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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이은성의 소설(중) 동의보감 리뷰, 제13화]

백두산백송 2024. 5. 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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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의보감,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따로 없다.-

멀쩡한 대낮에 버스정류장을 돌진한 차를 목격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 하나 없었다. 아니 이 시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급발진인지 오작동인지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한참을 멍하니 섰다가 어디엔가 전화를 한다. 나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지럽다.

버스 두 대 놓치고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좌충우돌, 차는 머리를 처박고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박살 난 유리알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차도 미치고 사람도 미친 것인가.


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지만 계절이 이러하니 꽃도 하늘도 땅도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다. 땅이 썩고 바다가 뒤집히고  하늘이 어지러우니 어디 사람인들 제정신이리요.

병자를 다스리기 위한 허준의 손목이 떨린다. 자신의 실수로 환자의 눈을 멀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혼자의 침술과 정성으로 거기에다 아내와 어머니까지 정성을 다해 시력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하는 허준. 환자를 다스리는데, 하나를 알고 하나를 몰랐던 그다. 명약에도 독이 있다. 세상사 일반이 어찌 이와 다르리오.  의정갈등(醫政葛藤), 과유불급(過猶不及)도 문제지만 집단 이기주의가 심리적 님비현상을 너머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연일 의사협회와 정부의 갈등으로 환자는 피를 흘리고, 전공의는 물론 의사들의 전략적 저항은 어디가 끝인 줄도 모르겠다. 정성을 다해 약을 다리고 침을 놓는 허준, 경남 산청 한방테마파크 동의보감촌을 애써 찾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만하다. 격 높은 의사들의 수준 높은 투쟁. 그들이 칼을 내려놓자 피냄새가 난다. 칼 없이도 피를 흘리게 하는 시위도 있다는 것을 허준도 나도 처음으로 알았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속 허준의 침술과 약제 처방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사이 스승 유의태는 반드시 누워 김민세로 하여금 위암 진단을 받고 있다.

안점산 김민세의 약제실에서 유의태의 나신을 조심스레 촉진해 가는 김민세의 눈이 긴장에 떨다가 외쳤다.

"아니 이럴 수가!  대체 언제부터 이랬단 말인가!"

"그대가 보는 바로도 반위(反胃:胃癌)인가?"

"이럴 수가....."

"죽을 사람은 날세. 왜 그대가 놀라는가."

"자넨 죽어서는 아니 될 사람인 걸 모르던가!"

"일영(一影)!" 하고 김민세가 유의태의 아호를 부지중 불렀다.

이미 자신이 갈 길을 알고 마음을 비운 유의태는 허준을 마음속으로 챙기며 김민세와 함께 다시 산음으로 돌아왔다.

스승과 제자, 이제 유의태는 허준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이며 이런저런 시험을 한다.

"내가 저 아이의  스승이요, 선배로서 내가 바라보는 바는......"

"선배란 뭔가. 그건 후학으로서 점령하고 뛰어넘을 목표여야 하리. 그게 첫째일세. 나를  뛰어넘을 후학이 아니고서야 무슨 재미로 눈여겨볼 재미가 있겠는가. 이젠 제 힘으로 우뚝 서야 해. 나 같은 건 잊고...... 나도 오늘 보았어. 저 아이의 침술을....... 능히 그 침술만으로도 세상 입초시에 오르내릴 정도는 되네. 지난달 창녕 성대감집에서 이룬 일도 결코 우연이 아니란 것도 확인했지. 그러나 제 뜻이 내의원에 있다면 재주 승한 것만으로는 앞길을 열 순 없어. 미워하건 아니하건 그자를 뛰어넘지 아니하고는  영원히 어의(御醫)의 길은 막혀 있다는 그 말을 하는 게지"

유의태가 허준의 앞길을 생각하며 친구인 김민세에게 한 말이다. 이처럼 벌써 유의태는 허준의 앞날을 위해 내의원을 꽉 잡고 있는 양예수를 능가할 그 무엇을 허준에게 넘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양예수, 그는 내의원의 으뜸으로 자신을 능가하는 싹수를 아예 잘라버리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내의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인물.  바로 김민세와 안광익이 양예수의 희생물이다.

치고 박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숱한 음모와 고자질 속에서 다시 살아난 생명력, 그것은 허준만이 지니고 있는 그만의 아우라요,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의원으로서의 윤리와 양심 그리고 자신을 향한 의지의 소산이다.

전공의를 바라보는 허준의 눈은 역시 냉소적이다. 양의든 한의든 의사의 기본은 환자에 있다. 환자를 떠나서는 의사란 의미가 없다. 도대체 그 똑똑하다는 의사들의 집합체가 하나로 통일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허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하나로 뭉쳐야 하는데 이건 시정잡배만도 못하다.

각개전투(各個戰鬪), 수준 높은 저항, 정말이지 칼을 버리고도 피를 부를 수 있는 고도의 시위를 허준도 나도 난생처음 보고 있다. 칼 없이도 사람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절대적 존재.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허준과 나는 그저  전공의도 의사도 이렇게 칼 없이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는 엄청난 힘의 존재임을 처음 알았다.

다행히 사람하나 다치지 않은 사고현장이 긴급출동한 경찰에 의해 조용히 수습되었다. 그렇다. 그저 무엇을 모르는 우리들 서민이란 하루빨리 의정갈등이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허준이 다스리는 환자도 스승 유의태와의 협업으로 시력을 회복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소설 동의보감,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따로 없다. (20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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