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을 퍼트려 왕이 된 사나이가 있다. 백제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과부인 그의 어머니는 못의 용과 교잡하여 아들 장을 얻었다. 장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남달랐다. 늘 마를 캐어 어머니와 함께 생업을 이어갔다. 그가 마를 파는 아이라 하여 서동(薯童)이라 불렀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선화 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갔다. 그는 서라벌에서 아이들과 친해진 뒤 함께 서동요라는 노래를 지어 불러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은 늘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남을 모함하고자 할 때 이것은 유용한 심리적 도구나 공격기제가 될 수 있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둥(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것이 현대어로 풀이한 서동요다. 선화 공주를 꾀어내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 부른 노래라 하여 참요라 하기도 한다. 형식상 4구체 향가 중의 하나다.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로 형식상 분류한다. 4구체 향가에는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가 있다. 시기적으로 서동요가 가장 오래된 향가다. 내용을 보면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한 작위적 노래다. 서라벌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로 소문을 퍼트려 끝내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다. 순수사랑을 향한 집념이 아름다운 사랑을 쟁취한 것이다.
전설의 시대, 그것도 상고시대의 지고지순의 사랑이다. 상고시대라면 국문학사적으로 고조선건국(B.C.2333)에서 신라의 삼국통일(676년)까지를 말한다. 지고지순의 집념을 통한 모함적, 주술적, 참요적, 성격의 노래라지만 사랑을 얻기 위한 동요요, 민요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동요는 동심이요 동심은 순수로서 어린 서동의 반짝이는 지혜가 빛나는 노래다.
노래로써 선화 공주를 유인한 서동이 선화 공주와 한 몸 되어 다시 백제로 돌아온다. 둘은 그녀가 쫓겨날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순금으로 생계를 도모하며, 열심히 마를 캐어 번 돈으로 황금을 사 모은다. 예나 지금이나 황금의 위력은 대단한 모양이다. 요즘 금값이 하늘을 찌른다. 쌓아 둔 많은 황금을 선화 공주가 있던 신라의 궁궐로 보내고 이로써 서동은 신라왕의 환심을 싸며 왕위에 오르게 된다. 황금, 요즘도 양국 간 화친의 매개물은 황금이다. 서동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도 결국 지고지순의 사랑을 통한 황금의 힘이다.
서동요는 삼국유사에 백제 무왕 관련 설화 속에 삽입되어 있는 노래다. 그래서 이를 삽입가요라 하며, 이 삽입가요인 서동요를 백제 무왕이 지은 것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룻밤에 법사의 신력을 빌어 수많은 황금을 신라의 궁중으로 날려 보낸 주술적 배경설화다. 이는 신라와 백제, 서로 화친의 계기를 마련코자 하는 치열한 투쟁의 한 단면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 그의 이름은 장(璋)이요, 아명(兒名)은 서동(薯童)이다. 무왕은 천문과 지리 등의 서적과 불교를 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말년에는 사치와 유흥에 빠져 백제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왕이기도 하다.
선화 공주를 얻고 왕위에 오른 타고난 지략과 계략이 종내 스스로의 운명을 옥죄인 양검의 칼날이 되고 말았으니 이를 어이 해야 하나. 하지만 설화 속 서동의 사랑은 얼마나 순수하고 낭만적인가. 신화와 전설과 민담이 지배한 시대가 그립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전설과 설화가 하늘을 날며 꿈을 키웠던 어린 시절, 보일 듯 말 듯, 될 듯 안 될 듯, 무한한 상상과 희망 속에 미래를 향해 나아갔던 그때 그 시절. 서동이 선화 공주를 유인하고 황금이 선사의 도술로 하룻밤에 신라의 궁궐로 날아가며 왕위를 향해 갔던 전설의 시대, 그 기묘한 전설과 설화를 통한 낭만적 위력의 시대가 그립다.
AI시대, 모든 것이 융합되고 해체되는 이 섬뜩한 세태. 때론 내 얼굴이 내 얼굴인지도 모를 정도로 짜깁기가 가능한 이 공포의 시대. 딥페이크란 말을 쓰기 조차 무서운 이 시대. 그 옛날 '전설의 고향'이 그립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선화 공주님은 맛둥(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머리 위로 황금이 날아다니는 꿈의 세계,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2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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