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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찬원, 절규]
갈까 말까 많이도 망설였다. 한참을 주저앉았다가 캔 맥주 두 통을 넣고 배낭을 들고 나섰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송해 음악회를 보기 위해 세 시에 집을 나선 것은 평소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상의 일탈이다. 이날밤 나는 이찬원이 부른 '진또배기'로 몸부림쳤다.
한낮 더위가 38 도를 오르내린다. 올해 처음으로 대구에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그래도 이찬원을 직접 보고 싶었다. 잘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의 청국장 같은 구수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코로나 시기에 조선티브이의 트롯 열풍에 졸인 마음을 많이도 달랬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지만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한한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 사업인가.
눈대중으로 이만 명은 넘을 것 같은 사람들이 송해공원을 가득 매웠다. 양지은, 유지나, 이석훈, 우연이, 그리고 이찬원...... 디너쇼나 입장권을 사서 음악회에 갈 수 없는 처지이다 보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원 버스를 타고 음악회를 가는 설렘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소박한 소시민의 행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송해공원 축구장에 마련된 무대를 찾아가는 길, 대구지하철 1호선을 타고 화원역에 내려 다시 만원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밌다.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 그리고 손주 녀석의 손을 잡고 줄지어 찬원을 향해 가는 발걸음들이 하나같이 흥에 겨워 있다.
명곡이 따로 있나. 흥겨우면 명곡이지. 송해 선생이 가신지 1주기를 맞이해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예의 가수들이 선생님에게 바치는 헌정음악회라고 해야 하나. 출연진 모두가 한 마음 되어 송해 선생을 떠올리며 정성을 다해 뿜어 올리는 노래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 허야디야 허야디야/어 허야디야 허야디야/허야디야/어촌마을 어귀에 서서/마을에 평안함을 기원하는/진또배기~진또배기~ 진또배기~/"
밤 9시를 훌쩍 넘기며 엔딩곡으로 부르는 찬원의 진또배기가 절정을 지나 조용히 막을 내리고 있다. 진한 흥겨움 뒤에 찾아드는 허탈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전까지 그렇게 흥겹던 진또배기가 마음을 짠하게 들쑤신다.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바다의 심술을 막아주고 말없이 이 마을을 지켜온 진또배기~진또배기~"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는 찬원이가 뭉크의 그림 <절규>(1893) 속 한 젊은이의 외침으로 다가옴은 왜일까. 나는 뭉크도 잘 모르고 절규란 그림도 모르지만 찬원이가 목청껏 질러대는 모습이 그림 속 한 젊은이와 많이도 닮아 보인다고나 할까. 다리 위에서 뭔가를 외치며 입을 벌리다 못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란 고뇌에 찬 이 시대 청년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올 해도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신입 사원을 뽑는 공고는 정말이지 바늘구멍으로 낙타가 들어가야 하는 형국이다. 흔히 말하는 삼포세대를 지나 오포세대로 치닫고 있는 일군의 현실. 연애, 결혼, 출산, 직장, 주택취득을 포기하거나 이들과는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어이해야 하나. 송해 공원 무대 위 난간에서 진또배기를 외치는 노랫말이 뭉크의 다리 위 절규로 다가옴을 어이하리. 마을의 안녕이나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진또배기의 주술적 힘이 오포세대들의 청년을 안녕으로 몰아갈 수는 없을까.
송해공원 축제의 장을 뒤돌아서는 사람들의 길게 늘어선 그림자들 위로 한 마리 새가 힘겹게 날갯짓을 하며 보금자리를 찾아간다. '우러라 새여 우러라 새여 자고 일어나 울어야 새여~'찬원이의 시원한 목소리를 한껏 즐기고 온 날 밤, 나는 이상하리만치 온밤을 뜬눈으로 설치며 청산별곡을 이어가고 있었다. '널라와 시름이 많은 나도 자고 닐어 우니노라'. 갈 길 잃은 청년들이 '이끼 묻은 쟁기라도 들고 믈 아래 가든 새'를 따라가면 좋겠다. "진또배기 진또배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또배기~~", 찬원의 목소리가 뭉크의 절규로 오버랩되며 기어이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202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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