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따라 글 따라]: 일상 & 수필 레시피

[일상&수필 레시피: 3호선 여정, 서문시장역]

백두산백송 2024. 11. 2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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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역은 서문시장과 바로 붙어 있다.  아담한 역사(驛舍)가 서문시장에 안긴 형국이다. 역사가  남산역이나 청라언덕역보다  좁지만 유동인구로 보자면 30개 역 중에서 으뜸이다. 하여 서문시장 역시 재래시장 중에서 가장 활기가 넘친다. 개찰구나  환승통로를 오고 가는  승객은 모두 서문시장을 찾는 손님들이다. 그래서 서문시장역에 내리면 우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서문시장은 대신동에 있는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선거철이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대구시장도 찾는 곳이다. 총 6개 지구(1 지구, 2 지구, 4 지구, 5 지구, 동산상가, 건해산물상가)에 4,000여 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는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때 나는 서문시장 코앞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5지구에서 이불 장사를 했다. 이불을 팔았던 점포는 없어지고 바로 옆 철물점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점포 앞에서 채소를 팔았던 노점상 아지매는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미루어 짐작은 가지만.....

때때로 시장판 생활이 그리워 5 지구를 찾아 한 잔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때가 두 분 일생 중 가장 황금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5 지구 번영회 회장을 겸했고 어머니는 혼수 이불로 새색시와 아낙네들을 웃음으로
맞이했다.

나도 틈만 나면 혼수가게를 찾아 이불 배달을 했는가 하면 이런저런 잡일로 서문시장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이때가 8,90년대니 재래시장이 활기에 넘치던 시절이었다. 백화점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행성이었고 서문시장은 삶의 밑판이요 생활전선이었다. 퇴근과 동시에 두 분이 운영하는 혼수가게의 일손을 도왔던 나는 즐거웠다. 당시 혼수가게를 두고 읊었던 글이 아직도 책장 속에 남아 있다.

오늘도 하루 해가 떠오른다/ 찬통 가득
된장 찌꺼기와 겉절이 김치를 /메마른 입술  침을 삼키시는 어머니/ 항상 도매가(都賣價)로
넘긴다는 그 말씀

시집 장가가는 그네들의 혼숫감에 /어머니의 잔주름은 늘어간다 /헐값에 사서 /헐값으로 덮고 사는 이웃들

그들의 첫출발은 /어머니의 도매가에서 시작되는가 보다 /부디 행복하여라 /어머니의 목멘 도매 혼수 /속 시린 인생사를

도매 혼수 우리 엄마 /도매 장가 우리 이웃 /온통 도매 속에 /어머니의 하루는 그렇게 저문다

'한일장식', '창녕철물'은 의구하되 우리 집 혼수가계는 없다. 그래도 눈을 비벼본다. '도매 혼수 우리 엄마/ 도매 장가 우리 이웃'.

활짝 피어 이글이글한 숯불을 두고 잉걸불이라 한다. 살짝 춥다. 잉글불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서서히 야시장 포장마차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서문시장이 다시금 잉글불처럼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다.
서문시장역은 다름 아닌 서문시장이다. 맞은편 동산의료원 십자가가 보인다. 해거름 서문시장이 지상낙원이면 좋겠다. 한바탕 버스킹이 훨훨 하늘을 날고 있다.(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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