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감상: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정소영, 엮은이의 말, -여성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기- 리뷰]

백두산백송 2024. 6. 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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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정소영, 엮은이의 말, -여성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기- 리뷰]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정소영 엮고 옮김, 온다프레스 출판》

-"삶은 우리를 감싸는 반투명의 봉투", 인생의 모호함에 맞서 평생 읽고 쓰면서 그 답을 찾고자 했던 한 인간의 분투-

-누가 책을 읽으면서 최종 목적지를 생각할까요? 그냥 그 자체로 좋아서 계속 추구하는 것이 있지 않나요? 즐거움만이 최종적인 목적인 경우 말이에요. 적어도 내게는 이런 꿈이 있어요. 심판의 날이 와서 위대한 정복자와 법률가와 정치가들이 왕관이나 월계관을 쓰고 불멸의 대리석 위에 선명하게 그 이름이 새겨지는 보상을 받을 때,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가오는 우리를 보고 신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꿈이죠. "보게나, 저들에게는 달리 보상이 필요 없어. 우리가 여기서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본문 중에서

머리맡에 있는 생각 깊은 단어들을 어떻게 글로 엮어 갈까. 독서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글쓰기는 자체가 자기기만이요 만용이다. 내가 쓴 글이 어지럽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 나는 어떤 책이든 마구 읽는다. 그래야지만 한 줄의 글이라도 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읽고 쓰고 생각하기, 구양수가 말하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글을 잘 짓는 비결인 줄 알면서도 이를 실천하기란 누구에게나 힘겹다.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선, 이런 면에서 이 책을 엮고 옮긴 정소연 번역가의 <엮은이의 말: 여성으로서의 읽고 쓰고 생각하기>란 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머리글 <엮은이의 말, 여성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요약해 본다.

울프의 부모는 둘 다 재혼한 사람이다. 특히 아버지는 나이로는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울프는  결코 행복한 가정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뛰어난 문호 치고 평범한 가정이 드물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무척 의존했던 배다른 언니 스텔스와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울프는 신경쇠약 증세로 큰 충격을 받기까지 한다.

이런 울프가 심리적 정서를 극복하고 다시 문학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오빠 쏘비의 영향 때문으로 역자는 보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을 여성의 시각으로 보고 여성이라는 존재로 살아냈던 울프는 또한 그 세상을 여성의 시각으로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동시에 울프에게 모더니스트로서의 언어실험이란 곧 가부장적 언어의 껍데기를 부수고 여성이라는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사용법을 찾는 일이었다. 여성들이 예전과 다른 삶을 살고 예전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지금까지 무시되었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탐색하고 표현하려면 새로운 감수성을 담아낼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따라서 당대 여성의 상황과 문학 창작을 연결 짓고 새로운 문학에 필요성을 주장한 울프의 산문들은 새로운 감수성과 형식적 실험을 구현한 울프의 소설을 꽃피워낸 비옥한 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산문선을 '엮고 옮긴', 정소영 번역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울프의 산문을 처음 읽었을 때 예전에 알았던 모더니스트 소설가 울프와 사뭇 달라서 놀랐고, 이후 울프의 산문과 비평이 울프라는 인물에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울프와 함께 책 읽는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페미니스트로서의 울프를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글과 모더니즘적 선언문이라고도 할 <현대 소설>과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 모더니즘과 여성적 감수성을 결합한 글쓰기를 구현하는 <런던 거리 쏘다니기>, 위트가 두드러지는 <글솜씨> 등,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유형의 산문은 울프를 더욱 입체적인 인물로 만든다. 이 글을 읽으며 독자들이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유머를 담아 울프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직접 듣는듯한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세기 영미문학의 기틀을 세웠다는 평을 얻은 작가 버지니아 울프. 1882년 영국 출생, <자기만의 방>이라는 기념비적 산문집을 남겼다.

역자가 옮겨 놓은 글을 이렇게 훔쳐 먹는 재미란 마른 김을 참기름에 찍어 먹는 것보다 더 고소하다. 군침이 마구 돈다. 버지니아 울프 전집이 있지만 역자는 울프의 덜 알려진 산문들을 택했다. 페미니즘과 모더니즘, 어느 틀에도 얽매이지 않은 반폭력주의, 반전쟁주의를 자기 삶의 화두로 삼고 싸웠던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다 간 그녀의 산문들이 사뭇 궁금해진다.

목차만 봐도 눈이 즐겁다.

<글솜씨>,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여성의 직업>, <여성과 소설>, <여자는 울어야 할 뿐>, <베네 씨와 브라운 부인>, <현대 소설>, <수필의 쇠퇴>, <웃음의 가치>, <런던의 부두>, <런던 거리 쏘다니기>, <지난날의 소묘>

엮은이 정소영은 번역가, 영문학자, 용인대 영어과 교수로 재직.  옮긴 책으로는 <대사들 1,2>. < 실크 스타킹 한 켤레>, >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돌 세 개와 꽃삽>, <전쟁과 가족>, <유도라 웰티>, <권력의 문제>, <핵 벼랑을 걷다>, <십자가 위의 악마>, <일곱 박공의 집> 등이 있다.

그녀는 울프를 이렇게 보고 있다.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고통스럽게 절감했고 그들의 작품 속에서 이러저러하게 드러나기도 했던 분노와 원한은 울프에게는 물론이고 지금 한국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하지만 울프에게 창작이란 그것의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것을 자양분 삼아 피워내는 꽂이어야 했다. 울프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해 사회경제적 기반이 우선 필요하다는 사실을 적시할 만큼 유물론적 사고를 가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인 면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그랬기에 그는 여성들이 물질적으로 필요한 기반을 얻었다면 그 뒤로는 물질적 측면에만 매이지 않고 정신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역설했다.(202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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