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달의 길, 치부의 길이 아닌 의(醫)의 길, 텅 빈 병사(病舍), 불안한 공존-
프랑스의 세느강변과 이탈리아의 폼페이우스 광장이 허준과 유의태에게 손짓을 한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의료대란,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유의태의 마음이 착잡하다. 울부짖는 병자를 외면하고 영달의 길로 떠나간 아들 도지와 수제자 임오근. 그리고 아들을 따라가 버린 아내. 아들 도지는 내의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집안은 오히려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되어 버렸다. 유의태가 "헬조선"을 외치자 허준이 맞받아친다. "헬조선, 젠장 빌어 먹을 것들."
"치병용약(治病用藥)의 술(術)이나 의료제민(醫療濟民)의 이상에 앞서 의원이 의원이고자 하는 그 심지와 품성을 중히 여기는 유의태."
병을 고치고 다스려 잘 살고 잘 먹기를 바리는 마음은 하나인데 가는 길이 달라 보인다. 그렇게 매몰차게 자신을 내쳤던 스승 유의태의 속내를 알 수 없는 허준. 과연 스승 유의태는 나란 사람을 의원으로 보고 있기나 할까. 비인부전(非人不傳)으로 버렸던 자신을 왜 다시 부를까. 참으로 이해 못 할 형국이다.
세상이 요동을 치고 있으니 허준도 유의태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한 세상, 허준과 유의태의 입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동시에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미 마음의 한 영역이 검게 물들어 버린 두 사람. 허준도 유의태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를 버릴 수 없는 관계. 두 사람이 전공의와 의협간부로 환치되는 순간이다.
두 사람 다 고집불통이라면 고집불통이다. 이런 그들을 두고 나도 헷갈린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모르겠다. 의원시험에 합격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도지가 왜 아버지 유의태에게 내침을 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십 년 세월이 넘도록 스승 유의태를 지극으로 모시며 뭔가 반대급부를 기대하던 임오근이 왜 버림을 받아야 하는지. 그토록 우직스럽게 스승 유의태를 지존으로 모셨던 허준이었지만 그는 왜 철저히 외면을 당했어야 했는지. 격 높은 유의태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해 못 할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아무리 스승이지만 사람을 이렇게 농락할 수 있단 말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늘하게 자신을 내쳤던 사람 유의태. 인간적 정리(情理)에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유의태를 두고 허준은 갈등한다. 임오근과 도지 그리고 이런 스승 유의태를 생각하면 "헬조선"도 이런 "헬조선"이 없다. 참 이해 못 할 스승이요 인간들이다.
티브이를 곁눈으로 바라보는 유의태는 유의태 대로 심장이 터진다. 밀고 당기는 사이에 힘없는 병자들은 이리저리 헤매다 죽어가고 자신의 영달과 이기주의에 편승하여 환자를 외면하는 의원들은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그렇다. 자신을 외면한 아들 도지도 패악(悖惡)을 부리며 도망간 제자 임오근도 이들과 똑같다. "사람이 먼저"라고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헬조선". 그래도 의원으로서의 심지와 품성, 마음자질 하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허준뿐이다. '그래 허준이다. 허준만이 할 수 있다.'
유의태는 허준을 다시 불러들인다. 허준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허준이 자신을 대신하여 병자들을 회진하고 있다.
"모자라면 채우면 된다."
스승에 비해 아직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허준의 다짐이다. 자신을 알고 유의태를 알고 환자의 심정을 안다.
"무심지의(無心之醫), 의(醫)의 길에는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 있다."
그래서 의(醫)의 첫 단계에서 부딪치는 심병(審病)의 술(術)을 예로 누누이 유의태는 주장했었다. 이를 이해하고 따를 자는 바로 허준이다. 이렇듯 유의태는 마음 깊이 허준을 안고 있다.
"신(神), 성(聲), 공(工), 교(巧)라 이름하는 심병(審病)의 수단에 신(神)은 병을 짓는 데 바라보기만 하여 아는 경지로서 바라본다 함은 병자(病者)의 오색(五色) 즉 코, 눈, 이마, 뺨, 피부색을 보아 절로 아는 것을 말하며, 성(聲)은 듣고 아는 경지로서 오음(五音)을 듣고 숨은 병을 분별하는 재주며, 공(工)은 일일이 병자의 용태와 괴로운 것을 물어서 아는 경지요, 교(巧)는 맥을 짚고 미심쩍은 곳을 만져보아 병을 찾아내는 경지다."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고 의사들이 환자들을 외면하니 온 나라 구석구석 병이 깊어만 간다. 신(神), 성(聲), 공(工), 교(巧)의 묘를 살릴 수는 없을까.
'무심지의(無心之醫), 지식은 연륜과 훈련으로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로되 설사 그것들을 차례로 거치고 이르렀다 할지라도 정작 병자의 아픈 데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흔하디 흔한 의원일 뿐.'
'영달의 길이 아닌 의(醫),
치부의 길이 아닌 의(醫)'
"그래 허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유의태지만 겉으로는 허준에게 냉정하다. 스승의 깊은 마음을 알리 없는 허준의 마음이 흔들린다. 지금 허준의 눈에는 스승이 단순 스승이 아니다. 고집불통, 소통부재. 과유불급. 어쩌면 허준도 마찬가지다. 이 둘의 심리적 정황을 이해하기란 독자인 나도 괴로울 뿐이다.
"항차 네가 무엇이기에!"
유의태가 허준을 향해 한 말이다.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
허준이 속으로 스승 유의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의태란 인간에게 존경일랑은 아예 없다. 하지만 자기보다 한 수 위의 의원이라는 그 사실에 대한 미련 때문에 허준은 유의태를 포기하지 못한다. 자식도 아내도 제자도 모두 떠나보내고도 가슴 아픈 빛은커녕 눈썹도 까닥 않는 그 태연함에 대하여 알지 못할 적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지금 허준의 마음이다.'
이렇듯 허준이 스승 유의태와 심리적으로 멀어져 갔고, 아들과 아내와 수제자인 임오근으로부터 수난을 당한 유의태는 병사(病舍)를 허준에게 맡기고 집을 떠난다.
"사람의 목숨이란 세상의 질서일세. 초승달이 태어나 보름달이 되고 다시 그믐달이 되어 없어지듯이 그리고 다시 비치다가 커지다가 사라지고 그렇게 끝없이 태어나고 끝없이 죽고......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무언가 넘기려는 것이 아닌가?" 유의태는 자신의 병을 이미 알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친구인 김민세와 안광익을 찾아간 유의태가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내심 자신의 썩어가는 몸뚱이를 던지고 싶은 마음. 허준은 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조선 천하의 명의를 만들고 싶은 스승 유의태가 전공의들을 포함한 의협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격세지감, 과유불급이라지만 그래도 그때는 '영달의 길이 아닌 의(醫)"와, "치부의 길이 아닌 의(醫)'는 살아 있었다.
"오로지 환자만 보고, 오로지 백성만 보고 살아가겠다"는 외침 속에서 환자와 백성은 오롯이 볼모로 갇혀 있다. 병자를 돌보던 허준도, 티브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안고 있는 유의태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봄바람이 현관 앞 모란을 유혹하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할 일 다 하고 좌우를 둘러보아도 어디 한구석 기댈 곳이 없다.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매몰차게 물리쳤던 허준을 다시 불러들인 유의태. 불안한 공존, 다만 서로를 향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경계할 뿐이다. (202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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