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허준, 전공의들도 보고 싶다.-
창녕 성대감 부인, 허준의 운명 앞에 마주한 여인, 허준은 팽팽하게 온몸을 죄고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 용천을 떠난 7년 세월. 허준의 운명이 어이 될지.
직접 환자를 위해 새벽길 정화수를 떠온 허준. 풍병환자의 기력으로 보아 침을 놓기조차 힘든 상황. 우선 몸을 보할 탕약을 준비하는 허준의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환자를 대하는 허준의 자세가 '히포크라테스'다.
의대생들이 졸업장을 들고 선서를 한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 나이, 질병, 장애, 교리,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종족, 성적 지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나는 위협을 받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그 시작에서부터 최대한 존중하며, 인류를 위한 법칙에 반하여 나의 의학지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약속을 나의 명예를 걸고 자유의지로서 엄숙히 서약한다.(다음: 나무위키, 히포크라테스 선서 일부)
갓 졸업한 의대생이나 처음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허준이나 이들의 입장은 똑같다.
-성대감: 그간 모모라 하는 의원들이 저마다 찾아와 모두 큰소리치며 병자에게 다투어 독한 약을 먹이는 걸 보았다. 병자가 애처로워하는 소리니라. 정녕 밖에 달이고 있는 약은 분명 병자를 낫게 할 자신이 있는 약이더냐?
허준: 의원은 병을 두고 다짐을 하지 않습니다.
성대감: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라. 낫게 할 자신이 있느냐?
허준: 없습니다. 하나 병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배운 바 의술과 정성을 다하여 낫게 하고자 애쓰는 것이 의원의 소임일 뿐 "반드시 낫게 할 수 있다 없다"란 다짐은 아니합니다.
성대감:그래?
허준:나가주시지요. 나가시오!
허준이 대감처럼 소리쳤고 성대감이 그 만만치 않은 무명의 의원을 마주 쏘아보았다. 밖으로부터 방문을 벌컥 열고 작은아들이 뛰어들었고 그 앞으로 성대감과 큰아들이 나가며 방문이 다시 닫혔다. 방안은 다시 고즈넉이 조용해졌다.-
허준이 마님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사이 파고드는 뉴스. 연일 의대생 증원 문제로 시끄럽다. 의사들이 다 죽어가고 전공의는 앞으로 할 일이 없어지는 듯 야단법석이다.
허준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아플 때마다 의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실 병원에서 큰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의사가 존경스럽고 그 고마움을 한동안 잊지 못한다. 아니 평생 잊히지가 않는다. 이렇듯 의사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양의와 한의을 떠나 기본적인 내 마음은 그렇다.
허준이 성대감 부인의 맥을 짚다가 전공의들의 투쟁 소식을 엿듣고 있다. 눈살을 찌푸리니 내 마음도 편하질 않다. 한때는 의약 분업을 두고 약사와 의사들 모두 곧 죽을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이 방면으로 아는 바 없지만 정부는 의대생 증원 등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시급해 보이고 전공의들은 서두를 것이 없는 듯 느긋해 보인다. 그리고 머리에 뭔가를 둘렀지만 얼핏 보아도 하나같이 잘 생기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의대생 증원, 존경받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것이 왜 이렇게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술을 기다리며 하소연을 하는 환자를 바라보는 허준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답답하다. 초긴장 상태의 절박함이 묻어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돌이켜 보면 선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며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해 1996년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성대감 부인의 풍병처럼 쓰러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렸다. 양방과 한방을 오고 가며 살고자 몸부림쳤던 아버지. 양의와 한의사들의 양보 없는 싸움은 주치의의 머리를 삭발로 만들었다. 환자를 돌보아야 할 주치의가 투쟁 중이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애간장이 타지만 삭발한 의사들은 바쁠 것이 없었다.
한의사 자격시험문제 등을 두고 투쟁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주치의가 없는 병실, 아버지는 간호사의 실수로 가래와 침을 뽑기 위한 '섹션'이란 의료기구를 삼켰고 그 결과, 질식사 직전의 고통으로 병이 깊어지면서 그렇게 돌아가셨다. 당시 의사로서의 윤리와 양심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나 지금이나 밥그릇 싸움은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환자도 죽고 가족도 죽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나는 의사들을 존중한다. 아플 때마다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느끼고 또 깨닫는다.
의사 증원을 하면 의사들에게 정말 미래가 없는 것일까. 허준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성대감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환자를 담보로 한 밥그릇 투쟁, 정말이지 화가 치민다. 좀 덜 받고, 좀 덜 먹고, 좀 덜 싸면 어떤가. 허준의 눈이 돌아가니 내 눈도 돌아간다. 허준도 나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전공의와 의협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윤기가 돌고 있다. 주치의를 기다리는 초췌한 환자의 얼굴과는 대조적이다. 주치의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초조하게 주치의를 기다렸던 선친의 얼굴, 하릴없이 눈물을 삼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허준이 성대감 부인의 풍병을 치료하기 위해 대감 앞에서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켜 나가는 모습을 보라.
"환자 아닌 사람은 모두 방에서 나가시오."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허준의 목소리가 단호하며 절박하다.
-허준은 성대감 집에 도착 후 사흘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않고 병자와 주야의 고통을 함께 하며 병자가 먹고 마시는 음식을 일일이 스스로 간심(看審)한 점이며 약재를 달이는 숯불의 과하고 덜한 점도 일일이 자신의 손으로 조절하고 딸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짬 이외엔 병자의 머리맡에서 촌시도 떠나지 않는 근직(勤直)함을 보였다.-
환자를 떠난 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의사를 존경하는 내 마음에 더 이상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
-허준이 성대감 댁에 와서 열흘째 되는 날 새벽이었다. 반신불수에서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축받은 채 매듭이나 맺었다 풀었다 하던 노마님께서 허준이 야차(夜叉:추악하고 잔인한 귀신 ) 같은 모습으로 "일어서시오."를 연호(連呼)하고 있는 그 앞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있었다. 부축하려는 딸을 허준이 고함쳐 내치자 이윽고 노마님은 허준의 유도를 따라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대청마루로 나서고 있었다.
"손 내리지 마시오. 무릎을 드시오. 더 더 무릎을 드시오. 고개를 드시오."
허준의 고함과 자기 눈을 의심하는 그 경악에 찬 가족들의 눈길 속에서 반신불수였던 마님이 허전을 따라 육간대청을 한 바퀴 돌며 마구 눈물을 쏟고 있었다. 감격한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외쳐댔고 성대감이 "허의원, 허의원!"하고 체모도 잊은 채 허준을 쓸어안았다.-
뉴스를 보는 허준이 빙그레 웃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전공의들이 돌아와 허준처럼 절박한 심정의 환자들을 쓸어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말 고마우이."
성대감이 지극한 신뢰를 담아 그 허준을 바라보았고 곁에 있던 정경부인이 허준의 한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스승이 그 누구든 다른 사람 다 필요 없으니 허의원이 몸소 다만 며칠이라도 내 곁에 있다 가오. 내 결코 쉬이 이대로 헤어질 순 없소."
허준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투쟁을 하는 전공의들의 얼굴과 겹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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