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12화: 우리 어찌 살거나-
역사를 기반으로 한 대하소설, 현실이 소설이고 소설이 현실이다. 제12화의 제목이 《우리 어찌 살거나》이다. 구한말, 시국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흑과 백을 가늠하기 힘든 세상에서는 늘 소문대로 일은 진행된다. 을사보호조약으로 나라는 망하고 소문대로 각 부서 대신들은 자결했고 장지연은 목놓아 울었다.
"금산사 미력불과 은진미륵이 통곡을 했다는 소문만이 아니었다. 사명당의 비석이 땀을 서 말이나 흘렸다고 했고, 지리산 음양샘에서 선지피가 흘러내린다고 하는가 하면, 무주 구천동 골골이 밤마다 귀신들의 울음으로 가득 찬다고도 했다. 그런 흉흉한 소문들이 떠도는 가운데 일진회에서 한일 보호조약 체결을 찬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905년 한일협약, 일러 을사보호조약을 말한다. 이는 불평등조약이라 한일늑약이라 칭하기도 한다.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쓰면서 을사보호조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인심이 불안하고 술렁거리는 속에 "을사오적"이라는 새로운 말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라를 왜놈들에게 팔아먹은 다섯 역적이라는 말이었다.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법무부 대신 이하영, 학부대신 이완용, 농공상부 대신 권중현이 그들이었다.
개가죽을 쓴 우리 대신들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황제폐하와 2천만 동포를 배반하고 4천 년 강토를 외인에게 주었도다. 슬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살아야 할거나 죽어야 할거나. 장지연이 그날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나는 일본을 잘 알지도 좋아하지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우리를 지배했고 우리는 주권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알량한 민족감정을 부추기며 반일감정을 고조시키기를 원치 않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듯 우리는 더욱 깊게 그들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자강의 시발점을 여기에 두어야 한다. 아리랑을 읽다 보면 저절로 민족애가 솟구친다. 이 솟구치는 감정은 지극히 당연하다. 당연한 감정을 잘 순화하여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또한 그들을 안아야 한다. 흘러가는 한류 열풍을 슬기롭게 이용하여 보다 큰 그릇되어 서로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가 망했다. <1권 12화>의 중심인물인 송수익은 신세호를 찾았다. 의병봉기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송수익은 개화의 대유요 신세호는 유림의 대유다. 개화기 근현대사를 거울삼아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시기다.
"내가 예고 없이 찾아들어 마음이 또 시끄러워지는 것 아닌가? "
송수익은 신세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아니, 사사로운 일로 그러는 게 아니네. 자네 맘도 잠잠하지가 못한 것 아닌가? 자네 잘 왔네."
신세호가 흐리게 웃음 지었다. 그 쓸쓸한 웃음에는 슬픈 기색이 깃들여 있었다.
친구의 마음을 빤히 알면서 분연히 일어나 주기를 기대하지만 어디 이런 일이 쉬운 일인가.
"그래, 자넨 이번 일을 어찌 생각하나. 무슨 방책이 있나?" 송수익의 말이다.
"글쎄...... 나라가 망한 일이니 더 무슨 생각이 있겄능가. 사흘 전에 우리 유생들이 대한심삼도유약소의 이름으로 상소를 올리기는 했네만..... 그것이 무슨 방책이 될라는지......"
"상소라.....상소라....."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송수익이 중얼거리고 있다.
때는 1905년 한일합방 이전, 조정래의 <아리랑 1부 1권>은 일진회를 중심으로 서서히 식민지화되어 가는 형국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에 항거하는 애국지사의 결연한 의지를 내세우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 최익현의 상소문이 나오는가 하면 임금을 호위하던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활복자결을 했다. 전 의정부대신 조병세가 자결했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겨울은 깊어가고 일진회는 하야가와를 중심으로 식민지화를 향한 전열을 가다듬고 송수익과 같은 인물은 유생들의 상소가 아닌 의병봉기로 일제에 대적할 궁리를 한다.
'우리 어찌 살거나.',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연상할 수 있는 말이다. 아리랑 <1부 1권>은 이렇게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민족의식의 고취, 이는 곧 민족애의 자각이요, 근대의식의 시발이다.
조정래의 아리랑 <1부 1권>, 이 부분의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개화기의 문학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나온 문학예술의 양식이 개화가사, 창가, 신체시 등이요,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가 나온가 하면 신파극 등이 출현한다. 을사보호조약을 기점으로 신교육, 신학문, 신문학, 신여성 등의 어휘가 유행하기 시작하며 이광수의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이 나오기도 한다.
신구 갈등 대립, 기존문화에 대한 거부반응, 새로운 것에 대한 경이와 호기심이 자생하며 근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모든 것들이 1894년 갑오개혁이란 구호 아래 일본의 침략적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면서 자생적 근대의식의 한계점과 왜곡된 민족주의가 기생하게 된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근현대문학사/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참조-
끝으로 개화가사, 동심가(同心歌)를 불러 본다. 독립신문에 발표된 노래다. 현대어로 직역된 것을 그대로 옮겼다. 계몽적, 교훈적 노래로 문명개화를 위한 민족의 일치단결을 주제로 한 노래다. (처:https://bloggermin2.tistory.com )
잠을 깨세 잠을 깨세
사천 년이 꿈 속이라.
만국이 회동(會同) 하야
사해(四海)가 일가(一家)로다.
구구세절(區區細節) 다 버리고
상하 동심(同心) 동덕(同德)하세.
남의 부강 부러하고
근본 없이 회빈(回賓)하랴.
범을 보고 개 그리고
봉을 보고 닭 그린가.
문명 개화하랴 하면
실상(實狀)일이 제일이라.
못의 고기 부러 말고
그물 맺어 잡아 보세.
그물 맺기 어려우면
동심결(同心結)로 맺아 보세.
아리랑의 <1부 1권> 《우리 어찌 살거나》, 그래도 그때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개화를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가 애국 애족의 절대적 가치였고 길이었음을...... (202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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