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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8화 《차라리 죽자》]

백두산백송 2023. 12. 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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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8화:《차라리 죽자》

《차라리 죽자》, 많이 들어 본 소리다.  한두 번 해 본 소리지만 모두들 끝내 살아 있다. 이 말 뒤에는 "그래도 살자"라는 말이 스며 있는 것 같다. 극과 극이 주는 절묘한 세렌디피티, 그래서 가끔은 나도 죽었다가 살아있다. 운명과 숙명, 그 명확한 차이를 모르겠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에게는 우연이 아닌 운명적 세렌디피티가 있다.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 그것은 절박 속에서 솟구치는 강인한 생명력 인지도 모르겠다. 감골댁도 그렇게 또 살아갈 것이다.

<제8화>의 중심인물, 감골댁. 다섯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았다. 큰딸이 보름이고 보름이의 동생이 정분, 셋째 딸은 수국이다. 막대 아들이 대근이다.  큰아들 영근이는 돈을 벌기 위해 부역을 가고 없다. 회사에 취직한 것은 분명 하나 생사를 알 수 없다. 영근이 생각에 불길한 꿈을 자주 꾸는 감골댁. 며칠이 멀다 하고 영근이와 함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꾼다. 영근아~~.

《차라리 죽자》, 하나하나 불러보니 일곱 식구가 적은 식구는 아니다. 영근, 보름, 정분, 수국, 대근 그리고 감골댁과 남편. 독자는 남편 이름도 모른다. 문제의 시발은 이름도 모르는 남편 때문이다. 그는 동학반란군이 되어 두 달 만에 병을 얻었다. 그 병치레로 가산을 탕진하다 죽었고, 지금 남은 식솔은 빚더미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결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감골댁의 자존심, 그것은 그녀를 그녀답게 지탱하고 있는 운명적 세렌디피티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녀는 결코 죽지 않는다. 남편으로 인해 집 나간 맏아들 영근이가 없는 다섯 식구의 밥상이 보리밥에 풋김치와 간장 한 종지가 전부지만 그녀의 자존심은 전편을 관통하며 비장미를 너머 우아미로 치닫고 있다.

문학감상의 네 가지 미의식에는 우아미와 비장미, 숭고미와, 골계미가 있다. 나는 깊이를 잘 모르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감동이라 말할 때 그것이 우아미요, 눈물을 흘린다면 비장미다. 그리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현실을 벗어난 극찬이 주어질  때 숭고미가 깃들고, 골계미는 그야말로 박장대소에서 주어지는 맛이다. 잠시 빗나간 이야기지만 감골댁의 절치부심, 끝내 큰딸 보름이를 첩으로 보낼 수 없는 모성애, 그것은 비장미를 너머 숭고한 자존심이다.

감골댁을 농락하는 봉산댁. 매파인 봉산댁은 동네 영감 김 참봉에게 큰딸 보름이를 첩으로 보낼 궁리를 한다. 논 다섯 마지기를 미끼 삼아 감골댁을 회유하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는 감골댁. 김참봉은 남편과는 원수지간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 미워 동학군으로 간 것이었다.

긴 겨울, 감골댁은 큰아들 영근이가 간절하다. 제1화 《역부의 길》에서 밝혔듯 , 남편이 죽자 20원의 빚을 지게 된 감골댁, 이 빚을 갚기 위해 부역길로 나간 방영근. 인천 지나 고오베를 거쳐 하와이 농장에 팔려간 큰아들. 영근아~~. 이 일을 어찌할꼬. 보름이를 김 참봉에게 첩으로 줄 수는 없다.

"보름이가 어머니의 폼에 얼굴을 묻었다. 감골댁도 울었다. 정분이가 어머니의 팔을 붙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수국이도 대국이도 어머니를 붙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감골댁은 두 팔을 있는 대로 다 벌려 아이들을 싸안았다." <제8화>는 이렇게 끝난다.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비장미가 가슴을 울리지만 감골댁의 운명적 세렌디피티, 그것은 민중의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이 아니고 무엇이랴. 감골댁은 강하다. 민초의 대유, 죽었다 다시 일어난다.  <제9화> 《어떤 양반》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잔뜩 호기심이 간다. (202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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