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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리뷰, 시는 슬플 때 쓰는 것]

백두산백송 2023. 12. 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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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리뷰, 시는 슬플 때 쓰는 것]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을 읽었다. '시 하나에 별 하나, 별 하나에 시'가 있다. 각자의 삶이 시고, 별이 각자의 인생이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그에게는 별이 있고 시가 있어 외로울 수가 없다. 그의 호는 첨성(瞻星)이다.

아버지의 남성성을 가리고서 벌거벗은 몸으로 아버지와 밀담을 하고 있는 화자의 전신이 사랑이요, 눈물이요, 가슴인데 어디 외로울 틈새가 있으리오. 뿐만이 아니라 아동문학가 정채봉을 형이라 부르며 형의 인생을 함께 한 시인 정호승. 그는 정채봉을 너무 좋아했다. 끝까지 임종을 보지 못했기에 입관실 문을 열고 들어가 수의를 입고 누워 있는 형을 바라본 시인. 정이 많아 가끔씩 눈물도 삼키는 시인이다.

범어천 붉은 연탄을 들고 새벽 기도를 가시는 어머니는 "시는 슬플 때 쓰는 것"이라며 그의 '시인 인생'을 태생적으로 인도하신 분, 그 어머니의 거룩한 시정신이 오늘날 가슴 따뜻한 그리고 꾸밈이 없는 순수의 시인 정호승을 낳게 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가 어렸던 시절, 아버지가 은행원이었던  직장을 스스로 접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해 버려 쪽방생활을 해야만했다. 그래도 범어천(신천)을 일상으로 오고 가며 시심(詩心)을 갈았고, 수성천변에서 이상화를 쫓아가며 시를 쓴 시인. 신천, 범어천, 수성천은 같은 물줄기의 도심 속 천변(川邊)이다. 여기에 시인 정호승이 있고 노래하는 시인 김광석과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가  있었다.

오늘날 그의 시가 있기까지 모든 삶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 놓은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을 보며 나는 혼자 울고 웃는다. '백두산 천지를 걸어서 내려오다 안갯속에 묻혀 있을 때도, 한 마리 개에게 물려 죽을 뻔한 순간에도', 그는 그저 평범하고도 소박한 겁쟁이 시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윤동의 무덤을 쉽게 떠나지 못하여 "죽는 그날까지" 동주를 잊지 못할 시인. 섬세한 서정(抒情)은 동주를 닮았도 많이 닮았다. 동주의  '서시'에는 '정호승의 별'이 이미 녹아 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시인으로서의 출발은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첨성대'였다.  별이 깃드는 첨성대는 '자신의 문학의 출발지요, 귀결지라고 말하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쩌면 첨성대'를 가장 좋아하는 시인 정호승. 그의 호(號), 첨성(瞻星)이 여기서 나왔다. 정호승을 알고 싶고, 한 줄 시를 쓰고 싶고, 또 한 줄 시를 읽고 싶으면 반드시 그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읽어라. 그러면 당신의 눈에도 눈물이 나고, 타인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의 시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란 시로 시인의 마음을 다시금 읽어 본다. 이 시는 이른 아침에 영안실에서 그의 아버지 발인 예배를 볼 때 그가 낭송한 시다.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정호승

오늘도 면도를 더 정성껏 해드려야지
손톱도 으깨어진 발톱도 깎아드리고
내가 누구냐고 자꾸 물어보아야지
TV 도 켜드리고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시라고
창밖에 잠깐 봄눈이 내린다고
새들이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귀에 대고 더 큰 소리로 자꾸 말해야지


울지는 말아야지
아버지가 시눈을 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시면
활짝 웃어야지
어릴 때 아버지가 내 볼을 꼬집고 웃으셨듯이
아버지의 야윈 볼을
살짝 꼬집고 웃어야지

가시다가 뒤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굳이 손을 흔들지 않으셔도 된다고
가시다가 중국음식점 앞을 지나가시더라도
짜장면을 너무 드시고 싶어 하지 마시라고
아니, 짜장면 한 그릇 집수시고 가시라고
말해야지

텅 빈 아버지의 입속에 마지막으로
귤 향기가 가득 아버지의 일생을 채우도록
귤 한 조각도 넣어드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 때문에 죽음이 아픈 것이라고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그는 아버지의 임종도 어머니의 임종도 끝내 보지 못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시가 실패와 상처와 결핍과 침묵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아버지처럼 말이 없는 데서 말이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 데서 보이는 그 무엇이 시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라고......(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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