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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감상: 조정래의 아리랑 리뷰 1권 제11화 《혼탁한 물결》]

백두산백송 2023. 12. 3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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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제1부 아, 한반도]

[제11화:혼탁한 물결]

<혼탁한 물결>의 핵심에는 백종두와 장덕풍이 있다. 백종두는 일진회 회장이요, 장덕풍은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물은 깨끗할 때 물이지 <혼탁한 물>은 똥물이다. 똥물은 일단 더럽고 악취가 풍긴다. <11화>의 중심에 선 두 인물, 이들은 똥작대기를 휘두르며  도덕적, 정치적으로 타락한 난세의 전형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입신과 부의 축적뿐이다. 기회를 잡아라. 던질 때 던지고 잡을 때 잡아야 돈이 된다.

<혼탁한 물결>이 배고픈 민중의 입과 눈을 파고든다. 입은 주식인 쌀이요 눈은 등잔불이 아닌 남포등이다. 호박엿보다는 알사탕이, 등잔불보다는 남포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장덕풍은 장사치다. 잇속을 위한 머리 회전이 빠르다. 백종두로 하여금 빨리 쌀을 던지고 남포등 기름으로 갈아타게 한다. 이때 동원되는 수법이 매점매석이다. 겨울 지난 보릿고개, 치솟은 쌀값과 출렁이는 남포등 기름.  쌀은 돈이 되고 남포등 석유는 두 사람 앞길을 밝힌다. '아리랑 아라리요 어화둥둥 내 사랑.' 백종두는 장덕풍의 노림수에 장단을 맞추며 둘은 의기 투합한다. 조직관리는 역시 돈이다. 조직관리를 위한 삼대요소, 돈과 사람과 명분이다. 돈이 있고 사람이 있고 대의명분이 있으면 조직은 극대화된다.

백종두, 장덕풍, 그의 아들 장칠문. 기생충이 따로 없다. 기생충의 특징은 착 달라붙는 데 있다. 쓰지무라는 그들로 하여금 피를 빨게 한다. 남포등 심지에 불을 붙이고 타락한 관리들의 비리를 밝힌다는 명분으로 일진회는 돌격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후려치고 있는 형국이니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을. <혼탁한 물결>, 똥물은 흘러 흘러 조직을 위해 몸을 던지고 대의명분 속 조직은 늘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상, 하부 조직, <혼탁한 물결>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살랑살랑 똥물을 조정하는 단계적 두 인물에 쓰지무라가 있고  하시모토가 새로 등장한다. 백종두, 장덕풍, 장칠문, 이 밀착된 기생충들이 이들에 빌붙어 피를 빨며 부의 축적과 출세가도를 꿈꾼다.

전주부민과 일진회의 충돌, 신, 구대립 속에 삶의 밑판은 새롭게 짜여간다. '키로 쌀을 까부리'듯 흔들리는 밑판 따라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는 민중의 삶. 그 밑판이 한 줄기 역사가 되고 새로운 양식의 문화가 된다. 군산, 김제 그리고 전주, 이곳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헌정연구회가 생기고 경의선이 이미 운전개시 되었고, 경부철도도 곧 개통되리라는 소식이 날아들며 대륙식민회사라는 말이 등장한다. <혼탁한 물결>을 타고 줄줄 흘러들어오는 개화의 물결. 러일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군함이 군산에 기항하고, 통변을 맡았던 하시모토 앞에 일진회 회장 백종두의 무릎을 꿇게 하는 쓰지무라. 백종두의 턱수염이 파르르 떨고 있다. <혼탁한 물결>, 이것은 신, 구의 대립이요,  의식의 대결이며 자존과 몰염치의 대립을 의미하는 똥물이다.

개화의 물결이 <혼탁한 물결>이 아니라 맑고 자연스러운 물결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기생충이 따로 없다. 회를 자주 먹는 나는 구충제를 꼭 챙겨 먹는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구충제가 되기를 소망하며 <아리랑>의 감상은 여기서 접기로 한다. 새해 갑진년, 청룡의 비상을 꿈꾸며 시화년풍(時和年豊)을 기원해 본다.(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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