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요놈의 거울]

백두산백송 2023. 10. 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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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요놈의 거울]

거울, 거울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많아지는 것도 그렇지만 생각이 깊어진다. 젊었을 때는 거울을 보면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 거울을 보면 자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내가 없고 내 아닌 내가 웃고 있다.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니다. 거울 안의 얼굴과 거울 밖의 얼굴, 둘 다 믿지를 못하니 둘 다 내가 아니다. 그러니 거짓인 나를 보며 거짓 맹세를 하기도 하고 거짓으로 타인을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이상은 "거울 속에 또 다른 내가 있고 거울 속에 나와 거울 밖의 나는 결코 화합할 수 없다"는 시를 썼다. 이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거울을 보고 있으면 거울은 침묵하고 있는데 나는 끝없이 말한다. 이렇고 보면 거울은 멀쩡한데 나는 어딘가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하다. 항상 거울이 말하기 전에 거울 속의 내가 먼저 말을 한다. 거울밖에 있는 네 얼굴은 가면이라고.

사랑할 때도 그랬고 미워할 때도 그랬다. 입만 열면 "사실은~ 사실은", 말은 하지만 하루를 열고 닫는 사이 너의 거짓말은 네 양심의 절반을 삼켜 버린다. 그렇게 거짓말이 사실이 되고 사실이 거짓말이 되어 지하철도 타고 달나라에도 가는 것이 우리 삶이란 것을 거울은 이미 알고 있다.

거울, 요것 참 보면 볼수록 거울 안의 나와 거울밖의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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