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라 마음 따라]: 책 읽기 & 감상

[책 읽기& 감상: 그는 그냥 갔다]

백두산백송 2024. 10. 1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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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감상: 그는 그냥 갔다]

이어령의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시인과 나목>을 읽고 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식이 들려왔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니. 한강이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멘부커상에 이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뜻밖의 소식에 작가 자신도 무척 놀란 느낌이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좌절과 기대는 시인 고은 등을 통한 한국문학의 한계처럼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 한승원을 중심으로 한강은 ‘문인 가족’ 출신이다. 아버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물에 잠긴 아버지’, ‘추사’, ‘다산의 삶’' 등을 쓴 작가 한승원이다. 남편은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문학평론가요, 오빠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하루 종일 충격과 흥분, 티브이 자막은 쉴 틈이 없었다.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위대한 문학혈통,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DNA 러브'가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한국문학의 쾌거, 한강은 우뚝 한강의 기적을 낳았고, 《2022년, 메멘토 모리, 너 두고 나 절대로 안 죽어》, 소설가요 문학평론가인 이어령은 2022년 그냥 갔다. 빗발치는 노벨문학상 수상소식과 함께 다시 이어령의 시집과 에세이에 집중해 본다.

*형용사에 속아선 안 된다.
움직임을 수식하는 부사 역시 안 된다.
그것들은 명사나 동사의 조력자가 아니라
몰래 의미를 가로채려는 위험한 모함꾼.

겨울에 나목(裸木)을 보면 안다.
나뭇잎을 인생의 영화에 비유한 고인들은
겨울나무에는 새도 와 앉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나목이 여름의 수목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가.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무의 가지들은 나타난다.
가지 하나하나가 비로소 분명한 선으로, 생명의 선으로 존재한다.

나뭇잎이 나무의 피부라면
나뭇가지는 나무의 정맥과 동맥
아니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뼈.(시인과 나목/이어령)

이어령의 <시인과 나목>이란 시를  몇 번째 읽고 있다. 읽을수록 맛이 난다. 처음에는 맹탕처럼 느껴지다가 두세 번째 읽을 때는 반숙 계란에다 참기름을 넣어 비빈 맛이다. '겨울의 나목', '여름의 수목', '잎과 가지'가  눈과 가슴을 파고들다 글맛을 당긴다.

이어령, 그의 삶 자체가 '문학의 피부'라면
그의 문학적 유산은 우리 문학의 '정맥과 동맥'이요
어쩌면 태풍이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문학동산'이 아닐는지.

'형용사와 부사가 위험한 모함꾼' 이란다. 나는 형용사와 부사를 좋아한다. 아름답지 못한 인생만큼이나 내 문장은 너덜너덜하고 맥이 없다. 타고난 인생과 문장이 이렇고 보니 형용사로 덧칠하고 부사로 내리치기를 하며  삶과 문장을 치장할 수밖에. 하지만 형용사로 꾸미고 부사로  휘두르면, 문장도  마음도 아름답고 힘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가 말한 '형용사와 부사가 위험한 모함꾼'이란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목에도 새는 깃든다. 벌써 가을 까마귀가 나목에 둥지를 틀고 있다. 새들은 확실히 나보다 영특하고 추진력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위대한 사람, 태산 같은 그가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나고 나니 그의 삶과 문학적 유산이 오롯이 드러난다.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무의 가지들은 나타난다.
가지 하나하나가 비로소 분명한 선으로, 생명의 선으로 존재한다.'  

그의 문학과 삶이 '분명한 선'으로, '생명의 선'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물은 흘러가버렸다. 강보에 온몸을 맡긴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한다. 불안한 엄마의 젖가슴이 돌무덤이 된 것은 순간이었다. 옷을 벗어버린 엄마의 맨몸이 주체할 수 없이 흐느낀다. 아기도 울고 엄마도 운다. 나도 운다. 몸에 걸친 것 하나 없이 온몸으로 실컷 울고 나니 하늘이 보이고 새가 보이고 아기를 향한 '생명 선'이 보인다.  

'나뭇잎이 나무의 피부라면
나뭇가지는 나무의 정맥과 동맥
아니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뼈.'

한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순간, 나는 이어령의 시집《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시인과 나목>을 들고 있었다. 그의 문학도, 한강의 인생도, 'DNA 러브'인 것을......(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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