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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5화 《이민이냐 노예냐》]

백두산백송 2023. 11.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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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1권 제5화 <이민이냐 노예냐>:줄거리 및 감상

고종은 1902년 11월에 수민원(綏民院)을 설치, 12월 22일 인천항에서 121명 이민자를 하와이로 보낸다. 주한미국공사 알렌을 통한 교섭으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노동력 충당을 위해서다.

하와이로의 이민, 등장인물 방영근과 주만상도 꿈에 부풀어 인천을 지나 고베를 거쳐 하와이행 배를 탔다. 상황에 따른 인물들의 극적 장면은 주로 노동현장에서 대화와 행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인물의 성격제시 방법은 분석적 제시와 간접적 제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등장인물 방영근도 주만상도 노동현장에서 '동료들이 채찍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거나 속수무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방귀를 뀌어도 맞고 트림을 해도 채찍으로 피멍이 든다. 이민자들이 아닌 노예로서 취급당하는 현실.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에 따라 노동인력이 고갈된 상황, 이들은 흑인에 비해 누른 빛깔의 노예가 되어 팔려 왔다.

일본인들의 수작에 의해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지만 방영근도 주만상도 5화 말미를 보면 영동교회 교인들로 추정된다. 살기 좋은 하와이 이민을 선택한 121명 중 반 이상이 미국 선교사 존스의 설교에 의해 회유된 사람들이다. 개화의 물결, 새로운 신지식인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선택한 삶이 노예생활로 이어질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으랴.

1902년 일본인이 앞잡이가 되고 영동교회 미국 선교사 존스 및 여러 선교사들이 각 개항장을 중심으로 노동인력을 이민이란 이름으로 모집하고 다닌 것 같다.

"대한사람이 인간의 천국인 미국에 이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 말은 미국 선교사 존스의 설교였다.

나는 미국 이민사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다. 다만 이를 통해 하와이에 얽힌  이민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갓댐 스팅키 애니멀(냄새나는 어린 짐승)", 이는 최초 하와이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가장 치욕적인 말 중의 하나였으리라.

사실 5화, 화소(話素)의 핵은 '트림'과 '방귀'와 '냄새(김치, 마늘, 된장)'에 있다. 글을 읽는 동안 꾸역꾸역 치미는 감정, 그것은 트림이 아닌 구토와 질식의 전조였다. 도착하자마자 100달러 빛을 지고, 일본인들이 준 20달러에 팔려온 조선의 노동자. 그들은 멀미와 구토로 고생 끝에 하와이에 도착, 미국인이 제시하는 서약서에 날인함과 동시에 100달러의 빚을 안게 된다. 잘은 모르겠지만 미리 제공되는 숙식비의 선결재 방식으로 꼼짝 못 하게 옭아 맨 듯하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역만리 낯선 하와이 땅, 그들은 일본인의 수작과 선교사들의 설교에 홀려 살기 좋다는 하와이로 배를 타고 온 조선의 아들들이다.

파독 광부들의 얼굴이 책갈피에 피었다가 사라진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나라의 백성은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산다. 힘은 결국 돈이다. 기, 승, 전, 결, 돈을 선택한 그들의 노동이  핏빛 하와이 땅을 닮았다. 그들은 말한다. '오고 싶어 온 땅이 아니었고, 싫어서 떠난 땅이 아니었다.'고. 하와이는 풍광은 좋지만 그들이 살 곳은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국강병이다. 돈 없고 집 없고 나라 없으면 끝이다. 오늘날 나라 경제를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나저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되었는지. 요즘 젤렌스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타산지석,  먼 나라, 다른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닌 구한말 대한제국의 슬픈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일이다.

선각자들은 늘 희생을 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각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이면에 사라진 우리들의 선각자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밑판을 눈물과 피로 다진 애국지사들이다.

대한제국, 대원군과 민비 그리고 고종, 그 갈등 속에 삼베적삼 민초들은 머나먼 이역 땅에서 옥수수밭이나 목화밭에서 정지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민이냐 노예냐>,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진실, 그 이면에 숨은 민족사의 수난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도 물은 도도히 흘러 제6화 <돈바람, 땅춤>으로 넘어가고 있다. 꾸역꾸역 신물이 올라온다.
"썬 오브 빗취(개새끼)! "
채찍이 방귀 뀐 남자를 향해 마구 날아갔다.(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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