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형제지정(兄弟之情)]

백두산백송 2023. 10. 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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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형제지정(兄弟之情)]

가을이 외롭다고 말하지 말라. 역시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요, 사랑의 계절이다. 그것도 봄 여름을 지나 세월 속에 곰삭은 곰탕 같은 사랑의 계절이다.

가을, 오랜만에 동생 집을 찾았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자 서로의 마음은 허접했나 보다. 우리는 부모님이 계실 때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비움이 생성한 또 다른 사랑의 불씨를 돌아가신 두 분이 시나브로 지펴셨나보다. 그렇게 두 분의 마지막 길이 아쉬워 울먹였던 그 마음들이 이제는 한 줌 사랑으로 거듭나 살아 계실 때 못 느꼈던 형제애로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족에 얽힌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의 순환 속에  한 가족으로 잉태되어 여름을 지나 가을을 가슴으로 안고 이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동생이나 나나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이 많이도 갔다. 정말이지 계절로 치자면  늦가을이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잔주름이 켜켜이 목젖을 울리고, 한 잔  막걸리 사이로 흰머리카락이 둘의 마음을 흔든다. 그래도 용케도 잘 버티어 온 세월.

낮에 바라본 황금들녘이  한밤을 뒤척인다. 두 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형제애가 이렇게 진한 곰탕처럼 우러나올 줄은 몰랐다. 그렇고 보니 점심도 우린 곰탕을 먹었다.  포항 죽도 시장 안에 자리 잡은 백 년 가게, 백종원이 다녀간 평남곰탕집. 맛이 달랐다. 진한 국물맛이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같은 맛이다.  

처음과 끝맛이 한결같은  곰탕, 역시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형제지정이란 이런 것일까. 막걸리 한잔에 흥겨운 형을 앞에 두고 동생은 기회가 주어지면 형에게 고급 승용차 한 대를 사 주고 싶다고 했다.  듣는 순간,  가슴을 울리는 베토벤 교향곡이다. 설령 이 말이 헛말일지리도 세월 속에 꾸역꾸역 말아 두었던 그 말이  눈물을  억지로 삼키게 했다. 진한 국물맛이다.  어린 시절 함께 노닐었던 철부지 형제사랑이 세월 속 곰삭은 곰탕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떠나가신 빈자리를 이렇듯 곰탕 같은 형제애로 거듭나게 하다니. 생사를 초월한 두 분의 사랑이 이렇게 클 줄이야.

그래, 긴 세월 여름밤은 너무 짧았다. 이 가을, 창 넓은 동생집 한편에서 한 줄의 시를 쓰고 있지만 이 가을도 이내 사라져 갈 것이다. 성급한 내 마음에는 이미 찬서리가 내리고 있다. 하얀 머리카락처럼.

그렇다고 가을이 외롭다고 말하지 말라. 가끔은 현상과 물질의 저 편에서 내 마음 외로이 서성이지만 아직은 황금들녘이 있고, 세월 속 곰삭은 곰탕 같은 형제지정이 있다. 무엇보다 이렇듯 빈자리를 다시금 사랑으로 채워 주시는 생사불문 부모님의 큰 사랑이 있다. 곰삭은 곰탕 한 그릇이 이 가을 한 줄 노래를 남길 줄은 미처 몰랐다.

새벽하늘에 그믐달과 금성이 창가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깊숙이 자리 잡은 이 가을,  형제지정도 가을처럼 한밤 내 익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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