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6화:《돈바람, 땅춤》
제목, 《돈바람, 땅춤》을 《돈바람, 춤바람》으로 착각했다. 1894년에 시작하여 1896년까지 개혁의 바람이 분 것을 우리는 갑오개혁이라 한다. 개혁 바람이 분다고 벌써 춤바람까지 간 것은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돈바람, 땅춤>이 아닌가.
역시 개혁 바람에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이 돈이요, 돈 하면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투기가 떠오른다. <제6화>는 현대판 부동산 투기다. 일제의 야욕, 부동산 투기로 시작, 부동산 투기로 끝을 맺는다. 땅을 사라. 그것도 웃돈을 주면 <돈바람이 일렁>이고 < 땅은 춤>을 춘다. 그러면 투기에 휘말린 그들은 쉽게 망한다. <제6화>는 이미 끝났다.
그들의 마수에 걸려든 큰 인물, 현역 학부대신 이완용, 이 사람 이름이 처음 등장하자 야릇한 감정이 머리를 스쳤다. 을미사변, 1895년 을미년 경복궁을 습격, 러시아를 통해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 했던 고종의 가장 큰 조력자인 민비를 살해한 사건. 이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병에 앞장선 민족의 배신자인 그를 두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란 것은 초등학생도 잘 알고 있다.
이완용, 그는 역시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다. 전라북도 관찰사로 전주에 부임. 이범진과 함께 임금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게 한 아관파천을 주도 한 인물. 임금이 다시 궁중으로 돌아오자 새로운 정치상황 속에 변신. 관찰사로 전주에 있을 당시 철저한 친러파로 친일파를 제거했던 사람. 그리고는 러시아가 일본에게 힘을 잃게 되자 친일파로 급변. 결국 을사늑약을 적극 추진한 공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매국 내각의 수반이 된다. 빠르고 화려한 변신. 그는 이렇게 성장해 갔다.
<제6화>의 핵은 이렇듯 이야기의 곁가지를 치고 나면 이완용에게 초점이 갈 수밖에 없다. 일제의 부동산 투기에 걸려든 거물 이완용. 역시 앞장서 땅춤을 췄다. 논 마지기가 3천에서 5천 석이라고 소문난 그의 땅을 몽땅 팔아 돈바람에 편승,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출세 가도를 달린다. 그가 그러니 우매한 농민들이야. 급기야 김제, 만경에서 시작되어 호남평야 전체가 돈바람, 땅춤에 휩싸인다. 땅을 매입하라. 그것도 먹거리의 원천을 사들여라. 갯논은 물론 평답과 상답이 마구 그들의 손아귀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돈바람, 땅춤. 돈바람은 논을 매입하기 위한 일제의 칼바람이요, 땅춤은 국권상실의 전조가 아니고 무엇이랴. 먹고살아야 할 땅을 팔아버리는 것, 이것은 바로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광활한 대지, 비옥하고 푸른 땅, 조선의 토지는 일제의 토지에 비해 헐값. 상답, 평답, 갯논, 가릴 것 없이 매입을 주도하고 있는 두 사람, 요시다와 모리야마. 요시다는 모리야마의 지시를 받는 충복으로서 일만 잘 성사되면 조선 땅에서 농장의 총지배인이 될 인물이다.
"요시다. 내 말 잘 들으시오. 우리는 지금 일생일대 막중한 사업 앞에 서 있소. 저 광활한 들판은 우리의 앞길을 환하게 여는 사업장이면서 우리 일본인들의 쌀창고요. 이 일대를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우리 사업은 승승장구인 동시에 우리 일본의 쌀 부족도 거뜬하게 해결되는 것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손아귀에 넣도록 하시오. 요시다. 그 대가가 뭔지 알겠소? 당신은 바로 농장의 총지배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거요."
그들은 이와 같이 논이란 논은 닥치는 대로 다 사들인다. <제6화> 말미에 등장한 이동만, 그는 양반가 출신으로 요시다 밑에서 땅을 매입하는 협잡꾼이다. 일제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구한말 양반가의 일그러진 모습의 전형이다. 천 마지기 땅을 갖고 있는 조선인 부농의 전답을 매수하기 위해 인력거를 타고 그가 있는 만경으로 가는 그의 모습은 당시 허물어져 내리는 민족의 자존심이요, 그 자화상이다. 미리 읊어 보는 <조지훈의 봉황수>가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국권상실의 슬픈 강물은 말없이 흘러간다. 고문정치의 시작, 제1차 한일협약이 이루어지고 <제7화 일진회 지부>가 탄생한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조지훈의 봉황수를 읊조리며
조선을 먹고자 제국에 충성을 다짐하는 요시다와 모리야마의 대화를 곱씹어본다.
" 보시오 요시다. 이 일대를 우리가 장악해서 일본인들 중에서 최대규모의 농장을 세울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공을 한번 세워 보시오. 그 농장의 총지배인은 바로 당신이오"
기가 막힌다. 춥다. 2023년 11월 말이다. 한 해가 서서히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風磬)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조지훈, 봉화수)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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