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산문 &감상: 이은성의 소설(중) 동의보감 리뷰, 제10화]

백두산백송 2024. 3. 3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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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디오머그

-허준에게도 도파밍과 세로토닌은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면천, 기어이 김민세를 찾아 너와집에 들어선 허준.

안광익과 김민세는 허준의 면천 조건으로 문둥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1년 기한의 약초를 갈무리하는 소임을 맡아 줄 것을 제시한다. 여기에다 한 발 더 나가 인근 저수지를 돌며 가물치를 씨가 마르도록 잡아들이는 일과 죽은 송장의 간이나 뼈다귀의 효험을 시험하기 위해 허준으로 하여금 굴총(堀塚)에다 사람의 뱃속을 갈라보기를 권유한다.

면천을 위한 몸부림, 너와집은 허준으로 하여금 신분상승을 위한 재생의 공간. 의사가 되는 길, 안광익은 허준을 향해 한마디 찔러둔다.

"너로선 면천과 의업 정진의 두 가지 이득이 있는 일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즉  잘 생각해 보거라."

의사가 되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도 힘든 것. 가끔씩 시체 기증을 통한 실험실습 이야기를 가까운 의사들로부터 듣긴 들었지만 한의원에게도 이것은 필수 수련 항목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배를 갈라 속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깁는 실험 등을 생각하면 아마도 <MBTI 성격유형>이 <분석가형이나 탐험가형>으로서 나올 것만 같은 허준에게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닭모가지 하나 비틀지 못하는 <INFJ-T>인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의원이 되는 길, 역시 타고난 심성과 하늘이 부여한 소명을 즐길 때만이 가능한 일이리라. 천직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허준이 가는 길이 재미를 좇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을 그는 끝내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즐겨야만 한다. 그것이 그가 타고난 운명이요 숙명이다.

김난도가 말하는 《2024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의 하나인 '도파밍', 안광익과 김민세는 어쩌면 문둥병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끝없는 모색의 행위, 무모한 도전이 주는 반전의 쾌락을 추구하는 자인 줄도 모른다. 문둥병 환자를 위한 나무관세음보살도 중요하지만 육신이 허물어져 내리는 그 핵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고드는 실험적이고 선험적인 도전, 남자와 여자의 배를 직접 갈라보고 싶은 충동, 도파밍이 없이는 허준으로 하여금 의원이 되기를 포기하란 말이다.

'도파밍은 도파민 dopamine과 파밍 faming을 결합한 말이다. 파밍이란 게임용어로서 플레이어가 게임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작물을 수확하듯 아이템을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도파밍은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도파민이 분출되는 행동이라면 뭐든 시도하고 모아보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과연 면천을 위해 허준은 안광익과 김민세와 함께 일 년 동안 문둥이 소굴에서 같이 생활할 것인가. 아니다. 빠져나가야만 한다. 또 다른 면천의 길을 모색하는 허준. 그는  밤잠을 설치며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가자. 도망가서 창녕 성대감을 찾아 소개장 하나 다시 부탁하여 내의원 취재를 보자. 혹여 내가 문둥병에 걸리면 끝이다. 허준은 문둥병 환자촌인 너와집 구멍굴을 서둘러 빠져나온다.

김민세, 허준의 마음을 미리 알고 있는 그는 허준의 마음을 잡고자 떠나는 허준에게 서찰을 남긴다.

면천의 길이 적혀 있다는 김민세의 서찰, '의지일생 묘법존심(醫之一生 妙法存心)의 여덟 글자였다. 의원으로 나가는 길은 따로 묘법이 없고 온갖 비방은 마음속에 있다는 내용. 허준은 이 여덟 자를 풀었다. 그리고 그 '마음속'이란 환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리키는 말임도 알았다.'

그러나 허준은 안광익과 김민세를 멀리하고 뛰쳐나와 다시 창녕 성대감을 찾아간다. 하지만 성대감의 부인은 풍병이 재발하여 끝내 죽었고 성대감은 서울로 올라가고 없다. 허준의 인생, 살맛이 없다. 하지만 삶의 반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우연히 창녕땅 주막에서 만난 박갑서, 그는 내의원 취재를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손. 3대째 의업을 이어가는 그의 형편없는 실력을 간파한 허준은 스스로  용기를 얻고 자신도 의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구침지희' 하나 모르는 박갑서. 자신은 유의태 밑에서 10년 세월 창녕 성대감 부인의 풍병을 낫게 하지 않았던가. '가자, 나도 가서 의원취재를 보자.' 이미 사건 전개의 복선은 깔렸고 허준은 아내와 어머니 앞에서 내의원에 꼭 합격하리라 다짐한다. 결코 무모한 도전이 아니다. '달 리자. 꼭 합격해야만 한다.'

허준의 도전,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도파민이 이끄는 삶과 세로토닌이 이끄는 삶의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김난도는 역설하고 있다.

'도파밍 행동'은 다양하다. 도파밍의 네 가지 유형.

첫째, 랜덤 상황이 선사하는 재미추구다. 허준의 상황은 랜덤 상황은 결코 아니며 재미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연함이 선사하는 가슴 두근거림을 경험하고자 사람들은 일부러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순간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허준이 바로 그렇다.

둘째, 상식을 벗어난 엉뚱한 상황에서 경험하는 일탈의 재미를 추구한다. 비일상적이고 과장된 행동을 할 때 따라오는 왠지 모를 통쾌함과 해방감이 이에 해당되지만 허준의 행동과는 거리가 먼 유형이다. 하지만 허준은 알게 모르게 이런 성장통을 거쳐왔다.

셋째 도전 자체도 무의미하고 결과도 알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즐기며 재미를 경험한다. 그렇다. 어쩌면 내의원취재를 향하는 허준의 내적  사고나 행동유형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기괴하고 가학적으로 보이는 스트레스를 자초하고 그것이 해소되는 순간 찾아오는 반전의 쾌감을 누린다. 누구에게는 스트레스인 행위가 다른 이에게는 신선한 재미인 것이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주인공 허준이 보여주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삶이 주는 카타르시스. 독자는 울고 웃는다.

허준, 삶의 절박함이 이끄는 도파밍의 세계로 스스로를 채근하고 그 길을 나선다.

"앞으로  두 달 반이 올시다. 올라갈 노정을 생각하면 길어야 두 달......  촉박한 시일임은 틀림없으나 내 몸이 부서질 걸 각오하며 취재의 공부에 매달릴 결심이오니 소자의 말을 믿어주시어 다시 한번 참고 견뎌 주소서."

"만일 이번 길 또한 실패하거나 내의원 취재가 소자의 능력보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이라면 깨끗이 손을 털고 다른 길을 택하오리다."

"꼭 붙어보겠소. 믿어보시오. 꼭 붙어보일 것인즉."

'도파민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지만, 새로운 자극에만 분비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자극적인 쾌락을 좇게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세로토닌 serotonin이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편히 갖고 명상하고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도파민이 엑스레이트라면 세로토닌은 브레이크다. 액셀레이터가 없는 차는 움직이지 않지만,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사고가 난다. 둘의 조화가 필요하다.'

허준에게도 도파밍은 꼭 필요하지만 세로토닌 또한 없어서는 아니 될 요소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편히 갖고 명상하고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가족을 위해, 아니 어느 순간 사람인 환자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의원의 길을 위해 몸부림치는 허준. 그는 '도파민이 이끄는 삶과 세로토닌이 이끄는 삶의 균형을 도모해야'만 한다.

안광익과 김민세, 그리고 궁녀 정씨, 휘몰아친 역경을 딛고 끝내 평정심으로 문둥병을 다스리듯 허준도 냉정을 찾아 꼭 내의원 시험에 합격해야만한다. 의원취재를 향한 허준, 그에게도 '도파밍과 세로토닌은 필요충분조건'이었다.(202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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