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봉교역이다. 대봉교역은 대구 전통 백화점인 대백프라자와 연결되어 있다. 백화점이 플라자고 플라자가 백화점이다. 재래시장인 수성시장을 돌아 나와 대봉교역에 내리면 바로 대백프라자가 눈에 들어온다. 재래시장에 익숙한 나는 백화점 입구에서 잠시 주춤, 입고 있는 바지를 추슬러본다. 연결통로에 늦가을 내음 가득한 하늬바람이 분다.
역사(驛舍)와 연결된 통로를 따라가면 바로 플라자 실내가 나온다. 넓고 아늑한 백화점 안에는 역시 화장품 등 값진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잠시 정신 나간 사람 마냥 이 구석 저 코너를 돌아보지만 항상 발길이 머무는 곳은 통로 쪽 의류 세일 판매대다. 재래식 좌판에 익숙한 몸을 어이하나. 바지 하나를 두고도 몸은 백화점에 있고 마음은 재래시장 쪽으로 기울어 있다. 서민의 삶이란 늘 그렇다. 만지작거리다 결국 빈손으로 신천둑길을 향한다.
백화점 대형 벽면엔 벌써 행복한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행복해야 할 텐데 올겨울은 많이 춥다고들 하니 벌써 온몸이 쪼그라든다. 붉게 물든 단풍 길 따라 익숙한 길을 걷는다.
뒤를 돌아 골목길에 접어들면 김광석 거리가 나온다. 김광석 길은 고(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과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그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이다. 나는 어린 시절 지금의 김광석 거리에서 자랐다.
김광석, 나무위키에는 김광석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진정성 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많은 명곡을 남긴 싱어송라이터로, 대한민국에 포크송 붐을 일으켰던 전설적인 가수이며,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노래해 한국인들의 인생과 감성을 감미롭게 표현한 가수다.'라고.
김광석 거리, 기타를 든 김광석이 웃음으로 반긴다. 잔잔한 배경음악, 그의 노래 '거리에'란 가사가 흘러나온다. "거리에 가로등불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사로 갔다. 왜 갑자기 죽어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남긴 《나무위키의 글》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995년 8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허전함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를 치열하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나.
후회도, 보람도 아닌 그저 살아 있음에 움직인
그 움직임이 불쌍한가.
무료하다.
즐겁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즐겁지 않다.
또 이러다 가라앉는 것인가.
무섭구나.
몇 년 전 내 틀을 넘어선 내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았는가.
나는 늘 도망가고 싶어 하는, 어쩔 수 없는 쫓기는 자로 태어났는가.
무엇인가?
날 이토록 흔들고 있는 것은.
내 심연의 욕심의 근원을 모르는 것인가.
무얼 위해 보고 먹고 느낀 건가.
쓸데없는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내 허무의 기저에서 끊임없이 날 잡아내리는 것은 누구인가.-
대봉교역 백화점 앞 크리스마스트리다. 역시 오는 겨울을 반기고 있다. 마케팅 전략의 하나겠지만 보는 이에게 행복과 사랑과 설렘을 느끼게 한다. 숱한 이별과 만남, 그리고 사랑,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절은 많은 흔적을 남기며 왔다가 사라진다. 그것이 때론 사랑이 되고 후회가 되고 미련이 될지언정 사람이란 그렇게 성숙하며 익어가는 것이다. 요즘은 사랑이 부족한 탓인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아도 캐럴송을 들어도 도무지 감각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인가. 다가오는 겨울은 또 어떤 흔적을 남기고 떠날지.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을 걱정하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행복한 겨울', 어쩌란 말인가. 선문답처럼 걸린 대백 벽면 긴 현수막을 뒤로하고 신천변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신천지가 따로 없다. 올겨울은 정말 대백 가까운 신천처럼 아름답게 왔다가 미련 없이 가면 좋겠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하얀 겨울에 떠나요~낙엽지면 설움이 더해요~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정말이지 대백 마주한 신천이 너무 아름답다. 대봉교역이 붐비는 이유를 알겠다(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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