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감상: 《우리말 산책, 피천득 선생의 수필》 리뷰]

백두산백송 2024. 6. 2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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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우리말 산책, 피천득 선생의 수필》 리뷰]

피천득 선생은 1910년에 태어나 2007년에 타계한 시인이요 수필가다.  유일한 수필집 <인연>이 있고 시집 <생명>과 그의 첫 시집 <서정시집> 및 번역서 몇 권이 있다.  대표작 <인연>과 <수필> , <플루트 플레이어> 등이 교과서에 실리며 뭇사람들로부터 시인이라기보다 수필가로 더욱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두고 찬사와 더불어 옥에 티를 이야기한 분이 2010년 신구 문화사에서 출판, 《꽃길 따라 거니는 우리말 산책》의 저자 이익섭이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꽃길 따라 거니는 우리말 산책》, 1부에서 6부, 각부에 12편씩 수록, 총 72편이 수록되어 있다. <1부 맞춤법>, <2부 어휘 >, <3부 방언 >, <4부 문법>, <5부 한글과 한국어>, < 6부 말과 글 >로 되어 있다.  

<제6부 말과 글>에 실린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란 글을 리뷰해 본다.

이 글은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피천득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듣고 쓴 글이다.

皮千得 著 琴兒詩文選 (耕文社, 檀記 四二九二年 七月十日) (定價 1,000圜)

이게 제가 가지고 있는 첫 수필입니다. 물론 '詩文選'이라는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책의 반은 詩이며 책 끝에는 영어로 번역된 시도 몇 편 있는 체재이긴 합니다.

皮千得 著 珊瑚와 眞珠- 琴兒詩文選(一朝閣, 1969年 1月 15日) (값 450원)

이게 제가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수필집입니다.
부재에서 보듯이 앞의 책을 대게 그대로 낸 것인데 앞 책에 실려 있지 않은 새 수필들이 새로 실려있습니다.(빠진 것도 몇 편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같은 수필인데 제목을 바꾼 것도 눈에 띕니다.

선생의 수필집은 이후 몇 번 더 나온다. 그러나 그것들은 새 수필집이 아니고 이 두 번째 수필집을 모양과 이름만 바꾸어 낸  걸들이지요. 당장 앞의 <珊瑚와 眞珠- 琴兒詩文選>을 수필 부분과 시 부분으로 분리하여 琴兒文選(1980)과 琴兒詩選(1980)으로 낸 것이 특히 그렇지만 그 후 汎友文庫에서  수필(1976)이라는 제목으로 매운 것이나 근래 <샘터사에서 인연> (1996)의 이름으로 나온 수필집이나 <珊瑚와 眞珠>의 개정판이라 해도 좋을 책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좀 소홀히 한 일이 한눈에 띕니다. <珊瑚와 眞珠>에서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 너의 아빠 누워 있네// 그의 뼈는 산호 되고/눈은 진주되었네"라는 셰익스피어의 <태풍> 1막 2장에  나오는 <에어리엘의 노래>가 책머리에 장식되어 있고 "산호와 진주는 그의 소원이다"로 시작되는 서문이 실려 있는데 이것이 <인연>에도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개정판"으로 내지 못하고 책 제목을 <인연>으로 바꾸었으면 이 부분은 뺐어야 좋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선생의 수필집은 단 한 권뿐인 셈입니다-

여기까지가 이익섭 선생이  금아 피천득의 수필집을 보고 평한 부분이다. 당시 수필계의 지존인 금아를 향한 애정의 깊이를 알만하다.

이어지는 글에서 이익섭 선생은 금아 수필이 시공을 초월하여 생명력 있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조목조목 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수필집 <인연>에는 <신간을 내면서>라는 짤막한 머리말이 붙었는데 거기에 보면 "그동안 나는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을 위해 글을 써 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실제로 선생의 글에서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장면은 도처에 있습니다.

선생이 느끼는 아름다움과 기쁨은 곧 우리의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미쳐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선생의 글을 통해 우리는 함께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가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선생의 수필에 이끌리는 으뜸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의 아름다움과 기쁨은 아주 작은 세계의 것입니다. 선생이 추구하는 세계가 작은 세계라는 것은 도체에서 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필:멋>

-그 후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토스카니니가  아니더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 밑에 무명의 플루트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수필:플루트 플레이어 >

이렇게 작은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거기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것은 금아 선생이 세상을 그만큼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선생 수필의 가장 큰 바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아 선생의 수필은 한마디로 간결체입니다. 간결체의 가장 전형적인 글이 선생의 수필이라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도무지 군더더기를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예문을 읽으면 특히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 빠른 템포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차창을 내다보며 울었다. 아저씨가 나를 달래느라고 애쓰던 것이 생각난다.  울다가 더울 수 없으면 엄마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또 울었다. 그러다가 울음이 좀 가라앉았을 때 나는 멀리 어린 송아지가 엄마 소 옆에 서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 송아지가 몹시 부러웠다. 기차는 하루 종일 달렸다. 산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평양은 참 먼 곳이었다. <수필:그날>

선생은 그 명성에 비해 과작이었음은 자주 지적되는 이야기지요. 시인으로는 빛을 못 낸 것 같은데 그 대신 수필에 시적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이건 산문이기보다 시가 아니냐 하는 불만(?)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생의 수필은 시적 요소의 가미로 산문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탄탄한 구성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다음 예문은 시행(詩行)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수필:오월>

이것이 정상적인 삶이 되려면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먹은 청년의 청신한 얼굴과 같은 달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오월=얼굴'부터가 시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수필을 보면 그야말로 시를 쓰듯 쓰면서 결코 덤벙덤벙 많이 쓸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인 수필인 <수필>을 보면 선생의 수필관은 매우 엄격한 데가 있다. 그 기준에 맞는 수필을 쓰려면 결코 많이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여 수놓아 쓴 게 분명합니다.

다음 예문에서도 그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결국은 다 '좋아한다'는 것인데 변화를 주어 다 달리 표현함으로써 단조로움을 깬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나는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를 좋아하고, 꾀꼬리 소리를 반가워하며,  봄 시냇물 소리를 흐르는 소리를 즐긴다. <수필:나의 사랑하는 생활>


위의 내용이 이익섭 선생의 《우리말 산책, 제6부 말과 글》에 실린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 대한 리뷰다. 수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꽃길  따라 거니는 우리말 산책》 <신구문화사 이익섭 지음>을 꼭 권하고 싶다.(202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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