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7화:《일진회 지부》
<제7화>는 1904년 8월 송병준의 주도로 설립된 일진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부조직, 그해 9월 <군산지부 일진회 발단식>의 이야기가 핵이다.
소설 속 인물을 두고 난도질을 할 때는 나름 열락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허구적 인물, 일그러진 인물에 대한 단죄, 실체적 실존이 아니기에 얼마나 통쾌한가. 그러나 허구적 인물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허구가 아닌 것이 역사소설이다. 소설 속 백종두. 나는 그를 마구 씹고 싶지만 마음이 편하질 않다. 그것은 개연성을 지닌 나의 자존심이요, 우리의 일그러진 허상이기 때문이다.
-일진회는 조선 군대를 해산시키고 내각을 교체, 일제의 조선지배권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탄생한 단체.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직전, 1904년 11월 6일 "한국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일진회 선언서를 발표. 이후 을사늑약 체결, 고종의 양위 책동, 의병토벌 등 각종 매국행각에 앞장을 선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집회결사엄금령"에 의해 강제 해산된다.-<인터넷 다음백과 참조>
고문정치의 시작, 세상이 확 뒤집힌 것을 깨달은 <백종두>. <쓰지무라>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1904년 2월 <제1차 한일협정의정서>에 이어 1904년 8월 <일진회 설립>, 1904년 9월 <군산일진회 발단식>, 1905년 <을사늑약>의 전초전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고문정치>라기에 주리를 틀고 형벌을 가하는 일제의 무슨 가혹한 정책인 줄 알았다. 정말이지 스스로 머쓱했다.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나는 책을 놓고 잠시 한숨을 쉬었다. 고문은 고문인데 이것은 협정이란 말속에 배어 있는 의도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말이 고문이지 내정간섭이다. 경무고문, 군부고문, 궁내부고문, 재정고문, 외교고문, 협정서에도 없는 학정참여관을 들이밀어 조선의 모든 힘을 빼앗아 버린 실질적인 <식민지배협정>이다. 조선의 아전이란 것이 고문(顧問)과 자문(諮問)의 등가적(等價的) 의미를 모르는 등신, 백종두와 나는 그들의 식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군산일진회 구성의 주동적 인물 <백종두>와 <쓰지무라>, 조선인 중심의 거국단체인 일진회 구성을 두고 마주한 두 인물. 밀고 당기며 찰싹 붙어 협작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두 마리의 바퀴벌레를 떠올렸다. 바퀴벌레는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힘을 쓴다. 나는 힐끗 거실 구석에 놓여있는 바퀴벌레 퇴치약을 쳐다보았다. 추잡한 놈들, 약삭빠르게 두 마리 바퀴벌레가 촉각을 곤두 세우며 의기투합. 바퀴벌레 한 마리가 끝까지 <백종두>의 머리를 타고 올라간다. <쓰지무라>의 야릇한 미소, 또 한 마리의 바퀴벌레는 그의 가슴을 파고든다.
바퀴벌레는 달콤한 콜라를 좋아한다. 빨자. 하급관리 아전 따위의 자존심은 버리자. 언제나 대세를 따르는 것이 생존의 법칙. <쓰지무라>의 끈질긴 계책에 따라 결국 <군산 일진회 회장직>을 수락한 <백종두>. 두 마리 바퀴벌레는 환희의 기생춤을 춘다. 부어라 마셔라. 빨고 또 빨아라. 조직을 위한 착수금 5만 원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실로 논 1만 마지기가 넘는 엄청난 액수다. 뿐만이 아니다. <쓰지무라>로부터 일급지 땅문서를 받아 챙긴 그는 그날밤 일급 게이샤를 껴안았다. 이제 남은 것은 새끼를 까는 일이다. 바퀴벌레는 새끼를 잘 깐다. 그것도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곳에서.....
지난 <제4화> 거미줄은 그냥 거미줄이 아니다. 두 마리 바퀴벌레가 있고 그 바퀴벌레에 매달린 장덕풍과 아들 장칠문이 있다. 이들은 잡화상으로 보부상을 점조직, 거미줄을 치고 있다. 돈은 엉뚱한 놈이 다 먹었지만 이들은 알을 까도 두 마리 바퀴벌레보다 더 잘 깐다. 이것이 하부조직의 생리다.
1895년 단발령을 내렸지만 민초들의 완강한 거부로 2차 단발령이 1900년 또 내려졌다. 그래 이제는 상투를 잘라라. 단발로 갓을 벗어던지고 줄줄이 거미줄을 쳐라. 착수금 오만 원이 있다. 오만 원이면 논 1만 평이 넘는다. 상투를 잘라 상감께 충성 하라. 최익현의 상소문이 생각난다. "오두가단(吾頭可斷)이나 차발불가단(此髮不可斷)"이라. 상소문은 그저 한갓 떨어진 갓끈이요, 비참한 우국충정(憂國衷情)이다.
바퀴벌레는 쉽게 죽지 않는다. 뒤집힌 몸이라도 발버둥 치며 알을 깐다. 이들은 음습한 곳을 좋아하지만 땡볕도 마다하지 않는다. 머리에 밀짚 모자를 쓰면 된다. 장칠문이 거느린 꼬봉들이 모두 상투를 잘라버린 밀집모자 청년들이다.
두 마리 바퀴벌레, <백종두>와 <쓰지무라>. 정말이지 그들은 알을 까도 멋지게 깠다. <군산지부 일진회> 탄생, 1904년 9월 <백종두>는 회장의 깃발을 들고 연단 위로 올랐다. 상투를 잘라버린 그는 아마도 천황폐하를 꿀꺽 삼켰으리라. "한국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소설 속 <백종두>, 그는 더듬이 못지않게 길게 자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연설을 이어 갔다. 으스름한 거실에 두 마리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이다.
"회장님, 회장님, 군산지부 일진회 회장님!" <을사늑약>이 눈앞에 있소이다. (202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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