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감상: 장 그리니에의 섬 리뷰, 고양이 물루 <제2화>]

백두산백송 2023. 12. 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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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의 《섬》에는 1)<공(空)의 매혹> 2)<고양이 물루> 3) <케르켈렌 군도> 4)<행운의 섬들> 5)<부활의 섬> 6)<상상의 인도> 7)<사라져 버린 날들> 8)<보로매의 섬들> 이 실려 있다. 나는 순차적으로 읽기를 거부하고 2)<고양이 물루>편을 먼저 맛보기로 했다. <고양이 물루에 관한 이야기>는 <전 4화>로 되어 있다.  오늘은 <제2화>를 두고 고민해 보고 싶다.

♤고양이 물루:제2화

이야기 속 화자는  무덤을 파는 날품팔이 일꾼이다. 언젠가부터 고양이 "하나"를 갖고 싶어 했다. 굳이 내가 "한 마리"가 아니라 "하나"라고 말하는 이유는 "고양이 물루"와 "화자"의 애정 행각을 보건대  물루를 온전하고도 오롯이 소유하고픈 화자의 속내에 어울릴 것 같아서다.  

회자와 물루는 껌딱지다. 말 많은 사람보다  말없는 물루가 그렇게 좋은가 보다. 화자는 아침에 외출을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특이하게도 아침에 밖에 나간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대체로 오전 11시까지는 물루와 함께 독서를 하며 지낸다.  내가 보기에 그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분명 아니지만 살짝 밀폐형 인간으로 어두운 면이 있다. 오전의 행각을 보면 나와 좀 닮은 것 같다. 화자와 달리 밀폐형 인간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묘지를 파는 날품팔이로서 묘지를 좋아한다. 그것도 하얀 조개껍질로 십자가 하나를 단정하게 만들어 놓은 가장 단순한 묘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묘지를 둘러싼 꽃들의 향기를 좋아한다. 밝음보다는 어둠을 좋아하는 인간형, 그 묘지 주위를 오가는 산보객들에게서 묻어나는 성숙과 침묵, 혹은 충만감에서 우러나오는 평화를 즐기는 인간이다.

직업은 사람을 이렇게 숙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묘지와의 친밀감은 물론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인간. AI를 통해  그의 DNA를 캐묻고 싶다. 살짝 책장을 넘기는 내 머리가 어지럽다.

물루와의 필연적 만남. 물루는 화자가 파는 묘지 안에서 태어난 아직은 어린 고양이다. 어미 고양이는 묘지를 파는 사람네 것이다. 겨우 생후 1개월 된 고양이와 인연을 맺은 그의 일상. 물루도 화자도 묘지 같은 그의 침실을 지상 최대의 낙원으로 즐긴다. 비비고 돌아눕고 심지어 화자가 읽고 있는 책갈피를 묘지의 흙냄새 마냥 즐기듯 코를 문지른다. 물루가 화자요, 화자가 물루로서 둘은 하나 된 한 몸이다.

고독한 《섬》, 장 그르니에가 말하는 《섬》의 실체, 그것은 물루와 화자가 뒹구는 묘지 같은 아늑한 침실이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무인도로 느끼면서 이 밀폐된  침실에서 열 번이 넘는 여름을 보낸다. 푹 익은 물루와의 교감, 서서히 사람의 영혼이란 이렇게 길들여지는 것 같다. 침실의 유일한 동반자 물루, 물루는 화자의 일상이요, 영혼 유희의 "절대적 사랑"이다.

물루와의 영원한 일상을 꿈꾸는 화자는 불안하다. 그 옛날  정원에서 키웠던 고양이들은 예외 없이 좋지 않게 끝난 것을 회상하는 화자는 벌써 물루의 일탈을 걱정하고 있다. 회색빛 바탕에 호랑이처럼 얼룩무늬가 찍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미 암고양이를 닮은 물루. "절대적 사랑"에 대한 불안감. 그것은 앞으로 물루가 묘지 같은 내 침실을 뛰쳐나가 연거푸 외박을 하거나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앓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이런 속에 생후 1개월의 굵은 쥐 같았던 물루는 재롱을 부리며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어렸을 때는 묘지가 무서워했던 화자. 묘지는 어둡고 시커멓게만 보였고 무엇인가 끈적 끈적한 것이 묻어 있는 곳으로 생각했던 화자. 사자(死者)의 연도(煉禱)를 외치는 사자들의 날, 그런 그날들에는 화자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화자는 말했다. 희망이라고는 비문(碑文) 속에 새겨진 단어일 뿐, 절망이란 말조차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화자. 그런 섬뜩한 무서운 묘지였지만 화자는 '사랑하던 어떤 사람'을 잃게 되면서 그런 기억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도시의 모든 공원들 중에서 꽃이 가장 많이 핀 곳이 공동묘지다. 그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축복의 연도를 꽃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묘지를 둘러싼 꽃의 향기는 사랑하는 이의 체취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그리고는 그 '묘지 속에서 탄생한 물루', 이렇고 보면 물루는 화자가 묘지 속까지 따라 간 사랑의 화신이다. 미친다.  물루는 고양이이지만 그냥 고양이가 아니다. 그의 침실 속 이불을 함께 뒤집어쓰는 화자의 절대적, 실존적 사랑이요 그 형상이다.

잃어버린 사랑, 장 그리니에가 그리고 있는 <또 하나의 섬>, 화자와 물루가 그려내는 이 《섬》에서 '나는, 아니 우리 인간'이 느끼는 절대적 사랑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어둡고 칙칙한 침실에서 피어나는 절대적 사랑, 그것은 비장미가 아니라 우리들 보편적 인간이 지녀할 절대가치, 절대적 사랑으로 장 그리니에는 끝내 독자로 하여금 숭고미에 빠져들게 한다. 화자의 물루에 대한 집착, 그것은 묘지 저 편에서 반짝이는 사랑의 숭고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래서 장 그리니에의 《섬》이 던지는 매력을 나는 놓칠 수 없다.

묘지같이 반짝이는 아침 햇살이 한 움큼 사랑을 몰고 온다. 물루와 화자가 같이 뒹구는 부활의 공간, 묘지 같은 그의 침실을 두고 나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를 기어이 꺼내 들고 말았다.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으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짇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고독한 섬, 이 밀폐된 침실 속 우주, 하지만 물루도 화자도 혼돈의 카오스를 지나 영원한 '부활의 섬'을 꿈꾼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영원한 것은 없다. 더구나 절대적이고 유일한 사랑이란 적어도 '인간의 섬'에는 없다. 오로지 그것은 신들의 영역에 속하는 어휘요 사랑이다. 신은 영원토록 물루와 화자를 보듬을 수 있지만 화자란 아니 우리 인간이란 물루를 영원히 안고 갈 수는 없다. 물루는 어느 날 신기루처럼 왔다가 사라질 것이다. 아파하지 마라.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은 없다. <제3화> 고양이 물루는 어떻게 될까.~~(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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