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늘 추억의 그 맛]

백두산백송 2023. 8. 2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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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늘 추억의 그 맛]

아들, 며느리와 함께 '만선(滿船)'이라 불리는 중화요리 음식점에서 야끼우동, 야끼밥, 자장면을 먹고 왔다. 실내가 아득하고 깨끗한 분위기가 한층 입맛을 당긴다. 좋은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조금씩 나누어 맛을 보는 것도 가족이 아니면 어려운 것. 음식 맛도 맛이지만 가족 간의 마음을 꼭꼭 씹어 먹는 그 맛을 어이 표현해야 하나. 그리고 아들과 둘이서 먹었던 그 옛날의 자장면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지만 자장면 맛은 아무리 고명과 빛깔이 달라도 맛만은 늘 추억의 그 맛이다.

정진권의  <자장면>에는 추억이 있다. 파리가 날리는 허름한 집, 그 쫄깃쫄깃한 면발. 그러나 이제 그런 자장면 집은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는 찾기가 힘들어졌다. 사라져 가는 훈훈한 인정에 대한 아쉬움이 묘사되어 있다.

점점 거대해지는 사회 속에서 음식점 또한 예외가 아니며, 작자는 그 사라져 가는 편안함과 넉넉함이 그리운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현재의 느낌을 군더더기 없이 묘사하고 있는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옛날의 가난했던, 그러나 마음은 넉넉했던 시절들을 떠올려 보게 한다.

♤자장면/정진권

자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방은 퍽 좁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깨끗지 못해야 하고, 허술한 앉은뱅이 식탁은 낡아야 한다. 고춧가루 그릇이나 식초병은 때가 좀 끼고 금이라도 가야 운치가 있다. 방석은 때에 절어 윤이 날 듯하고, 자장면 그릇은 거무스레하고 이가 두어 군데 빠져 있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집 주인은 뚱뚱해야 한다. 머리엔 한 번도 기름을 바른 일이 없고, 인심 좋은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리며, 깨끗지 못한 손은 소두방만하고, 신발은 여름이어도 털신이어야 한다. 나는 그가 검은 색의 중국 옷을 입고, 그 옷은 때에 전 것이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런 옷을 찾기 어려우니 낡은 스웨터로 참아 두자.

하여간 이런 주인에게 돈을 치르고 나오면 언제나 마음이 평안해서 좋다.

스무 살 때던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도 나는 짜장면을 잘 사 먹었는데, 그 그릇이나 맛, 그 방안의 풍경이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주인의 모습까지도 내 고향의 짜장면, 그 중국집, 그 짱궤(장궤의 속음)와 다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해서, 내가 처음으로 으리으리한 중국집을 보았을 때, 그리고 엄청난 중국 요리 앞에 앉았을 때, 나는 그것들이 온통 가짜처럼 보였고, 겁이 났고, 괜히 왔구나 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놓고 갈 수 있는 곳은, 위에 말한 그런 주인의 그런 중국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 친애하는 자장면 장수 여러분들도 자꾸만 집을 수리하고 늘리고 새 시설을 갖추는 모양이어서, 마음 편히 갈 만한 곳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돈을 벌고, 빌딩을 세우고, 나보다 훌륭한 고객을 맞고 싶은 것이야 물론 그 분들의 큰 소원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와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에만은, 좁은데다 깨끗지 못한 중국집과 내 어린 날의 그 짱궤 같은 뚱뚱한 주인이 오래오래 몇만 남아 있어 줬으면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러면 나는 어느 일요일 저녁때, 호기 있게 내 아이들을 인솔하고, 그 동네 중국집으로 갈 것이다. 아이들은 입술에다 볼에다 짜장을 바르고 깔깔대며 맛있게 먹을 것이고, 나는 모처럼 유능한 아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퇴근길에 친구를 만나면, 나는 그의 어깨를 한 팔로 얼싸안고 그 중국집으로 선뜻 들어갈 것이다. 양파 조각에 짜장을 묻혀 들고, "이 사람, 어서 들어." 하며, 고량주 한 병을 맛있게 비운 다음, 좀 굳었지만 함께 자장면을 나눌 것이다. 내 친구도 세상을 좁게 겁많게 사는 사람이니, 나를 보고 인정 있는 친구라고 할 것이 아닌가.(202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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