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자기 커리어'의 실천적 의지의 인물이어라-
면천, 허준에게는 면천이 절박하다. 겨우 어머니와 아내의 떡장사로 입에 풀칠을 하며 지내는 신세, 유의태의 집에서 쫓겨난 허준으로서는 아직 삶의 길이 없다. 무심한 하늘, 도적에게 산삼은 털렸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성대감의 정경부인 풍병을 고치고도 되레 온갖 괴롭힘을 당하며 유의태에게 마저 버림받은 허준. 서서히 몸이 회복되면서 자신을 구해 준 김민세를 떠올린다. 그래 김민세를 만나자. 살 길은 면천밖에 없다. 김민세를 만나기 위해 다시 유의태의 집을 찾은 허준. 유의태의 냉대 속에 겨우 삼적대사 김민세를 만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낸 낸다.
유의태의 차디찬 눈매를 생각하면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것. 진정한 인간관계란 정녕 어떤 것일까. 살아보니 결국 믿을 것은 자신과 가족뿐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허준의 눈에 되비치는 아내의 사랑과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헌신. 허준의 눈에 눈물이 고이니 내 눈가도 촉촉하게 적어 있다.
비인부전(非人不傳), 유의태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처절한 심정은 후일 동의보감을 저술한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절치부심, 유의태의 의발(依鉢)을 전수받을 자는 그의 아들 도지와 임오근 그리고 상화로 좁혀졌고 허준은 토사구팽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함양 북쪽 30리, 안점산, 삼적사."
유의태가 일러준 김민세의 거처지를 가슴에 새기고 김민세를 찾아가는 허준. 면천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일생일대의 소망이 걸린 길. 그는 결심한다. 내의원 취재의 길이 면천의 시작이라면 다시 창녕 성대감을 찾아 도제조 노신수에게 보일 소개의 글을 써달라고 간청하리란 마음까지 먹는다. 함양까지 30리, 함양에서 안점사까지 다시 30리, 합해서 60리를 내리 달렸다.
삼적사를 기어이 찾아내고 만다. 김민세가 두드리는 북소리 따라 찾아든 너와집,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문둥병 환자들과 안광익과 안광익의 첩 궁녀가 다가온다. 문둥이굴에서의 만남, 안광익, 궁녀 정 씨, 김민세, 그리고 허준. 면천의 길은 험하고도 험한 것. 통과의례도 이런 통과의례는 없다. 허준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문둥병 소굴에서 문둥병자들을 돌보며 치유하고 있는 세 사람, 김민세, 안광익, 궁녀. 그 사이를 슬쩍 파고드는 트렌드코리아 <2024 10대 소비트렌드의 키워드>의 하나인 <돌봄경제>가 눈앞을 파고든다.
-Supporting One Another: "Care -based Economy "돌봄경제-
'인간은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초개인화의 나노사회. 일분 1초가 아쉬운 분초사회에서, 돌봄의 시스템화가 중요해졌다. 돌봄은 이제 단지 연민이 아닌 경제의 문제다.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른 사회적 약자들만이 그 대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세상이다. 돌봄경제는 바로 나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 조직과 사회의 경쟁력이다.'
허준, 유의태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인물이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인격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린 것이다. 정신적, 자학적, 깊은 수렁에서 윈기회복 하여 다시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허준, 조력자인 김민세와 안광익이 인간적으로 돋보이는 이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예나 지금이나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김난도가 말하는 돌봄경제, '돌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과거에는 돌봄이 단순히 타인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최근 들어 개념이 극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복지 차원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돌봄을 둘러싼 새로운 사회적 기술적 움직임을 돌봄경제라고 명명하고자 한다.'고 했다
돌봄경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패러다임의 변화, 이런 차원에서 보면 허준은 스스로 돌봄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육각형 인물이다. 육각은 동, 서, 남, 북,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우주 생성의 근원적인 형상이다. 막힘이 없는 사고유형, 허준을 허준이게 한 것은 분명 허준이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한 구절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기를 스스로 돌보는 '자기 커리어'가 중요시되는 사회다.
김난도는 돌봄경제를 세 가지 측면으로' 배려돌봄, 정서돌봄, 관계돌봄'으로 나누며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부모의 커리어'를 돌보는 것이고, '고령자'를 기술을 통해 보살피는 것은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는 일이며 "직원"을 배려하면 '조직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날로 개인화되는"분초사회"의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됐다. 사람을 일으켜 세워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로서, 돌봄경제는 이제 엄청난 정책적, 산업적 파급 효과를 가지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가 될 것이다라고도 했다.
분초사회의 분주함 속에서 허준을 생각하면 답답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의 사고와 삶의 자세는 스스로 돌봄경제를 실현한 '자기 커리어'의 실천적 의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현대판 돌봄경제의 한 축에서 보면 허준, 그는 분명 '자기 커리어'의 실천적 의지의 인물이어라.(202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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