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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허창옥의 산문산책 2 "오후 네 시" 리뷰, 아포리즘 수필의 창작과 실제]

백두산백송 2024. 2. 2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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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허창옥의 산문산책 2 "오후 네 시" 리뷰]

-아포리즘 수필의 창작과 실제-


아포리즘 수필, 어렵게 이해할 필요 없다. 시를 쓰듯 압축해서 한 폭의 수채화처럼 짧게 주어진 상황이나 신념, 원리, 가치관 등을 그려나가면 된다. 대단한 이론을 배경으로 탄생한 수필형태 같지만 어디까지나 본격수필의 변형으로서 실험수필의 한 유형이다. 아포리즘, 어학사전에는 '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시적형태의 수필로  보면 된다.

지금  《오후 네 시》 허창옥의 산문산책 2(수필세계 출판 2023.10.)를 읽고 있다. 수록된 전편이 아포리즘 수필이다. 필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글쓰기 자유를 열망한다. 하여 까다로운 수필적 제약을 배제한다. '나'라는 일인칭도, 터부시 하는 접속사도 마음껏 쓰련다. 동어반복도 주저하지 않겠다. 막 써 내려가는 글이다. 꼭지의 길이도 제멋대로다. 그저 문장일 뿐이다. 내 인생의 오후 4시쯤에 시작한 이 문장들이 오후 여덟 시 혹은 자정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실제 글을 보자.

첫 장부터 세 편의 짧은 산문이 나오는데 편집도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파격이다. 자유발상에 따른 편집과 2.5매의 수필은 그냥 그대로 아포리즘 수필이다.

01.
《오, 눈이여, 내 보배 중의 보배여!》 2.5매 수필 허창옥의 산문이다.

-파스칼의 문장은 고결하고, 지적이며, 철학적이다. 플로베르의 문장은 섬세하고, 간결하며, 묘사가 기막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은 의식이 흐르는 대로 편안하게 이어진다.  하여 걸림이 없으나 사변적이다. 쓰기보다 읽기가 행복하다. 오, 눈이여, 내 보배 중의  보배여! 나로 하여금 읽을 수 있게 하다니, 고맙고도 고마우이.

손철주 의 《꽃피는 삶에 홀리다》를 읽는다. 어떤 문우가 권해서 읽는 것인데 정말 글맛에 홀릴 것 같다. 문학과 미술, 문화와 일상, 말하자면 앎과 삶에 대한 모든 게 다 그의 소재가 된다. 문체의 황홀, 지적 충만감이 나를 홀리게 한다. 대체 나는 무얼  쓰고 있나. 재미없고 무겁기만 한 글들을 써왔고, 계속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여전히 문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지지부진이라니.-(허창옥, 오, 눈이여, 내 보배 중의 보배여!)


*[백송 감상]
짤막한 문장에 수식어란 별로 없다. 지지부진한 글쓰기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전할 뿐이다. 허창옥은 이렇게 말했다. "내 의지는 문장 앞에 무력하다. 문장을 이어가야 내가 살 수 있다. 내게 문장은 밥 같은 것이다."

나도 그렇다. 늘 문장 앞에서 무기력하고 밥 같은 문장 앞에서 겸손해진다. 무엇을 안다고 썼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허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글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기가 시간을 죽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과 꼬리 겹치기를 한다. 그래서 그 맛에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02.
《글감옥》 2.5매 수필. 허창옥의 산문이다.

-조정래 선생의 《황홀한 글감옥》을 읽고 있다. 그의 감옥이 내게 황홀하다. 진정한 글쟁이는 이렇구나. 그 정도의 글을 쓴 작가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 건너 한 번씩 경이롭다. 인간의 정신이 숭고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색없이 글을 막 쓰고 싶어 진다.

"무엇은 써야 할 '내용'이고, 어떻게는 '형식'이다. 어떻게보다 무엇이 중요하다." 그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읽기, 생각하기, 쓰기의 비율은 4:4:2가 바람직하다고 그가 말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글줄 막힌 지 한참이 되었다. 어찌어찌 쓰긴 하는데 그게 통 마땅치가 않다. 이러고서야 작가라 할 수가 없다. 작가 정신이니, 치열함이니, 열정이니 잘도 말하면서 정작 그 미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선생의 글감옥을 세세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글감옥, 나도 한 번 지어볼까. 언감생심 거기에 갇혀 볼까.-(허창옥, 글감옥)

*[백송 감상]
허창옥의 《글감옥》은 풍부한 글감 속에 파묻힌 조정래 선생의 '글감옥'에 대한 필자의 경외와 감탄이다. 그래서 필자도 언감생심 그 흉내를 내고 싶어 한다.

사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또 다른 의미의 '글감옥'이다. 특히 티스토리를 시작하면서 글쓰기는 나의 '글감옥'이 되어 버렸다.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에게는 감옥이다. 하지만 이 감옥이 나를 못살게 구는, 그래서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글쓰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에게 있어 '글감옥'은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 강박관념이라고 해서 다 부정적이고 병적인 것이 아니다. 때론 생각도 못한 창작의 에너지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내가 '글감옥'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한 줄의 글이라도 쓰고 있는 줄 모른다.

허창옥이 말하는 '글감옥'이 글감이 풍부한 '풍요의 감옥'이라면 나의 '글감옥'은 내 스스로 옭아매는 '고통과 인내의 공간이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한 이 감옥을 사랑할 것이다. '글감옥', 나도 언젠가는 조정래 선생의 《글감옥》처럼 되기를 희망해 본다.

03.
《한심타》2.5매 수필, 허창옥의 산문이다.

-열망은 가득한데 쓸 수는 없고,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책을 붙들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이병주 선생이 쓴 <허망과 진실>에서 도스토예프스키 편을 읽고 있다. 조르바는 경이롭고, 카찬차키스는 숭고하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한 작품이든 평론이든 전기든 무조건 흥미롭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한다. 여기저기서 그를 만나는 건 내게 행복이다. 이렇듯 고급 문학을 읽으며 작가와 작중인물에 경도되는, 그야말로 문학 향기 자우룩한 시간을 보내는데, 정작  내 문학은 비천하고 저급하다.

생각이 많다. 글거리도 꽤 모였다. 한참을 쉬었다. 쉬고 싶었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다소 지쳤고, 글쓰기에 바닥을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쉬는 동안 그러나 허전했다. 글쓰기가 없는 시간들이 텅 빈(산문은 참 직설적이다. 곧이곧대로다. 친구 시인은 이럴 때 '빈혈의 시간'이라 표현한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것 같았다.  쓸 수 있겠지. 그저 내 마음을 기록하려는 것뿐인데, 내게로 와서 머무는 정감이나 나를 흔드는 영상을 옮기고 싶을 뿐인데 그게 안 될 까닭이 대체 무언가. 한심타.-(허창옥, 한심타)

*[백송 감상]
필자는 말했다. 오후 두 시보다는 오후 네 시가 문학적이라라고. 하기야 이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오후 네 시보다는 밤 10 시가 좋다. 대체로 12시에 잠을 자다 보니 잠자기 두 시간 전이 나에게는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밤이 주는 고요가 있는가 하면 곧 12 시가 덮친다. 하루를 보낸 모든 것들이 하루를 넘기기  두 시간 전에 모든 것을 토해내야 하는 짜릿함에서 나는 때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나는 오후 네 시가 아닌 밤 10시에서 12시 사이가 나의 '창작 시간'이요, '수필의 공간'이다.

아포리즘의 전형, 2.5매 수필, 글이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짧은 글 속에 메시지가 있으면 그것은 성공한 글이다.

나도 수성못을 두고 아포리즘 수필을 썼다.

《나의 수성못》 2.5매 수필, 백송의 산문이다.

-못가엔 벤치가 여럿 있다. 그 자리엔 두 손 잡은 부부의 정이 있고, 청춘남녀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앓이가 있기도 하다.

어미 오리가 앞 장을 서고 새끼들이 뒤를 따라가고 있다. 먹을 것도 없는데 고개를 숙인다. 물결 십자가가 원을 그린다. 오리도 아침기도를 한다고 생각하니 피씩 웃음이 나왔다.

오리새끼들이 장난을 친다. 귀엽다. 오리 새끼가 손주 녀석이다. 졸졸졸, 뒤뚱뒤뚱, 똑같다. 역시 새끼들은 다 귀엽다.

저녁엔 남녀노소 사랑으로 맴돈다. 오리도 사람도 돌고 돈다. 버스킹에다 맨발로 걷고 뛰고, 오리배도 못물도 잠시 헷갈린다. 저녁엔 수성못도 춤을 춘다.

고요하다. 한밤이다. 모두 다 잔다. 오리도 자고 수성못도 잔다. 하루를 맴돌다 다시금 수성못 해거름을 마주한 자리, 언젠가부터 내 자리는 해를 등진 서녘에 있다. -(백송, 나의 수성못)

끝으로 허창옥의 《산문산책 2》 표지에서 밝힌 <작가의 말>과 출판과 관련된 이력을 소개해 본다.

지원(芝園) 허창옥은 경북 달성군 성서면 본리동 작은 마을 감천리에서 태어났다. 《월간에세이》(1990)로 등단하여 현재까지 글쓰기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은총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남아있는 나날도 오직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가다.

허창옥의 수필집으로 《말로 다 할 수 있다면》(1997, 문학수첩), 《길》 (2002, 도서출판그루),《먼 곳 또는 섬》(2008, 선우미디어), 《새》(2013, 선우미디어).

산문집으로 《국화꽃 피다》 (2007, 북랜드),《그날부터》(2013 수필세계사),《그날부터》 (2013, 수필세계사), 수필선집《세월》(2009, 좋은 수필사)을 출간했다. (202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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