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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2권 제1화 《횃불 횃불 횃불》]

백두산백송 2024. 5. 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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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1화 횃불 횃불 횃불-

횃불은 의병 봉기를 상징한다. 들녘에 봄기운이 아련하게 어렸다. 봄기운이 살아서 움직인다. 이것은 겨울이 풀리고 있는 모습이다.

"얼었던 산천만 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몸도 풀리고 있었다. 몸이 풀리기를 기다려 제일 먼저 몸을 일으킨 곳이 충청도였다. 안병찬이 의병의 깃발을 세운 것이다."

중심인물 송수익과 임병서가 뒤뜰에서 만나고 있다.

충청도에서 시작된 의병봉기가 일단은 왜놈들과의 접점에서 패했다는 소식 속에 "이등박문"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왔다. 통감부의 첫 번째 일이 경기, 인천, 부산 등지에 일본 거류민을 위한 수도시설 사업이다. 식민지적 상황이 아니라면 얼마나 숭고한 사업인가. 그냥 솟아오르는 샘물이 아니라 깨끗한 물을  먹겠다는 신식시설, 서글픈 문명개화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조정대신 놈들이 죽일 놈이 아니라 이 지점에서 우리 모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송수익과 임병서가 개화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깨어 있는 입체적 인물들이다.

"세상이 이리 급변하고 있는데 태평세월로 아이들한테 한문이나 읽혀대고 있는 것이 답답하고도 마땅찮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저 아이들에게 어서  신식공부를 시켜야 옳지요. 저러다가는 세상 돌아가는 것 하고는  정반대로 애늙은이들이나 만들 뿐이지요."

일진회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송수익과 임병서의 대화다.

시대는 서서히 바뀌고 군산에 있는 일본 군함을 본 송수익의 마음은 괴롭다. 의병 전술을 생각하고 있는 송수익.  일본의 총칼에  대적할 무기도 변변찮은 상황, 일본인들의 총을 탈취할 생각을 해 보지만 그것도 만만찮다. 사농공상의 봉건적 사고로 빚어진 오늘의 현실이 너무 개탄스럽다.

이런 와중에 일진회 회장 백종두는 약삭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평생 잘 살았다고 하는 것은 첫째가 자식 농사요, 둘째가 명리 즉 출세요, 셋째가 수명이다. 백종두가 아전을 버리고 일진회 회장을 선태한 것은 오로지 명리를 위한 욕심 하나뿐이었다. 쓰지무라 불알만 붙들고 늘어지면 군수자리 하나는 차지할 수 있다. 그다음은 만석꾼이 되는 꿈이다. 이런 놈을 두고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만석꾼이 되기 위해 논을 사들이기로 결심한다. 명(名)과 이(利)에 눈 뜬 자, 그대는 일본의 하수인, 자식은 신식학교에 입학시켜 일어를 잘 배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금도 있는 사람의 자제들은 오십 보 백보다. 좋은 것은 다 한다는 말이다.

"안녕하셨습니까,  백상.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고 계십니까." 가시모토의  꼬집는
듯한  말이었다.

"아 예, 저 새로 시작된 축항공사를 보고 대일본 제국의 막강한 힘을 생각하느라고 그만......"
백종두는 거침없이 둘러붙였다.

보호조약 아래 축항공사는 원산, 청진, 진남포, 신의주, 목포 등지의 8개 항구를 비롯 부산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시 모인 백종두, 쓰지무라, 하시모또. 이들은 수시로 의병봉기를 제압하기 위해 일진회를 중심으로 전략 전술을 짜고 있다.

삼남 의진군, 다시 말해 충청, 전라, 경상도를 중심으로 의병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송수익, 지삼출, 임병찬, 최익현 등이 전북 태인에서 횃불  들고일어났다.

《횃불 횃불 횃불》의 전말은 1894년 갑오경장을 이끌어낸  제1차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인 고부민란에 이은 제2차 의병봉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름하여 녹두장군 전봉준이 태인전투에서 패하고 일본군에 잡혀 처형을 당하면서 의병봉기는 막을 내린다. 1894년 이해,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른바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고 민비가 요청한 청나라 군대가 일본에 의해 제압당하면서 일본군은 경복궁을 피습, 민비와 고종을 인질로 잡고 갑오개혁이란 이름으로 근대화의 물꼬를 튼다. 근대화의 여명(黎明), 그것은 불행하게도 이 같은 비극의 역사에서 시발(始發)되었음을 어이하랴.

당시 녹두장군이라 불린 전봉준이 잡혀 죽을 때까지 퍼졌던 민란창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 (이하생략)

삼남 지방(충청·전라·경상)을 중심으로 불리어진 동학농민군을 응원하던 노래가 바로 "새야 새야 파랑새야"다.  파랑새는 청나라와 일본군대와  탐관오리를 상징하며, 녹두새는 고부군수 조병갑을 지칭한다. 또한 녹두밭은 동학농민군을,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말하고, 청포장수는 백성의 대유(代喩)다.

2024년 5월, 해운대에서 부산역으로 향하는 좌석 버스 맨 앞 줄에 앉아 있는 일본인 관광객 세 명과 동승한 나는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맨 앞  2인석을 독차지하고 있는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양말을 벗었다 신었다를 반복하며 발가락 틈새를 반복적으로 후비고 있었다. 그리고 스물이 넘어 보이는 딸애는 운동화 속 모래를 버스바닥에 털었다. 나는 치미는 화를  헛기침으로 대신했다. 옆에 앉아 있는 50대 중반의 여성은 어딘가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차내 유일한 대화는 이들 세 사람뿐이었고 뭐라고  조잘거리는 딸애의 목소리는 야무진 휘모리장단이었다. 나는 지역감정이나 지나친 국수주의를 평소 거부한다. 아리랑 아라리요~.  조지훈의 봉황수(鳳凰愁)가  떠올랐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鳳凰)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 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이하 생략)

이들의 행동과 목소리에 뿔이 난 듯 버스기사는 난폭운전으로 마음을 추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횃불, 횃불, 횃불》,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눈치만 살피는 일진회 회장 백종두와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지금 나 여기,  "항상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차창밖 쌍둥이 주상복합건물이 석양빛에 그늘지고 있었다.(20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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