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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 시로 납치하다 《절반의 생》을 생각하다]

백두산백송 2024. 9. 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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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 시로 납치하다; 《절반의 생》을 생각하다]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과 벗하지 말라.
절반의 재능만 담긴 작품에 탐닉하지 말라.
절반의 인생을 살지 말고
절반의 죽음을 죽지 말라.
절반의 해답을 선택하지 말고
절반의 진실에 머물지 말라.
절반의 꿈을 꾸지 말고
절반의 희망에 환상을 갖지 말라.

침묵을 선택했다면 온전히 침묵하고
말을 할 때는 온전히 말하라.
말해야만 할 때 침묵하지 말고
침묵해야만 할 때 말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이라.
가장하지 말라.
거절한다면 분명히 하라.
절반의 거절은 나약한 받아들임일 뿐이므로.

절반의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고
그대가 하지 않은 말이고
그대가 뒤로 미룬 미소이며
그대가 느끼지 않은 사랑이고
그대가 알지 못한 우정이다.
절반의 삶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그대에게 이방인으로 만든다.

절반의 삶은 도착했으나 결코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일했지만 결코 일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대 자신을 결코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의 동반자가 아니다.

절반의 삶은 그대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는 것이다.
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러지 못하며
절반의 생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절반의 삶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관계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사람이므로.

킬릴 지브란 <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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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절반에 대한 강한 부정에서 완전함을 향한 절규가 삶의 에너지를 한껏 끌어당긴다. 그래 지금껏 살아오면서 절반으로 끝나거나 절반으로 흐지부지하게 흘러간 것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래서 늘 절반의 것들은 후회를 남기거나 미련이란 찌꺼기를 쌓는다. 좀 더 밀고 나갈 것을. 좀 더 완벽하게 할 것을.

절반의 공사를 마무리한 인부들이 집 앞 골목길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주택가 하수관을 교체하는 작업이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석 달여의 공기를 잡고 안내한 작업이 내가 살고 있는 골목길에서 시작되고 있다. 나는 며칠 동안 이들의 작업을 눈여겨보았다. 결코 서둘지 않는다. 처음에는 느릿느릿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의 세금으로 하는 것들이라 시간 때우기식 일거리로 오해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것이 아니다. 완벽한 완성을 위한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절반의 완성으로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리라. 나는 이들의 작업을 보면서 절반이 아닌 완성을 향한 몸부림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절반의 사랑, 절반의 인생, 절반의 꿈, 절반의 희망, 대부분은 절박한 조급함이 빚은 낭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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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시 읽기는 언제나 삶의 지침서다.

*예언자(Tbe Propbet)의 시인이 온전한 삶, 온전한 사랑, 그리고 온전한 죽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중간하게 살지 말고, 미온적으로 사랑하지 말며, 방관자적 태도로 행동하지 말라고. '큰 기쁨을 방해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절반의 기쁨이며, 큰 만족을 방해하는 것은 불만족이 아니라 절반의 만족이고, 성공을 방해하는 것은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쁜 사랑은 절반만 사랑하는 것이고, 불행한 사랑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1883~1931)은 레바논 베샤레의 삼나무 계곡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독신으로 생활을 마쳤지만, 그의 정신은 일생 동안 삶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추구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과의 결혼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영혼을 자유케 한다.

세계적인 작문 지도 교수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일에 해당된다. 뼛속까지 느끼고, 뼛속까지 사랑하고, 뼛속까지 경험하는 것. 이 지상에서 무엇인가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마음을 쏟아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는 기쁨이다. 그 기쁨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든다. <시로 납치하다, 류시화>

공사가 한창이다. 하수관이 교체되고 있다. 하수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답답하다. 절반이 남긴 미완의 찌꺼기가 한 둘이 아니다. 남은 인생, 마음의 굴삭기 하나 달고 부지런히 뚫어야겠다. 신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면......(202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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