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라 마음 따라]: 자작수필 & 자작시

[명상수필: 겨울비는 내리는데]

백두산백송 2023. 11. 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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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필: 겨울비는 내리는데]

겨울비가 지하철 입구 계단을 타고 흘러내린다. 올 겨울이 무척 추울 것만 같다. 무거운 얼굴들이 우산을 접었다 편다. 불빛은 화려한데  하늘은 먹구름이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구석진 아들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앨런 긴즈버그는(1926~1997)는 풍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하던 젊은 세대의 우상이었다.  반문화 운동의 선두에 섰던 미국의 음유시인 앨런 긴즈버그, 그는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협오를 느끼며 시를 썼다. 그가 말하는 너무 많은 것들이란 '너무 많은 병원', '너무 많은 빌딩들', '너무 많은 식당들', '너무 많은 공장들이다'.  그러면서 그러나 '너무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 부족한 잣나무', '너무 부족한 명상'을 노래했다. 20세기말, 시인이 느꼈던 혐오의 풍요가 '부족한 명상', '부족한 사과와 잣나무'를 노래했지만 지금 여기, 젊은 이들에게는 역으로 다가오는 풍요 속 빈곤의 아우라를 어이해야 하나.

누구에게는 너무 많은 것들이 거추장스러운 현실, 그들은 명상도 하고 다이어트도 한다.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집들은 텅텅 비어 있는데  젊은이들은 가질 것이 없다. 시쳇말로 그들의 부모는 직장도, 돈도, 집도, 다 빼앗아 갔다. 노인들의 노령연금도 그들이 갚아야 할 판이다. 빌딩 숲 사이 그늘진 골목길이 답답해서 숨이 막힌다. 가진 것은 없는데  짐 지고 갈 것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초라한 젊은이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연애, 결혼, 출산, 집도, 인간관계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2011년부터 '삼포 세대'란 신어가 국어사전에 오르고 급기야 '오포 세대'가 되고만 현실이 아닌가. 추적추적 겨울비는 내리는데 아들을 바라보는 애비는 할 말이 없다.

차고 넘치는 명상과 다이어트, 어쩌면 법정 스님이 말하는 초월적 무소유는 젊은이들에게는 화려한 수식어인지도 모른다.  어디에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소유를 '현대판 선택'이라고 했다. 좋은 말이다. 무조건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맞춤형 선택이 주는 삶의 한 방편이란 것이다. 참 좋은 말이요,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 말을 곱씹을수록 묘한 느낌이 든다.  멋진 말이기도 하지만 오포 세대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현대판 선택'의 무소유, 어쩌면 자위적 방편으로 속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버릴 것이 없는 이들에게 '현대판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숟가락 두 개, 밥솥 하나, 작은 거실, 텅 빈 냉장고...... 앨린 긴즈버그가 다시 일어나 이를 본다면 어떤 시를 쓸까.

무언가 차고 넘치는데 정작 필요한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는 느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어느 구석 할 것 없이 양극화로 잦아드는 열패감은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되어야 한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는데 "어르신 건강하세요~"란 말이 지하철 교통카드에서 흘러나온다. 사람도 돈도 인격마저도 양극화를 부추기는 느낌. 넘치는 친절이 공짜 지하철을 타고 온 마음을 부끄럽게 한다.  힐긋 뒤돌아보는 젊은이의 미소가 겸손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우산 속 탕후루를 물고 가는 연인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무리들. 과일사탕처럼  언젠가는 이들에게도 꿀물이 줄줄 흐르는 달콤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탕후루를 빨고 싶다. 겨울비가 이제 그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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