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일상&독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읽기 2]

백두산백송 2025. 4. 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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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명상록 표지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은 [서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의 생애와 품고 있었던 생각], [제1편~12편], [생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한평생 지낸 일], [예림미디어/함희준 옮김]으로 편집,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되어 있다.

[제2편 2]

작은 육체, 적은 호흡, 그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성, 이것들은 바로 나 자신이다. (책을 잊어버려라. 더 이상 그것을 열망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의 소양(素養)의 일부분이 아니다.)

이미 죽음에 이른 사람처럼 첫 번째 것- 육체의 끈적이는 피, 육체의 신경과 정맥과 동맥의 망상 조직- 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라.

호흡도 그렇게 생각하라. 호흡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번 내뿜는 숨이다. 그 숨은 언제나 한결같이 않지만 순간마다 내쉬고 다시 들이마신다.

그런데 세 번째 것인 이성은 주인이다. -당신은 이것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이제 당신의 머리 털은 백발이 되었으니 꼭두각시처럼 자기 이익의 모든 당기는 힘을 와락 잡아당기면서 더 이상 이성이 노예의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하라. 늘 오늘을 불평하거나 내일을 한탄하면서 운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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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감상]

-스토아철학은 일상의 윤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이성의 논리다-

헬레니즘 시대에 발생하여 전기 로마시대까지 성행한 철학의 한 유파가 스토아학파다. 마르쿠스가 가치를 인정했던 철학 체계인 스토아철학은 기원전 300년에 제논(Zenon)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스토아철학, 즉 Stoicism이란 명칭은 제논이 자주 강연을 했던 아테네의 Stoa란 곳의 이름에서 생겨났다.

천상의 윤리가 아니라 지상의 윤리가 스토아다. 풍요로운 삶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상의 지혜, 용기, 절제 또는 중용, 이 네 가지 미덕을 실천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것에서 온다고 했다.

스토어학파의 철학자들은 철학을 '지혜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으로 정의했다. 지혜는 신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가진 사물에 대한 지식으로 정의되었다. 이 지식을 3가지 부분인 논리(Logic), 물리(Physics), 그리고 윤리(Ethics)로 나누었다. 진리를 찾는 첫째 요소는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고 정확한 사고로 보았다. 사고 자체는 정확한 말의 사용과 전문 용어의 범위에 달려 있기 때문에 처음의 연구는 논리였다. 그리고 물리(Physics)는 인간, 우주, 신의 완전한 연구를 지향했고 마지막으로 윤리(Ethics) 연구를 강조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철학을 '살아 있는 동물'과 비교했다. 동물의 뼈와 힘줄은 논리에 해당되고, 살의 육체는 윤리에 해당되고, 영혼은 물리에 해당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또다시 그들은 철학을 '비옥한 밭'에 비유했다. 논리는 밭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이고, 윤리는 그 밭이 맺는 농작물이고, 물리는 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늘 오늘을 불평하거나 내일을 한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되는 일이 없다. 세상은 어둡고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도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글은 왜 쓰고 공부는 왜 하고 티스토리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자조적 한탄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힘센 자 앞에 윤리도 없고 논리도 없고 눈물도 없는 현실을 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

스토아학파들이 주장했던 논리와 윤리와 물리는 더 이상 없다. 비옥한 밭과 울타리는 허물어졌고 농작물은 강풍과 화염에 날아가고 불타버렸으며 흙은 오염되어 썩어가고 있다. 지상의 화염으로 바다의 배가 불타고 하늘이 메마른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다.

사람이 썩고 땅이 불타고 하늘이 울고 있다. 로마제국은 불타버렸고 폼페우스 광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아엠에프가 오기 직전 나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광장을 돌아온 적이 있다. 황홀한 여행은 나에게 꿈을 주었고 용기와 사랑을 주었다. 세느 강변이 밤물결에 출렁이고 돈키호테와 산초를 바라보며 올리브기름에 플라멩코를 즐길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 인생의 별의 순간? 이 온 줄 알았다. 이탈리아의 공중목욕탕 속 엉킨 나체와 대형 박물관 속에 있던 한반도 지도와 국기를 바라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줄줄 외웠던 자신은 이제 광장 한 모퉁이를 오가며 실존과 불안으로 오염되고 불타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부정적인 단어들을 마구 삼키고 있다.

-그래도 이성을 찾자. 작은 육체, 적은 호흡, 그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성, 이것들은 바로 나 자신이다-

다시 스토아학파가 주장하는 철학의 세계, 이성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한 없이 작아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이지만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해 내가 더 이상 초라해질 수는 없다.

에픽테토스의 명언과 세네카의 말로 갈무리 해 본다.

"내가 부끄러운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못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에픽테토스>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매일 한 가지 좋은 것을 얻어간다. 날마다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귀가하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 더 현명해진다."<세네카>

두 사람은 스토아학파의 거장이요, 이들이 남긴 명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삶의 지침서가 된다. (20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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