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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경부텰도>, 그리고 <무정>을 생각하다]

백두산백송 2024. 3. 2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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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다음 카페

[산문&감상: <경부텰도>, 그리고 <무정>을 생각하다]

열차는 경부선 철도를 오늘도  달리고 있다. 기차(汽車)란 말이 좀 더 향수 짙게 다가오지만 여러 개의 찻간을 이어놓은 것을 보면 열차(列車)란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기적소리 울리던 증기 기관차가 한 모금 추억을 삼키며 지나간다.

<경부텰도 노래>, 이 노래를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들었다.

-경부텰도 노래-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 /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같으니 /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 우리 내외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친소 다같이 익혀 지내니 /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

원제는〈경부텰도노래(京釜鐵道歌)〉로, 1908년에 최남선이 일본의 철도창가를 멜로디와 가사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곡이다. 실질적으로 녹음된 기록은 현재 한국과 외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가사와 악보만 전해지고 있다.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박물관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위 영상은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박물관의 한 전시실에서 찍은 것이다. <출처:나무위키>

이런 영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

노래를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춘원이 다가왔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 이 둘은 1910년대 우리 근대문학의 시발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일러  이 시기를 우리는 2인 문단시대라 한다. 선명한 대비는 육당은 운문이요, 춘원은 산문이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흥얼거려 본다.

최남선은 1908년 11월 한국 최초의 근대 잡지 소년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다. 이를 신체시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는 주요한의 <불놀이> 요, 이 자유시의 첫 발판이 된 노래를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본다. 개화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노래한 시다.

개화의 물결은 출렁이고 열차는 달린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 속 경부선 열차에서 만난 네 사람.  형식과 선형이 스쳐가고 영채가 울고 병욱이가 영채의 가슴을 달래고 있다. 수재민 현장을 보고 온 네 사람이 여관방에 모였다.

<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1917년 <매일신보> 연재. 자유연애사상이 골격을 이루며 계몽의식이 짙은 소설이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을 주어야겠어요. 지식을 주어야겠어요."

하고 주목을 불끈지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니는 형식.  

신파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당시로는 대단한 의식의 전환이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래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 주어야하겠다."

"과학!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보고 있다.

형식이 말하는 '과학'과 '지식'이란 당시 부정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요, 조선 민족이 추구해야 할 것으로 강력한 힘을 갖춘 서양 문명의 대유다.

곤경에 처한 수재민 현장에서 형식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토론의 핵은 '지식'과 '과학'을 통한 개화, 계몽 및  민족의 각성이다.

박영채와 김선형은 이형식과 김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이들이 비롯 개연성 짙은 허구적 인물이지만 내 얼굴도 한 번 쳐다보면 좋겠다. 나는 이들의 내력을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김선형, 박영채, 그리고 이형식은 서로 삼각관계다.  선형은 개화기 신여성의 전형적 인물이요, 형식과 약혼한 사이다. 봉건적 가치관에 사로 잡혔던 영채는 어릴 때 이형식과 정혼한 사이. 그리고 영채로 하여금 의식의 변화를 이끄는 조력자는 병욱이다.

경부선 열차,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가 달리고 달린다. 차창을 스치는 잘 정비된 논밭, 하얀 구름 같은 연기를 흩날리는 무수한 공장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조국 산천이 평화롭다. 형식과 영채와 선형이 그리고 병욱이가 바라본 수재현장, 순수를 지나 참여의 문학에는 눈물과 피와 아픔이 있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모 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모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암울한 시기, 치욕의 역사, 한국근현대문학사의 시발은 이렇듯 어두운 역사 속에서 잉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알 것은 알아야 한다.

한국근현대문학사, 역시 문학사의 주체는 사람이다. 글이 멀어져 보일 때, 나는 종종 이런 몸부림을 친다. 문학사를 빛낸 아니 문학과 더불어 함께 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전적인 글쓰기에 매달려 본다. 이런 습관들이 문학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한국근현대문학사를 쓴 장석주는  '창조적 주체의 삶이 곧 문학'이라고 했다. 육당 최남선도 춘원 이광수도 창조적 주체의 삶 즉 문학적 인생을 살다 간 인물들이다. 창작의 주체들, 말하자면 이들이 우리의  문학사를 빛낸다. 하지만 좌절과 변절 그리고 애국을...... 하여 나는 장석주가 말하는 '그들이 산 시간', '그 찰나들의 경험'을 하나하나 들춰낸 '그들의 이야기'를 리뷰하며 나의 수필 문학을 위한 몸부림을 쳐 보고 싶다.

아픈 역사를 안은 채 열차는 부산진역을 지나 부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형식도 영채도 선형도  조력자인 병욱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는 봄날인데 마음은 겨울이다. 지난한 역사의 현장, 수재민 구호소가 오버랩된다.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지식'으로 '과학'으로 '교육'으로......(202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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