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심철도 3호선 원대역이다. 사면이 푸른 유리벽을 하고 있는 역사는 아담한 카페 같은 느낌을 준다. 3호선 역사(驛舍)는 어디를 가나 잘 관리되고 있어 승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원대역, 원대오거리가 있어 원대역이라 했다지만 원대역 역명은 동명(洞名)의 유래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신라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화랑도를 양성, 그들로 하여금 교육 및 심신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전국 명소를 찾아 심신수련을 했고 이때 각 명소마다 이들을 위한 숙식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터를 잡고 숙소를 만든 곳을 원(院:집 원) 또는 노원(魯院)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원대동의 원(院)은 여기서 나왔고 이곳에 대노원(大魯院)이 있었던 터(垈:터 대)라 하여 원대(院垈)라고 했다. 하여 원대란 역명(驛名)은 동명(洞名)유래에서 생겼다고 한다. (다음 나무위키 참조)
화랑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숭고한 호국집단, 이들의 숙소가 이곳 원대에 있었다니 원대역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면이 푸른 유리벽을 하고 있는 원대역과 양쪽에 우뚝 솟아 있는 아파트가 힘이 넘쳐 보인다.
원대란 역명을 보는 순간 친구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의 이름도 원대였다. 그는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았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 꼭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 같다. 훌쩍 천국으로 간 친구 생각에 한 점 구름이 부질없어 보인다.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 속 한가닥 괴롭게 시를 읊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알아주는 절친도 없을세라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 한밤중 내리는 비 소리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잔 앞 이 마음 만리를 달리네
오언절구의 한시,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다. 가을비 내리는 밤, 이역만리 당나라에서 고국 신라를 생각하며 향수를 달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절친도 없으니 그 마음 더욱 괴로웠음을 알겠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을 떠난 그는 통일신라 말기의 인물이다. 화랑의 후예런가. 신라 6두품 출신으로 17년 당나라 유학생활 후 약관 28세로 태산 군수가 되었던 사람. 진성여왕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제시, 최고 관직인 아찬(阿飡)으로 임명되었지만 이를 접고 일생을 운둔하며 천하를 누렸다. 토황소격문과 함께 전국 어디를 가나 그의 자취는 명문장이다. 만년에는 해인사 등지를 방랑하다 죽어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남기고 있는 희대의 풍운아였다.
대노원(大魯院), 원대역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팔달역을 향해가는 전동차를 놓쳐 버렸다. 또 가보자 팔달역으로.... 무엇에 미친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겠다.(20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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