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능력의 소유자, 허준-
허준,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스승 유의태에게 배운 구침술이나 방대한 의학적 지식을 쌓아가는 '앙터프리너'요, 동시에 '메타인지' 능력을 겸비한 "'AI프리너'가 아닐 수 없다. 성대감 부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의 도전정신과 창의성, 그리고 환자나 가족을 대하는 인간성으로 볼 때 허준은 그야말로 '앙터프리너'요, 'AI프리너'이면서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가 아니고 무엇이랴.
'생성형 AI 시대를 주도하려면 사색과 해석력을 겸비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던 앙터프리너(Enterpreneur:창업자)에게 도전 정신과 행동력이 필수였다면 자유자재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성취를 극대화하는 AI프리너(AI-preneur)에게는 인본주의적 비판 능력이 필요하다. 가장 인간적인 아날로그 역량이 오히려 중요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기술적 결과물에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 변경(邊境)을 향해 스스로를 넘어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메타인지(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관점에서 관찰, 발견, 통제하는 정신 작용)능력을 갖춘 인간만이, AI가 작업한 <용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의사협회에는 양의(洋醫)와 한의(漢醫)와 전공의(專攻醫)와 전문의(專門醫)가 다 들어 있다. 이들이 한때는 약사와 밥그릇 싸움을 하기도 하고 간호사와 투쟁을 하기도 했다. 인간 허준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밥그릇 싸움이다. 결국 그들의 눈높이에서 '메타인지'가 절실히 요구될 수밖에 없는 이해집단이다.
메타인지 능력의 소유자인 허준의 일생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정경부인의 치유로 성대감이 써준 서찰 하나 들고 산음으로 돌아왔지만 주변인들의 시기와 질투와 같이 갔던 임오근의 고자질로 서찰은 한 줌 재가 되어 버렸고, 허준은 그 길로 유의태의 집에서 쫓겨난다.
살길이 막막한 허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지난날 자신을 구해 준 변돌석을 찾아가기로 결심. 어머니와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여수로 향하는 깊은 산에서 산삼 중에 산삼이라 불리는 '육구만달'과 '칠구두루부치'라 불리는 귀하디 귀한 일곱 잎짜리 진품 산삼을 발견. 밤새 열손가락 피투성이가 된 채 동녀(童女)를 닮은 진품 두 뿌리 산삼을 들고 심봤다를 외치며 다시 집을 향해 내리 달린다.
영웅의 일대기는 한순간 부귀영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 피어오른 '칠구두루부치'처럼 영웅은 죽음 직전에 꽃을 피우는 것이 신화나 전설 속 영웅의 일대기다. 끝내 중국의 본초강목에 버금가는 의서 동의보감을 펴내고 마는 허준은 전설적 인물이요 신화적 존재다.
한 채 집을 사고도 남을 부귀영화를 꿈꾸는 허준, 두 뿌리 산삼을 들고 집을 향하는 길목에서 산속 도적들을 만나 산삼을 빼앗김은 물론 의식을 잃고 쓰러짐. 하지만 하늘은 또한 영웅을 쉽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반드시 나타나는 구원자, 그들의 이름은 지난날 유의태 집에서 보았던 안광익과 김민재. 둘 다 내의원에서 한 세월 권세를 부리며 영화를 누렸던 인물이지만 출세의 길이 막힌 중놈의 신세가 되어 버린 인물들. 이 둘의 손에 기사회생한 허준.
안광익과 김민재는 허준의 구차한 일생을 파악하고서는 허준으로 하여금 내의원의 길을 암시하고 면천을 시켜 주고자 마음먹는다. 소설은 늘 정점에서 복선을 깔고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유혹한다.
허준을 두고 떠나가는 두 사나이, 안광익과 김민재.
막 강심(江心)으로 쪽배 하나가 가고 있었고 그 위로 배를 젓는 김민새가 보였다.
허준이 외쳤다.
"대사님, 나 좀 봅시다. 대사니임---"
강바람이 그 소리의 반을 흐트러뜨렸다.
허준은 멀어가는 배의 방향으로 모래톱을 달리며 다시 절규했다.
"시키는 대로 하리다. 면천하는 길이면 무슨 짓이든 하리다앗! 날 좀 보고...... 가..... 오..... 날...... 좀!"
피를 토하 듯한 허준의 절규를 분명 들음직한데도 배 위의 두 사람은 돌아보지 않은 채 배는 점점 멀어져 갔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중국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자기의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스승의 안목으로 보아 딱 합당한 인물이 아니면 함부로 예(禮)나 도(道)를 전해줄 수 없다는 사제간의 냉엄한 도리를 일컫는 말이다. 정말이지 스승 유의태의 수제자가 되기를 갈망해 보지만 용천 현감 허사또의 첩실 소생인 허준의 앞날은 까마득해 보인다.
상전벽해(桑田碧海), 허준이 또다시 살길을 찾아 몸부림을 치는 사이 김난도의 '용의 눈'을 향한 휴먼터치, 호모 프롬프트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허준, 그 사람 육각형 인간이 맞나요? 그리고 지금의 의료개혁 꼭 필요한 것이 맞지요?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상권은 비인부전(非人不傳)으로 끝을 맺고 있다.(202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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