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시&감상: 시에도 비타민이 있다]

백두산백송 2024. 8. 30. 07:42
728x90
320x100

 

[시&감상: 시에도 비타민이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영적 발상이나 묘한 글힘을 얻게 된다. 류시화의 《시로 납치하다》란 책을 몇 번째 읽는지 모른다. 이 책이 마냥 좋다. 글이 아파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빙빙 돌 때 류시화와의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시로 납치하다》는 책을 보기만 해도 글이 되고 말이 되어 나도 시인이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시에도 비타민이 있다면 이 책은 나의 글을 글답게 만들어 주는 '비타민 시'다. 글이 아프고 지칠 때 먹는 영양제가 나에게는 '비타민 C'가 아니라 《시로 납치하다》란 책과 같은 '비타민 시'다.

나는 아직도 고독, 고통, 불안, 좌절이라는 단어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인생의 절반은 아마도 이런 단어들을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은 짧았고 고독과 고통과 불안과 좌절은 언제나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오히려 즐거울 때 슬그머니 이들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시나브로 이들은 내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지렛대가 되어 버린지도 모른다. 고독과 불안, 그리고 고통과 좌절을 사랑하라는 말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엘라 휠러 윌콕스(1850~1919)란 시인이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의 여류 시인이다. 류시화 시인은 어디서 이런 시인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류시화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가 주지사의 취임식에 초대되어 가던 도중 기차 안에서 검은 옷을 입고 흐느끼는 과부와 동석을 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아내, 그 여인을 위로하며 순간 떠오른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라는 시구가 떠올라 이틀 뒤 《고독》이란 시를 완성했다고 한다.

《고독》/엘라 휠러 윌콕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슬프고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
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래하라, 그러면 산들이 화답하리라.
한숨지으라, 그러면 허공에 사라지리라.
메아리는 즐거운 소리는 되울리지만
근심의 목소리에는 움츠러든다.

환희에 넘쳐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비통해하라, 그들이 너를 떠나리라.
사람들은 너의 기쁨은 남김없이 원하지만
너의 비애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뻐하라, 그러면 친구들로 넘쳐 나리라.
슬퍼하라, 그러면 친구들을 모두 잃으리라.

너의 달콤한 포도주는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의 쓰디쓴 잔은 너 혼자 마셔야 한다.

잔치를 열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 나리라.
굶으라, 그러면 세상은 너를 지나치리라.
성공하고 베풀면 너의 삶에 도움이 되지만
너의 죽음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환희의 전당은 넓어서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줄 서서 지나가야 한다.

류시화는 말한다.

고통과 슬픔은 혼자 지고 가야 한다. 타인의 위로가 힘을 줄 순 있어도 대신 지고 갈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다정한 말은 기만일 수가 있다. 함께라는 말도 거짓일 수가 있다. 사람들은 기쁨의 파티에는 모여들지만, 눈물의 장소에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프고 슬플 때 홀로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나무는 밖으로 잎을 내고 꽃을 피워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지지만 비바람으로 인한 나이테는 안으로 새긴다.

엘라 휠러 윌콕스의 《고독》이란 시도 시지만 이 시를 풀어가는 류시화 시인의 리뷰가 일품이다.

글이 고프다. 갈치탕이 먹고 싶어 갈칫국을 잘 끓이는 갈치요릿집을 찾았다. 허옇게 뱃살을 드러낸 갈치가 매운 고추 아래 누워있다. 글이 고픈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주눅이 들어 푹 익어 버린 맛이 갈치맛이다. 고독과 불안, 혼자만의 축제가 또 주저앉고 있다. 서둘러 갈칫국에 이들을 말아 버려야겠다. 불안과 고독, 고통과 좌절이 함께 노를 젓고 있다. 이들의 축제가 나를 또 멍들게 할 것이다. 비타민을 먹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비타민이 따로 없다. 시에도 비타민이 있다. 이름하여 '비타민 시'다.(2024.8.30.)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