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감상: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리뷰: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를 다시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 '가시고기'는 보지 않았다. 감상문의 제목을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으로 붙여 보았다.
나는 감상문이나 독후감을 늘 수필로 쓴다. 언젠가는 <수필로 써 보는 독후감>, 또는 <감상문, 수필로 쓰다>란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살짝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것은 독자인 나의 몫이다. 감상과 독서의 효능, 외연과 내연의 확장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소설《가시고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극화(劇化)'하거나 수필로 '육화(肉化)'하는 것은 똑같다고 본다.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그때 하늘을 보거나 땅을 보면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늘이요 땅이 된다. 나도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축 늘어져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을 때는 분명 그 하늘이 '타인의 하늘'이요, '타인의 땅'으로 다가왔다. 나와의 인연이 다해가는 하늘은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땅은 그대로 꺼져 버릴 것만 같았다.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
끝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어가는 정호연. 그는 최근에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치고는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인간이었다. "가시고기" 같은 일생을 살다 간 남자. 생의 끝자락에서도 결코 자존심을 못 버린 사람. 작가 조창인은 그를 '가시고기'로 만들었다. 가시고기는 민물고기다. 산란을 끝낸 엄마고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위해 비정하게 자식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그 후 알을 부화시키는 일은 아빠 가시고기의 몫이다. 새끼들을 먹이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낸 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아빠고기를 돌아서면 그는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 버린다. 가슴 아프다. 그것도 시리도록 아프다. 어쩌면 경우가 다를지라도 세상 모든 이들 가운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느끼는 동병상련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엄마고기든 아빠고기든 마찬가지로. 자신의 '하늘과 땅'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군상들.
소설 속 핵을 이루는 이들 세 사람, 아빠 정호연, 엄마 하애리, 아들 정다움. 이들은 분명 '타인의 하늘'과 '타인의 땅'을 살아가고 있는 일군의 우리네 모습이다. 특히 아들을 하늘이라 여기며 자신의 일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아빠 정호연. 병실 바깥 벤치에 앉아 끝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는 아들 정다움에게 끝까지 희망을 던져 주는 가슴저리게 하는 남자. 정말 가시고기가 되어버린 인간. "죽어라. 죽어". 눈물보다는 쓸쓸하고 외롭게 그를 짓누르는 페이소스에 왜 그렇게 분노가 치미는지.
아들 녀석을 살리기 위해서 전재산을 탕진하고 동분서주. 결국 피를 토하며 쓸쓸하게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병을 밝히지 못하고 시인의 삶을 살다 간 남자.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다움이가 되길 바란다".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은 한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영원히, 영원히"......
정다움, 처음에는 여자 아이의 이름인 줄 알았다. 녀석 참 다정다감하고 강인한 아이다. 초등학교 삼 학년 답지 않게 아빠를 꿰뚫어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백혈병 환자다. 다움 나이, 세 돌이 지날 즈음, 화가로서의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을 접고, 끝내 양육포기 각서를 쓰고, 자신의 스승과 재혼을 하며 프랑스로 날아간 그런 엄마를 둔 녀석. 참 기가 찬다. 두 사람의 이혼과 동시에 찾아온 백혈병. 극심한 고통 속에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끝내 살아나 어미의 품속으로 날아간 어리지만 강인한 아들 정다움. 이 녀석을 바라보는 내내 축구선수 '이강인'이 떠올랐다. 다부지게 보이는 이강인, 소설 속 정다움도 그랬으면 좋겠다.
모질게 버리고 독하게 다시 그 자식을 앗아가는 그녀의 이름은 하애리. 자신의 인생을 위해 한 때는 시인인 남편을 사랑했던 여자. 남편 정호연이 해병대를 만기 제대하고 4학년에 복학하며 대학신문에 투고한 그의 시가 좋아서 그의 시에 삽화를 그려주며 접근한 여자. 교활하게도 그녀는 순진한 한 시인의 일생을 짓밟고 자신의 그림 인생을 완성해 가는 하이에나 같은 모성애를 지닌 여인으로 변해갔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받친 남편의 희생은 무시한 채, 다시금 아들을 빼앗아 가버리는 이기적인 여인 하애리. 그저 나에게는 그녀가 여우를 닮은 하이에나로만 느껴졌다.
'타인의 하늘', '타인의 땅', 경우야 다르겠지만 나름의 고난을 헤집고 살아가는 또 다른 '가시고기'와 같은 이들에게 스스로 경애를 표하며 비롯 소설 속 정다움이지만 프랑스로 날아간 그가 언젠가는 '가시고기'가 된 '아빠 가시고기' 그림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귀국하기를 기대해 본다. 조창인 장편소설, 《가시고기》가 모르긴 해도 며칠은 가슴을 후벼 팔 것만 같다.(20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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