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수필산책: '실수'를 생각하다]
"결국 실수는 삶과 정신의 여백에 해당한다."
나희덕의 수필 <실수>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실수들을 많이 한다. 심각하다. KTX 좌석 번호를 잘못 알고 우기다가 앳된 아가씨로부터 멸시를 당하는가 하면, 남녀 화장실도 구분 못해 변기통에 앉아 좌불안석, 기도를 했던 자신을 생각하면 그저 웃플 뿐이다. 뿐만이 아니다. 무인카페 커피머신을 잘못 눌러 돈만 날렸는가 하면, '빨간 우체통 분식점'을 '간이 우체국'으로 착각, 허겁지겁 칼국수를 삼킨 것을 생각하면 그저 "아이~ 고~, I~go~",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실수가 때로는 아름답고 여유롭게 다가올 때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본인의 삶은 물론 타인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경우도 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 '사소한 실수'도 경우에 따라 '아름다운 실수'라 여기며 용납될 수도 있겠지만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교통사고를 보면 실수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트라우마가 자리를 잡는다.
이런저런 실수를 생각하다 나희덕의 <실수>란 수필을 떠올려 보았다. 젊은 시절, 낭만으로 여겼던 실수들이 이제는 일상적 트라우마가 되었음을 어이하랴.
나희덕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시인이다.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그녀의 첫 시집의 제목이 《뿌리에게》며, 그녀의 대표적인 시가 바로 이 시다. 수필보다는 시인으로 각인된 그녀지만 나는 시보다 그녀의 수필을 더 좋아한다. 수필집: 《반 통의 물》, 《상상은 겸손한 발걸음이다》등에 수록된 수필들은 그냥 그대로 '수필 교과서'다. 수필집 《반 통의 물》에 실린 수필 <실수>의 일부를 옮겨 풀어 본다.
-옛날 중국의 곽휘원(廓暉遠)이란 사람이 떨어져 살고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를 받은 아내의 답시는 이러했다.
벽사창에 기대어 당신의 글월을 받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흰 종이뿐이옵니다.
아마도 당신께서 이 몸을 그리워하심이
차라리 말 아니하려는 뜻임을 전하고자 하신 듯하여이다.
그 답시를 받고 어리둥절해진 곽휘원이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에게 쓴 의례적인 문안 편지는 책상 위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 옆에 있던 흰 종이를 편지인 줄 알고 잘못 넣어 보낸 것인 듯했다. 백지로 된 편지를 전해 받은 아내는 처음엔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말로 다할 수 없음에 대한 고백으로 그 여백을 읽어내었다. 남편의 실수가 오히려 아내에게 깊고 그윽한 기쁨을 안겨준 것이다. 이렇게 실수는 때로 삶을 신선한 충격과 행복한 오해로 이끌곤 한다.
실수라면 나 역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중략) "스님, 빗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스님은 갑자기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제서야 파르라니 깎은 스님의 머리가 유난히 빛을 내며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기가 비구니들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고 엉뚱한 주문을 한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노스님을 놀린 것처럼 되어버려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나에게, 스님은 웃으시면서 저쪽 구석에 가방이 하나 있을 텐데 그 속에 빗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셨다. (중략)
나는 그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서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절에서 빗을 찾은 나의 엉뚱함도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려니와, 빗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토록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하던 노스님의 표정이 자꾸 생각나서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시간을 거슬러올라 검은 머리칼이 있던, 빗을 썼던 그 까마득한 시절을 더듬고 있는 그분의 눈빛을. 이십 년 또는 삼십 년, 마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처럼 참으로 오랜 시간이 그 눈빛 위로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 순식간에 이루어진 회상의 끄트머리에는 그리움인지 무상함인지 모를 묘한 미소가 반짝하고 빛났다. 나의 실수 한마디가 산사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그분의 잠든 시간을 흔들어 깨운 셈이다. 그걸로 작은 보시는 한 셈이라고 오히려 스스로를 위로해보기까지 했다.
이처럼 악의가 섞이지 않은 실수는 봐줄 만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번번이 저지르는 실수는 나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어떤 관계를 불화로 이끌기보다는 의외의 수확이나 즐거움을 가져다줄 때가 많았다. (중략) 특히 풀리지 않는 글을 붙잡고 있거나 어떤 생각거리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내가 생활에서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들은 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면 실수의 '어처구니 없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원래 어처구니란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큰 물건을 가리키는 뜻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것이 부정어와 함께 굳어지면서 어이없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크다는 뜻 자체는 약화되고 그것이 크든 작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상이나 상식을 벗어난 경우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상상에 빠지기 좋아하고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사람에게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실수는 삶과 정신의 여백에 해당한다. 그 여백마저 없다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숨을 돌리며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어떻게 휩쓸려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사람을 키우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실수의 힘일지도 모른다.(이하 생략)-나희덕의 수필, <실수>
이런 의미에서 나희덕의 <실수>란 수필은 실수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이끌어내며 우리네 삶을 더욱 여유롭게 한다. 실수가 오히려 삶에 신선한 충격과 여유를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읽을 수 있다. 좋은 수필은 이처럼 '실수'란 단어 하나에도 긍정의 에너지가 있음을 보여 준다.
'실수', '조심스러운 경계'를 지닌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일상적으로 빈번히 반복되는 '사소한 실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름다운 실수'가 되어 내 삶을 더욱 여유롭고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실수는 삶과 정신의 여백에 해당한다."는 이 말 한마디로 위안을 삼아 본다.(20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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