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감상: 장 그리니에의 섬 리뷰, 고양이 물루 <제1화 >]

백두산백송 2023. 12.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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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섬

내가 장 그르니에의 "섬"이란 책에 대해서 뭔가를 이야기하기는 벅차다. 행간의 의미를 이해할 듯하다가도 벽에 부딪히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저 "아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아니 우리 인간은"이라는 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얻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철학책이 주는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몸에 좋다는 약을  먹을 때 경험하는 일이지만  이 약을 왜 먹지라는 생각이 들 때부터 약효가 나타나듯 이 책도 그런 효과를 기대하며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섬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 섬에는 알지 못할 신비가 자리 잡고 있다. 고독과 연민, 사랑과 미움, 자연과 일상, 하여 섬은 대자연의 축소판이요, 형이상학의 관념적 세계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나름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알베르 카뮈는 "<섬에 부쳐>"란 책머리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게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게시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창한  이 말의 의미를 이 책 어느 구석에서도 명쾌하게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여 이 책을 과연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는 1)<공(空)의 매혹> 2)<고양이 물루> 3) <케르켈렌 군도> 4)<행운의 섬들> 5)<부활의 섬> 6)<상상의 인도> 7)<사라져 버린 날들> 8)<보로매의 섬들> 이 실려 있다.

나는 순차적으로 읽기를 거부하고 2)<고양이 물루> 편을 먼저 보기로 했다.

장 그르니에의 《섬》 , 제2화 <고양이 물루>란 것이, 수필인지 소설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글의 양식이 내 머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고양이 물루>는 한 마리 고양이인 "물루"의 죽음에 관한 서사다. 서사는 줄거리를 가진 글의 양식이다. "시간과 행동과 의미의 기조"를 갖춘 양식이라면 이 글을 <관념적 서사>라 명명해도 좋을 듯하다.

<고양이 물루>에 관한 이야기는 전 <1,2,3, 4화>로 되어 있다.

왜 장 그르니에는 <제1화> 말미에서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不在)"를 들고 마무리를 했을까.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절대적 사랑"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물루란 고양이를 "사랑하는 그녀"로 환치해 보면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不在)의 실체가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물루는 엎드려 있기를 좋아한다. 아니 세상의 뭇 짐승들은 다 그렇다. 물루는 엎드려 대자연과 접촉하면서 자신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다.
뭇 짐승도 우리 인간도 아니 그녀도.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라고 말한다.

"물루는 새를 좋아한다. 그러나 물루가 가까이 갈수록 뒷걸음치고는 끝내 훌쩍 날아가 버린다." 사랑하는 그녀를 품에 품고 싶지만 그녀도 이내 날아가 버린다.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하고픈 심정은 물루나 사람이나 똑같다.

"물루도 고양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자격을 갖추려면 목걸이를 차야 한다."  여기서 목걸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물루는 목걸이를 찬 고양이이다.  행간의 의미로 보아 목걸이는 하찮은 여느 고양이가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멋진 꿈을 꾸며 일상을 즐긴다. 아마도 귀족출신의 물루란 화자의 의식 속에 내재된 격 높은 사랑으로 보인다. 이렇고 보면 고귀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고양이 물루라 여겨진다.

"나는 밤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물루를 늘 가까이 둔다. 절대적 사랑의 실체와 밤을 같이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로요 사랑이다." 나도 아니 우리도 밤이 무서울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소망한다. 이렇듯  물루의 행위는 늘 우리 인간들의 행위와 사고를 동시에 소환하고 있다. "무서운 밤 나는 물루를 곁에 두고 있다. 말이 없지만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음직스럽다.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그의 현전(現前)", 그는 언제나 나를 지키는 '절대적 사랑'이다.

절대적 사랑, "언제나 그를 바라보면 황홀해진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물루는 가득 찬 욕망을 채울 줄도 알고 즐길 줄도 안다." 그러나 "물루와 달리 나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물루의 행복한 일상은 나를 슬프게 한다. " 나는 온전치 못한 존재. 연극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틀거릴 것이고 내 상대역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잊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不在)."  곧 관념적인 절대적 사랑의 결정체요, 이는 바로 고양이 물루라 생각된다. 참 어렵다. 하지만 내 깜냥으로는 고양이 물루를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절대적 사랑"에서 오는 허탈, 아니 "실존적 존재치"에 대한 "허무적 자각", 이것이 바로 "절대적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마침내 나 스스로 사랑한다고 자처했던 이 존재들, 그리고 나 자신과 따로 떼어놓을 길 없었던 나를 보고 넋을 잃고 있다. 당혹스러운 어떤 필연성이 나의 조건으로부터 멀리멀리 나를 데려간다. "

장 그르니에의 이 말을 끝으로 묵상에 잠겨 본다. 장 그르니에의 《섬》, <고양이 물루>, 이것은 아마도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不在)", 즉 '절대적 사랑'  이후에  내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섬》'이라 생각하고 싶다.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이를 두고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완벽한 소화만이 쾌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알 수 없는 인간의 삶, 목걸이를 차고 신나게 춤을 추는, 그러면서도 나와 아니 우리들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 그것은 우리들이 추구하는 《섬》 너머 《섬 》, 절대적 사랑으로 끝내 죽어버리는 <고양이 물루>가 아니고 무엇이랴. 생각을 키우는 힘, 이것이 철학서가 주는 매력이다. 스스로 한계를 느끼며 그냥 읽고 즐기고 싶다. 다음에 또 <고양이 물루>를 잡으로 가야지. 천지사방 기웃거리다가 한 모금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아마도 그때 <고양이 물루>는 내 곁에 와서 앙탈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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