통을 뒤진 것뿐이란다.
강풍은 부는데 누군가가 한밤 초인종을 누르고 갔다. 누구냐고 현관문을 열고 소리 쳤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강풍도 사람인가 보다. 밤잠을 설치는 날은 이런 일들로 마음이 어지럽다.
밟아 죽인 바퀴벌레가 마음을 들쑤신다. 잘못이라고는 쓰레기통을 뒤진 것뿐인데, 죽이지 않아도 될 것을......
지역 따라 대설 주의보가 내리고 대구에는 강풍이 불고 있다. 손발 시린 겨울이다. 천국에도 감옥이 있는 줄 몰랐다.(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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