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1권 제4화 <거미줄>:줄거리 및 감상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이유는 등쳐 먹기 위해서다. 누구의 등이겠는가. 제4화는 거미줄이 드러내는 관습적 상징을 벗어나 문학적 상징으로서의 그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4화의 주동인물은 두 사람, <장덕풍>과 일본인 우체국 소장 <하야가와>다. 둘은 상하관계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4화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단어, 그 <상황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증을 더해가며 폭풍전야와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상황변화>를 위한 보이지 않는 거미줄, 등장인물 모두는 <하야가와>와 연결되어 있다.
<4화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장덕풍. 그는 <장칠문>의 아버지다. 급변하는 군산바닥에 파고들어 <잡화상>을 벌여놓고 봇짐장수들의 등을 쳐 먹고 살아가는 인물. 얽히고 얽힌 거미줄, 봇짐 장사치들은 민초들의 등을 쳐 먹고 비밀리에 움직이는 동학잔당을 밀고하여 한 밑천 잡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보조인물들로서 장덕풍의 하수인이지만 당시 상황을 드러내는데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주재소장>과 일본인 <하야가와>와 거미줄 같이 엮여 있는 장덕풍. 그는 봇짐 장사치들로부터 금붙이를 사들이고 있다. 모종의 <상황변화>에 대한 준비로 보인다.
<4화 후반부>. 새로 등장한 인물 <하야가와>, 목포우체국 군산출장소의 소장인 그는 본국에서 어눌하게나마 조선말을 배워왔다. 노련한 정보통, 우체국 소장은 이런 역할을 하기에 맞춤형 인물임을 자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조선 내 일본영사관과 직통하며 차곡차곡 정보를 수집하여 상황을 보고 한다. 수시로 거미줄을 점검하고 <상황변화>를 실제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 <하야가와>. 판을 뒤집기 위한 병법, 지피지기(知彼知己) 면 백전 백승이라. 어눌한 조선말, 그는 <눈깔사탕>을 미끼로 아이들을 통해 조선말을 익히며 조선의 밑판을 흔들고 있다. 앞으로 그의 조국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할 인물. 그는 영사관의 지령을 받고 장덕풍 등의 하부조직을 발 빠르게 점검하고 있다. 간교하고도 빈틈없는 인물로 추정되는 그는 언젠가는 <하이에나>로 변신할 무서운 놈이다. 이미 조선은 그의 손에 들어와 있다고 그는 착각할지 모른다.
그렇다. 그가 보기에 <조선의 미개한 민중>은 이미 <엿가락>을 거부하고 입안 가득 <눈깔사탕>을 물고 있고, <무명베 > 대신 <광목>을 걸치기 시작했다. <무명베>는 베틀로 짠 조선 전통의 <무명천>이요, <광목>은 개화기 이후 들어온 일본식 기계방직 <무명천>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미래의 하이에나를 키우고 있다. 정말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불쌍하고 영특한 조선의 아들, <양치성>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며 그를 양육하고 있다. 첩자는 상황 판단에 민첩해야 한다. 곧 불어닥칠 모종의 <상황변화>가 궁금증을 더하는 가운데 <하야가와 > 우체국소장은 상관 <쓰지무라>의 전화를 받고 영사관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제4화는 아무리 보아도 묵시적 스토리가 긴장감을 더해 가는 것 같다. 우리네 삶의 이야기도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역시 <작가 조정래 >의 내공이다. 겉으로 보기에 <4화 전반부>의 내용이 잡화상 장덕풍과 봇짐장수들과의 단순한 상거래지만 그 속에 스며있는 <거미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근대의식, 그동안 돈맛을 몰랐던 민중들. <상행위>는 근대의식의 근본이다. 모든 것은 돈과 직결되고 돈은 흥망성쇠의 상징이다. 머슴이 잡화상 주인이 되고, 보부상이 되고, 민중 봉기의 중심에 선다. 봉건적 질서체제의 와해, 그것은 결국 <돈의 힘>이다.
폭넓은 <금강포구>를 안고 있는 <전북 군산>에서 저 멀리 보이는 <충남 장항>을 끄집어내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유유하게 흘러내리는 금강 물줄기. 몇 백 리인지 모르게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금강이 제 몸을 바다에 풀어 맡기는 지점에서 오른쪽 포구에 장항이 자리 집았고 왼쪽 포구로 군산이 앉아 있다.' 곡창 지대 군산을 파고드는 일본인들. 그리고 금강 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을 상대로 장사를 벌이는 <일본인들의 배>가 개항의 물결을 타고 서서히 밀려든다.
앞으로 꿈을 가지고 커 나갈 <양치성>, 비밀리에 조직을 움직이고 있는 주재소 소장, 그리고 동학도들의 뒤를 캐고 있는 봇짐 장사치들을 관리하는 장덕풍, 그들이 곧 불어닥칠 <상황변화>에 어떤 역할을 할지~. 이야기는 벌써 제5화 <이민이냐 노예냐>로 접어들고 있다.
영사관 상사 <쓰지무라> 앞에서 <하야가와>는 머리를 숙였다.
"좋소, <하야가와> 소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책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소. 앞으로도 분투해 주시오. 그러면 천황 폐하의 은혜가 내려질 것이오."
"하이!"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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