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ciwo0x/btsycsKv17P/QACqoQKWpm5AtMaok5FOBK/img.jpg)
[명상수필: 사랑의 길 되게 하소서]
환호공원, 바다를 짚고 일어선 '스페이스 워크'(포항 환호공원에 있는 하늘 구름다리)에 올랐다. 하늘과 맞닿은 가을바다가 일렁인다. 허리를 굽혔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흐느끼듯 바다가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삶과 죽음, 그녀는 갔다. 사랑했던 바다 시인은 갔다. 잠시 나는 떨리는 기도를 올렸다.
명시, 명작, 뭇 시인들의 삶에 있어 영원한 스승이요, 문학적 삶의 보편성과 항구성을 지녔던 여류시인 김남조. 선생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나는 '하늘 구름다리'에서 접했다. 길게 한숨을 토해 내듯 출렁이는 파도도 잠시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이다.
향년 96세, 어쩌면 천수를 누린 축복받은 인생, 하느님 곁으로 훨훨 날아간 순수의 영혼을 나는 경배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 삼아 바다를 유난히 사랑한 시인 김남조.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그녀는 심장이 아프면서도 망구를 바라보는 나이(86세)에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출간했다.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심장이 아프다》 중에서
책갈피 사이사이 사람의 그림자가 아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모든 시가 다 사랑을 노래한다는 시인의 말'이 큰 울림 되어 사랑의 시인들이 사랑을 먹고 자라며 시를 쓴다.
-나무와 나무 그림자
나무는 그림자를 굽어보고
그림자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밤이 되어도
비가 와도
그림자가 거기 있다
나무는 안다-/《나무와 그림자》 전편
'회한과 궁핍과 고통이 바수어져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지는 삶.' 이리도 진지한 우리네 삶은 '나무와 그림자가 되어 서로를 굽어보고 올려다보며', 하늘이 부르면 미련 없이 간다. 마리나 막달레나여~ 이제는 바다 건너, 푸른 하늘 양지바른 곳에서 편히 쉬소서.
젊은 날, 삶과 허무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겨울바다》를 노래했던 시인.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시, 겨울바다> 중에서
그래 시인은 갔다. 겨울을 기다리는 푸른빛 가을 바다도 슬픔을 삭이듯 조용하다. 다시금 그녀의 명복을 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새를 이제는 볼 수 있으리라. 사랑의 의지가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활활 타버린 순간, 나를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시간, 이제 님을 맞이할 기도의 문은 활짝 열리리라.
순수의 삶을 살다 간 철저한 신앙인, 그녀의 세례명은 마리아 막달레나. 나는 수심 속 인고의 물기둥을 바라보며 《겨울바다》를 파도에 실어 본다. 정말이지 이제는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하여 가시는 그 길, 영원한 사랑의 길 되게 하소서.
![](https://blog.kakaocdn.net/dn/pIEm8/btsybQx8uBN/scA1jej8r9DNFcdndY1k60/img.jpg)
'[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수필: 무심] (34) | 2023.10.22 |
---|---|
[명상수필: 도토리묵을 생각하다 ] (37) | 2023.10.16 |
[명상수필: 형제지정(兄弟之情)] (20) | 2023.10.12 |
[명상수필: 요놈의 거울] (32) | 2023.10.09 |
[명상수필: 사람이 그립다] (31) | 2023.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