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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수필&감상: 선학(仙鶴)이 된 노송(老松), 선유도(仙遊島)여 날아라]

[자작수필&감상: 선학(仙鶴)이 된 노송(老松), 선유도(仙遊島)여 날아라] 신선이 노닐었다는 작은 섬, 선유도(仙遊島)에서 나는 한 그루 노송(老松)에 빠져들었다. 석양과 어우러져 두둥실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노송, 이미 노송은 노송이 아니라 한 마리 학(鶴)이다.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이랄까. 짐짓 나는 신선이 된 느낌이다. 선유정(仙遊亭) 정자를 품고 선유교(仙遊橋)를 유유히 날아오른 한 마리 선학(仙鶴), 한 줄기 강바람이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선유도(仙遊島) 공원에 왔다.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에 있는 도심 가까운 생태공원이다. 2002년 4월에 개장, 20년이 지난 신선이 노니는 공원이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정수장이 고요하고도 아늑하게 부활한 재활용생..

[자작시&감상: 스크린 참 좋다]

[자작시&감상: 스크린 참 좋다] 낮달이 보이기 전에 스크린 간다 낮달 같은 친구가 형님으로 반긴다 굿샷~ 십팔 홀 돌고 나니 히죽이 웃는 낮달이 중천을 날아간다 스크린 참 좋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스크린을 친다. 스크린을 친다는 말은 스크린 골프를 즐긴다는 말이다. 이제 스크린 하면 골프를 말한다. 말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언어가 신생, 성장, 사멸하는 과정도 인간사와 별반 다름없다. 힘이 있으면 이렇듯 자리매김한다. 동반자 중에 대머리 골퍼가 있다. 입도 작고 눈도 작은 사람이 낮달을 닮았다. 그는 나를 보면 그저 형님이라 부른다. 함께 라운딩을 하는 날이면 몸도 마음도 날아간다. 자주 치면 칠수록 정이 가는 사람, 그의 얼굴은 늘 웃는 골프공이다. 굿샷! 대머리가 친 공이 하늘을 날아 홀을 향하..

[자작시&감상: 상처 깊은 밤에는]

[자작시&감상: 상처 깊은 밤에는] 상처 깊은 밤에는 시를 쓴다 시를 쓰면 시에 박힌 상처가 꽃처럼 피어난다 흔들흔들 바람 같은 이 마음 모진 바람이 또 할퀴고 지나간다 분명 저기 저 바람벽에 그믐달 같은 하얀 사람은 피고 지는데 상처 깊은 밤에는 시를 쓴다 밤 깊도록 시를 쓴다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다녀왔다. 마늘, 양파, 감자밭이 보기 좋다. 도동리 138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 뒤 자전거길을 따라 거닐었다. 축사에는 살이 오른 소들이 한가롭게 여물을 씹고 있다. 열병이다. 보름 지나 그믐달이 되도록 달빛이 보이지 않는다. 안고 가야 할 사람은 많은데 서로 등지고 가는 사람들. 사람들은 자꾸 떠나가고 세월은 자리를 비운다. 모진 밤, 한 줄 시를 쓰다 보면 그믐달이 하얀 사람으로 피어오른다. (20..

[자작수필&감상: 흥 너머 신선놀음]

[자작수필&감상: 흥 너머 신선놀음] 상주 경천대 폭포수가 길손을 유혹한다. 오월의 더위가 이미 한여름이다. '낙동강 1,300리 물길 중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일명 자천대( 自天臺)'라 불리는 경천대(驚天臺). 셔틀버스를 타고 오르내리는 조각공원, 경천전망대, 상도 촬영장, 무우정.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지나칠 때면 저런 곳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자연에의 동경, 이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멋진 벗이 대나무숲 속 전원주택을 지었다. 편백나무로 천장과 벽을 장식하고 남향으로 반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거실에는 한 편의 시를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생전 춘부장께서 쓰신 서예 작품이다. 興來長嘯上高樓(흥래장소 상고루) 높은 누각 읊조린 흥 길게 이어지고 明..

[자작수필&감상: 진밭골이 될 줄은 몰랐다]

[자작수필&감상: 진밭골이 될 줄은 몰랐다] 진밭골 깊숙한 곳에서 부추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막걸리에는 부추전이다. 진밭골은 대덕산과 용지봉 사이의 긴 골로서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 있다. 논농사나 밭농사를 하기에 부적합하여 수전(水田)이라 불렀고, 순우리말로 물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여 얼핏 들으면 쓸모없는 곳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진밭골만큼 포근한 계곡도 드물다. 진밭골, 이름과 달리 공기 맑고 아늑한 골짜기는 도심 가까운 힐링 장소로서는 일급 지라면 일급 지다. 가끔씩 친구들과 오르락내리락하며 거닐 수 있는 집 가까운 그리 높지 않은 진밭골을 나는 좋아한다. 이날도 우리는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누어 앉았다. 몇 차례 술잔이 돌아가고 살짝 이마에 맺힌 땀이 식어갈 때쯤 일상사를 두..

[자작시&감상: 국밥이 국밥을 먹는다]

[자작시&감상: 국밥이 국밥을 먹는다] 국밥이 국밥을 먹는다웃는 돼지도 먹고우는 돼지도 먹는다국밥이 국밥을 먹는다때론 따로국밥을 먹고때론 훌훌 말아먹기도 한다국밥이 국밥을 먹는다내보다 더 잘 먹는다돼지는 온몸이 돼지국밥이다나도 온몸이 돼지국밥이다돼지도 나도국밥을 먹는다우리는 한 몸이다*나는 돼지국밥을 즐겨 먹는 편이다. 국밥에도 내용물에 따라 순대국밥, 순살국밥, 섞어국밥, 따로국밥이 있다. 그때그때 선택에 따라 무엇이든 그침 없이 먹는다. 여기에다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그들이 붙인 이름 따라 "일품돼지국밥"이 되고 "정성순대국밥"이 되기도 한다. 이런 돼지 국밥을  정신없이 먹다 보면 돼지가 국밥을 먹는지 내가 국밥을 먹는지 헷갈린다. 돼지국밥이 내가 되고 내가 돼지국밥이 된다. 그렇게 돼지도 나도 ..

[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2권 제1화 《횃불 횃불 횃불》]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제1화 횃불 횃불 횃불-횃불은 의병 봉기를 상징한다. 들녘에 봄기운이 아련하게 어렸다. 봄기운이 살아서 움직인다. 이것은 겨울이 풀리고 있는 모습이다."얼었던 산천만 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몸도 풀리고 있었다. 몸이 풀리기를 기다려 제일 먼저 몸을 일으킨 곳이 충청도였다. 안병찬이 의병의 깃발을 세운 것이다."중심인물 송수익과 임병서가 뒤뜰에서 만나고 있다. 충청도에서 시작된 의병봉기가 일단은 왜놈들과의 접점에서 패했다는 소식 속에 "이등박문"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왔다. 통감부의 첫 번째 일이 경기, 인천, 부산 등지에 일본 거류민을 위한 수도시설 사업이다. 식민지적 상황이 아니라면 얼마나 숭고한 사업인가. 그냥 솟아오르는 샘물이 아니라 깨..

[자작시&감상: 손수건]

[자작시&감상: 손수건]손수건을 들고 길을 나서면사람이 따라온다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듯 손수건 위로 피어오른다손을 흔들며 갔던 사람은 반갑게 피어오르고눈물을 훔치며 돌아선 사람은 피다 말고 이내 진다손수건을 들고 길을 나서면 그리운 사람은 그리운 대로 보기 싫은 사람은 보기 싫은 대로 그렇게  꽃은 피고 진다 *딸애가 쇼핑몰을 열면서 기념으로 손수건 몇 장을 보내왔다. 딸애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박을 기원하자 살짝 손수건이 웃으며 마른 내 입술을 훔쳐갔다. 생각보다 촉감이 좋은 것이 꼭 딸애의 심성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대박이 나면 좋겠다.그런가 하면 지난주에는 서랍을 정리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구입한 '나노건강손수건'이 눈에 띄었다. 분홍색깔의 이 손수건을 사용하면 눈이 맑아지고 ..

[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중) 동의보감 리뷰, 제13화]

-소설 동의보감,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따로 없다.-멀쩡한 대낮에 버스정류장을 돌진한 차를 목격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 하나 없었다. 아니 이 시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급발진인지 오작동인지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한참을 멍하니 섰다가 어디엔가 전화를 한다. 나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지럽다. 버스 두 대 놓치고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좌충우돌, 차는 머리를 처박고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박살 난 유리알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차도 미치고 사람도 미친 것인가. 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지만 계절이 이러하니 꽃도 하늘도 땅도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다. 땅이 썩고 바다가 뒤집히고  하늘이 어지러우니 어디 사람인들..

[자작시&감상: 친구 길보]

[자작시&감상: 친구 길보]대구다나온나술 한잔 하자그래어디고동대구다알았다홀짝홀짝낮달도 술을마신 듯친구 따라서울로갔다*50년 묵은 친구가 대구에 출장을 왔다. 퇴임하고도 업무차 출장을 왔다니 예나 지금이나 멋있다. 말이 필요 없다. 보기만 해도 좋다. 길보(吉步), 그의 호(號)는 길보다. 낙지도 보쌈도 막국수도 길보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역시 친구 길보가 최고다. 길보, 정말이지 길한 걸음을 했다. 순식간에 막걸리 세 병을 마셨다. 한 병은 너무 반가워서 그저 반갑다며 입으로 마셨고, 또 한 병은 막걸리 잔이 우그러지도록 박고 박으며 온몸으로 마셨다. 그리고 마지막 한 병은 또 만나자며 변함없는 우정을 다짐하며 마음으로 마셨다. 술맛이 꿀맛이고 꿀맛이 술맛이다. 술이 술술 넘어가니 송대관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