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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수필산책: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수필가가 되어> 소개 및 리뷰]

백두산백송 2024. 7. 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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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수필가가 되어

[수필산책: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수필가가 되어> 소개 및 리뷰]

오늘은 김형석 교수의 '수필가가 되어'라는 글을 1일 1 수필 산책으로 잡았다. 수필창작 동기 및 첫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의 탄생 배경과 작가의 수필관이 또렷이 드러나 있다.

김형석 철학자,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 예과와 철학과에서 공부.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54년 연세대학교 교수로 부임, 31년간 재직했다. 김태길·안병욱과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짐. 주요 저서로는 <고독이라는 병>·<영원과 사랑의 대화>가 있으며, 2016년에는 <백 년을 살아보니>를 썼다.(다음 백과 참조)

*수필가가 되어/김형석

나의 에세이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계기로 내 생활에는 또 하나의 영역이 열렸다. 나는 나 자신이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든가 수필가라는 지칭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또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대학에 있는 친구들이 연구 분야 이외에 취미 활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학문과 연결되는 분야에서 소양을 높이는 일들을 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었다.

나는 항상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사실 취미 활동이나 오락 생활을 모르고 지냈다.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장기나 바둑, 등산, 낚시, 골프 등 여가를 즐기는 일들은 생각조차 못하고 지냈다. 음악은 본래부터 음치에 가까웠고, 붓글씨나 그림은 아예 날 때부터 소질이 없었다. 내 부친이 그런 분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러 가거나 서예 공부로 여가를 보내는 것을 보면, 정서적으로 메말라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허전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말하자면 예술적인 정서 생활의 빈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착상 한 것이 수필 같은 것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철학적 내용이 담긴 수필집들을 읽으면서 받은 영양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어린 시절과 젊었을 때 문학 분야의 독서를 많이 했던 것이 잠재적 충동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연세대학교로 온 해 여름부터 주제가 떠오르면 그것들을 수필로 쓰는 작업을 시작했다. 한 달에 두세 편씩은 써 보았다.

그렇게 쓰인 것들이 대학 신문에 발표되고, 그 수필을 읽은 사람들의 청을 받아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기회가 생겼다. 그중 20편 정도를 모아 처음 발표한 것이 《고독이라는 병》으로 나의 첫 수필집이었다.

그 책에 관한 평가 호응도는 높은 편이었다. 하버드대학교에 머물고 있을 때, 그 책을 한우근 교수에게 증정한 일이 있었다. 한 교수는 하룻밤에 그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격려와 부러움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내 철학적 수상을 접했기 때문에 자기는 역사적 수상을 쓸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영원과 사랑의 대화》가 나왔다. 내 학문이나 철학 내용과는 먼 거리에 있던 독자들이 나를 수필 쓰는 사람, 때로는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지금도 지방에 가면 강연 강사로 초청받은 나를 "김 선생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이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수필가로서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 수필 수상들은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하나는 철학적 문제를 수필수상 형식으로 풀이한 것들이며, 다른 하나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들이다. 언제나 내용의 방향이 되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예술은 아름다움과 조화에 뜻을 모으는 법이다. 그 뜻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수필이었던 것이다.

물론, 수필의 전통적인 흐름이 있다. 수필을 위한 수필의 길이다. 시에는 시의 흐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그런 문학적인 수련을 쌓아 보지 못했다. 그저 인생을 좀 더 착하고 아름답게 보고 살아가는 움직이는 작은 그림과 같은 글을 써 보고 싶었을 뿐이다.

종교 문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교훈의 핵심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석가의 생애도 예술과 통하는 것으로 볼 때, 접근하기 쉬워지며 생활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편할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도 그렇다. 누가복음에는 많은 여성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인다. 요한복음에도 그런 직관적인 신앙의 깨달음이 어디에나 나타난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철학자보다는 시인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필요 없는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느낌과 삶의 요청이 있어 수필을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쓰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두 가지 변화와 결과가 나타났다. 그 하나는 내 글들, 어떤 때는 논술적인 내용들도 퍽 부드럽게 피와 살이 섞인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인 책은 내 철학적인 책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독자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철학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사상을 말과 글로 표현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 수필을 쓰게 된 것이 이런 일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자랑할 바는 못 되지만 고마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수필과 시가 합쳐진 새로운 모습의 글들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사람이 어떤 형태이든지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자동차의 엔진 오일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휘발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에 비타민이 요청되는 것같이 예술은 우리를 젊고 윤택하게, 말하자면 인간미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삶과 신앙을 좀 더 풍요롭게 해 준다. 신앙은 논리보다는 느낌에서 오는 깨달음인 것이 사실이다.


*60년대부터 김형석, 안병욱, 김태길, 이 세 사람을 우리는 한국철학의 3 총사로 불렀다. 이 세 사람은 철학의 좁은 영역을 인문학의 열린 광장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같은 해에 태어났고, 동일한 분야에서 비슷한 과제와 방향을 다루었다. 다른 철학 교수들이 학문의 울타리 안에 책임을 맡아 주었다면, 그들은 그 경계선을 넘어 철학의 영향을 사회적으로 넓혀 주는 과업을 성취한 성과를 남겼다. 세 사람의 저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세 사람 다 남에게 뒤지지 않는 문장력을 갖고 있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김형석은 말한다. "안 선생과 나는 어느 정도 타고난 언변도 지니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만큼 많은 강연을 한 사람도 적을 것 같다. 학문적으로는 김태길 선생이 높은 위치를 차지했으나 사회적 봉사에서 안 선생을 앞지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30여 년을 대학에서 보냈고 정년 후에도 우리의 노력은 계속된 셈이다. 반세기 동안 우정을 지키며 함께 일할 수 있었던 행운은 어떤 섭리에 따른 결과라고 여기며 나는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왔다. 세상과 인간이 하는 일에 영원한 것은 없다. 안병욱, 김태길은 이제 갔다. 아내도 모친도 다 갔다. 혼자 남았다."《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김형석 지음/두란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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