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수필&감상: 마침내 스며든다/윤영]

백두산백송 2025. 7. 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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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스며든다(윤영 수필집/연암서가 출판)

폭우에 흠뻑 젖은 책을 들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빗물이 스민 글들이 우체통 없는 집을 원망하듯 잔뜩 찌그러져 있다.

《마침내 스며든다》, 윤영 수필집이다. 스며들어도 확실히 스며들었다. 스며들기를 운명으로 출산한 책이기에 어쩌면 잘 된 것인 줄도 모르겠다. 삼일 낮밤을 볕이 잘 드는 축대에 걸어두고 정성껏 말렸지만 한번 스며든 빗물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확실히 스며들었다. 책도 글도 타고난 운명을 어이하랴.

스며든다. 아니 나는 이미 스며들었다. 표제 그림이 우선 매혹적이다. 《노란 옷을 입은 여인》, 1934년 이인성의 그림이다. 어딘지 모르게 작가 윤영을 닮은 여인의 눈동자가 나에게 스며들기를 강요하듯 바라보는 시선이 매섭다. 1934년 대구 출생의 서양화가 이인성, '조선의 고갱'이라 불리는 그의 그림을 표지화로 끌어들인 옹골찬 고집이 표제작 《마침내 스며든다》를 후다닥 펼치게 한다.

《작가의 말》의 일부다.

-그럭저럭 네가 내게로 참 잘 스며든 하루.
오일장에 늘린 물건 같은, 지천에 흩어지고 넘어지고 부러진 글을 모아 또 한 권의 노트를 펼친다. 불현듯 삼거리에 있던 가게 '골치아픈집정리'가 떠오른다.
(생략)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시인이요, 소설가요, 프랑스 극작가인 '프랑시스 잠'의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 윤영은 자신과 프랑시스 잠 사이에는 각기 다른 언어지만 글을 쓰는 텃밭이 공존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고도 했다. 멋진 발상과 의도로 묶은 수필집, 빗물에 젖어 부푼 책이 호기심 짙은 내 가슴이다.

나는 작가 윤영을 잘 알고 있다. 잘 안다는 것은 그냥 사람과 글을 좀 안다는 말이다. 소주를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는가 하면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 그녀의 수필은 삶은 감자를 닮았다. 껍질이 약간 벗겨지면서 하얀 속살이 부풀어 오른 잘 삶은 감자는 빨리 먹고 싶다. 수필이 격(格)의 문학이라 작가의 격을 알고 나면 그냥 글을 통째로 삼키고 싶은 것이 수필이다. 대체로 사람이 좋으면 글도 좋은 것이 수필이 지닌 특성 중의 하나라면 하나다.

표제작 《마침내 스며든다》,

-'항아리에 꽂아둔 청매화가 흐드러졌다. 고요하게도 피는구나.'

매년 봄이면 정 선생님은 정원에 있는 고목이 된 매화꽃 가지를 꺾어 안겨준다. 올해도 변함없이 기별을 받았다. 조만간 청매가 꽃잎을 열 것 같으니 다녀가라고.

소소리바람이 앞산 자락을 휘감았다. 구순 가까운 노작가는 장대를 들고 매화나무 가지를 끌어당기고 쉰 중반의 나는 가지를 낚는다. 아무리 깨금발을 딛고 손을 내밀어 보지만 좀체 잡히지 않는다. 꽃가지는 아득하기만 하고 꽃사냥은 멀기만 하구나.

잔가지 사이로 보이는 봄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 선생이 뻗쳐 올린 양손은 연거푸 내려앉는다. 매번 가지를 놓치거나 장대를 놓치는 바람에 어린 유두 같은 망울들이 목덜미를 타고 가슴팍으로 흘러들었다. 수십 년 시간께가 허물어진다. 아리하기도 하거니와 호젓하기도 한 한낮의 고요.

그렇다. 합세하여 얻은 매화가 지하철을 타고 낙동강을 건너왔으니 좀 귀한가. 눈을 감고 풋사과 빛의 꽃에 코를 오래 박았다. 마침내 스며든다. 번잡함을 다 묻고서 으레 그런 것처럼 스며든다. 속이 부푼다.

그 애먼 청매가 활짝 피었건만 노작가는 문자도 사진도 받으실 줄 모르니. 이사 온 꽃소식의 안부를 목소리로 전하는 오후, 꽃향이 환장하게 좋다 하였더니 그 꽃을 극진히 대하는 자네도 환장하기에 좋다고 하신다.

장대를 뻗어 올리느라 살짝살짝 올라간 치마 아래로 보였던 노작가의 꽃신이 청매에 어린다. 그날 신발코에 피어났던 꽃은 흑장미였을까. 목단이었을까.

심중이 한량없이 맑다.-《마침내 스며든다 전문 /윤영》

프랑시스 잠과 같은 일상적 스며듦이 노작가와의 교감으로 치환된 표제작이다.  그녀와의 교감은 꽃사냥으로 갖고 온 매화가지를 매개로 한다. 항아리에 꽂아 둔 애먼 청매가 활짝 피고 이를 바라보는 작가는 뜻밖의 결과에 노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꽃 좋고 사람 좋아 둘은 하나 되어 환장한다. 환장의 상태는 제정신이 아니다. 활짝 핀 청매화를 바라보는 윤영,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청매화가 아니라 구순에 가까운 노작가다. 꽃향기 따라 마침내 스며든 것은 노작가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연민이다. 그것도 흐드러지게 핀 청매화다.

흑장미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요 목단의 꽃말이 부귀영화가 아닌가. 사람도 꽃도 흐드러지게 피고 나면 간다. 그림에만 화룡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글에도 있다. '심중이 한량없이 맑다.'
화룡점정이란 이런 것이다. 순간 눈물이 뚝 떨어진다.

마지막 화두로 던진 한마디가 노작가의 꽃신에 오버랩된다. 꽃신에 머문 내 마음도 '한량없이 맑다.' 맑음은 사랑이요 눈물이다.  언젠가는 내려놓고 가야 할 인생, 그래도 아직 윤영은 '어린 유두 같은 망울들'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 노작가의 꽃신에 어린다.  '한량없이 맑은 심중'이 마냥 슬프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어린 유두 같은 망울들'이 작가 윤영의 목덜미를 타고 가슴팍으로 흘러들고 있다. 그녀도 나도 '마침내 스며든다'. (2025.7.25.)

백송글방

좋은 글벗, 좋은 인연, 몇 평 안 되는 글방이지만 자주 쉬었다 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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