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시 읽기& 감상: 마음이 가난해지면]

백두산백송 2025. 3. 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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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도 나의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마음이 가난해지면
비 온 뒤 지옥에 꽃밭을 가꾸기로 했다
채송화 백일홍 달맞이꽃을 심어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꽃 한 송이 피우기로 했다
감나무도 심어 마음이 배고플 때마다
새들과 홍시 몇개는 쪼아 먹기로 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의 봄날도 나의 것이다 지옥에 봄이 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기에 죽어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기에
지옥에 텃밭도 가꾸기로 했다
상추 고추 쑥갓 파 호박을 심어
호박잎에 저녁별을 쌈 사 먹을 때마다
마음은 더욱 가난한 흙이 되기로 했다
흙을 뚫고 나온 풀잎이 되기로 했다(마음이 가난해지면/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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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감상]

마음이 가난해지고 글이 배고픔을 느낄 때 나는 시를 읽는다. 물론 시가 좋아서 읽지만 때론 가난해진 마음을 어찌할 방도가 없어 시를 꼭 꼭 씹기도 한다.

시는 시도 때도 없이 씹어도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미움이 있고 심지어 가난해진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고 가난해서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때 나는 '시인의 기도'를 올린다. 시인의 기도란 것이 뭐 대단한 것 같지만 실은 시인의 기도란 속죄의 기도다. 속죄는 마음이 가난해지면 더욱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게 만든다. 하늘을 보는 것이 다름 아닌 시인의 기도다. 시인은 늘 하늘을 보아야 한다. 하늘에는 시인보다 더 맑고 고운 별이 있다.

정호승 시인도 마음이 가난해지면 호박잎에 저녁별을 쌈 싸 먹는다고 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에 꽃밭을 가꾸고,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에 텃밭을 가꾸기'로 한 시인의 마음이 저녁별이고 채송화요 백일홍이며 상추 고추 쑥갓이다

나는 하늘을 보고 성호를 그을 때만큼 마음이 가난해질 때가 없다. 그것도 세 번씩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를 반복할 때면 허기진 내 마음에 비가 내리고 꽃이 피고 천둥과 번개가 내리친다. 그리고 마침내 가난한 흙이 된 마음을 뚫고 비로소 풀잎이 돋아난다.

현관 앞 모란이 기어이 새잎을 피웠다. 지난겨울 아니 며칠 전 싸락눈이 내리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나는 모란이 빈 마음으로 흙이 되어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모란이 사람인 나보다 먼저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기도'를 겨우내 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정호승 시인의 '마음이 가난해지면'이란 시를 읽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래서 시란 위대하고 시인은 거룩한 성자인가 보다. 허기진 내 마음도  흙이 된 마음으로 풀잎하나 돋아나면 좋겠다.(202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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