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따라 글 따라]: 일상 & 수필 레시피

[일상&오늘의 수필: 플루트 연주자]

백두산백송 2025. 3. 13. 06:40
728x90
320x100

 

창문을 파고드는 봄빛을 바라보며 고전 수필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피천득의 《인연》이란 수필집이다. 1910년대 일제하에서 출발하여 광복을 거쳐 근대화의 초기까지 활동한 그는 영문학자요 시인이요 수필가다. 그가 남긴 수필집 《인연》이 왜 눈에 들어온 것일까. 수필 '인연'의 '아사코'는 간데없고 그의 수필 <플루트 연주자>가 자꾸 머리를 들쑤시는 이유란 무엇일까.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작은 밀알'이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살아보니 하찮은 나도 내 아닌 우리를 위해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하는 것보다는 틈만 나면 지휘자가 되기를 꿈꾸며 살아온 것만 같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든 지휘자가 아닌 간간이 파고드는 '플루트 연주자', 어쩌면 이 세태에 이런 연주자가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1969년 그의 시와 수필을 엮은 책, 《산호와 진주》에 실린 그의 수필 <플루트 연주자>를 오늘의 수필로 선정해 본다.

플루트 연주자/피천득

지휘봉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그러나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한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팀의 외야수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스케르초(scherzo)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는 둔한 콘트라베이비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플레이어를 부러워한다.
<전원교향곡> 제3악장에는 농부의 춤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투런 바순이 제때 나오지 못하고 뒤늦게야 따라 나오는 대목이 몇 번 있다. 이 우스운 음절을 연주할 때의 바순 연주자의 기쁨을 나는 안다. 팀파니스트가 되는 것도 좋다. 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드리는 순간이 오면 그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자기를 향하여 힘차게 손을 흔드는 지휘자를 쳐다볼 때, 그는 자못 무상의 환희를 느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공책에 줄 치는 작은 자로 교향악단을 지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토스카니니가 아니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 밑에 무명(無名)의 플루트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
플루트 연주자를 제재로 조화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수필이다. 관조적이고 교훈적인 성격이 짙은 글로서 사물에 대한 인식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지휘자가 아닌 조연자로서의 한 사람인 플루트 연주자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를 비유를 통해 잘 던져 주고 있다. 고전수필이 지닌 항구성과 보편성이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세상, 조화로운 우주를 생각하며 수필집 《인연》의 서문을 넘겨 본다.


'《산호와 진주》 속에 들어 있던 시와 수필을 떼어 《금아시선 琴兒詩選》으로 엮은 것은 1980년의 일이다. 그 후 써 온 시를 더해서 1993년에 시집《생명》을, 그리고 올해에는 잃어버릴 뻔한 수필 몇 편을 찾아내어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이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을 위하여 글을 써 왔다. 이 기쁨을 나누는 복이 계속되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 말은 1996년 샘터사에서 피천득 선생이 수필선집 《인연》을 내면서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산호와 진주》 는 1969년에 출판된 그의 '시와 수필집'이다. 그는 수필선집 《인연》(1996. 샘터)'의 서문에서 《산호와 진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산호(珊瑚)와 진주(眞珠)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 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내가 찾아서 주워 모은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고 부르련다.'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을 산호와 진주로 생각하고픈 피천득. 1910년 서울 출생, 1930년 <신동아>에 '서정곡'을 발표하면서 문필 생활을 시작. 그의 시는 자연과 동심이 소박하고 아름답게 녹아 있다는 평을 얻었고, 섬세하고 간결한 언어로 그려진 그의 수필은 남녀노소에게 고른 사랑을 받아 대표작 '인연'을 비롯하여 '수필'과 '플루트 연주자'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유일한 수필집 <인연>과 시집 <생명> 그리고 번역서 <내가 사랑하는 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등을 펴냈다. 그의 첫 시집 <서정시집>은 1947년에 발표되었다.

피천득의 좋은 수필집, 《인연》을 들고 이런저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나도 참 우끼는 인간이다. 답답하다. 답답한 현실이다. 좋은 수필이 주는 우아미와 숭고미란 어디에도 없다. 주택가 골목길에는 아직도 전신주가 가로등을 달고 있다. AI시대라지만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골목에는 길바닥 붉은 벽돌이 지저분한 쓰레기를 보듬고 있다.

시인 구상은 어디에 갔고, 시인 신동엽은 어디에 가 버렸나. 하기야 피천득이 어느 시절 어느 때 사람이던가.

'조국아, 심청이 마냥 슬프기만 한 너로구나.
시인아 너의 이름을 부를 양이면 목이 멘다.
저기 모두 세기의 백정들
도마 위에 오른 고기모양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만하더냐.

조국아, 거리엔 희망도 절망도 못하는
백성들이 나날이 환장해만 가고
너의 원수와 그 원수를 기르는 벗들은
너를 또다시 두 동강을 내려는데
너는 오직 생각하며 쓰러져 가는 갈대더냐'
(후략) 《'초토의 시 10 - 휴전 협상 때' 중》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수필집, 《인연》이 봄바람을 비웃듯  '물에 젖은 조약돌과 조가비'가 봄볕을 비껴가고 있다.(2025.3.13.)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